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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Mar 20. 2021

갈 수 없는 나라

가평 임산계곡 ~ 논남계곡 임도

가평은 같은 위도 상에 있는 지역보다 유독 춥기도 하고 산들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북면은 더 춥고 1,000미터 넘는 준봉들이 즐비하다.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은 봉우리를 세 개(중봉 북봉 응봉) 가지고 있는데 모두 1,400미터가 넘는다. 봉우리에 군부대만 없다면 소백산과 맞먹는 위세를 떨쳤을 화악산은 자신을 중심으로 1,000미터가 넘는 촉대봉 석룡산 국망봉 견치봉 민둥산 귀목봉 명지산 연인산 등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다. 물론 봉우리만 거느리고 있는 것은 아니고 골짜기와 산길도 품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산이 높고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 골도 길도 깊은 법이다.


바로 그 골짜기 중에서 가장 깊은 곳이 논남 계곡이다. 북면 목동에서 명지산 들머리인 익근리를 지나 화악산과 국망봉의 시작점인 용수동으로 더 들어가다 보면 명화 삼거리가 나오고, 그 삼거리 왼쪽으로 들어가면 논남 계곡이 시작된다. 그 골을 따라 5~6킬로미터 정도 들어가면 강씨봉휴양림이 나오고, 그만큼 더 깊이 들어가면 일동으로 넘어가는 오뚝이 고개에 당도하여 약 30리 길의 여정이 마무리된다. 가다 보면 명지산과 귀목봉 들머리도 있고, 더 지나면 강씨봉과 민둥산과 그리고 한북정맥 능선과 연결하는 길목도 만난다. 10년 전 휴양림이 만들어지면서 2차선 도로가 신설되고 버스도 2~3시간마다 들어가지만, 만약 휴양림이 생기지 않았다면 걸어서 강씨봉과 명지산을 가야 하는 불상사(?)에 봉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20여 년 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이곳은 숨 막힐 것 같은 첩첩산중이었다. 이 길을 지도에서 보면 가느다란 실핏줄이 근육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여 그 깊이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신묘한 골 하나가 마치 더 가는 실핏줄로 갈라지듯이 강씨봉휴양림 못 미쳐 왼쪽 산속으로 잠입한다. 잠입한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논남 계곡에서 보면 그 계곡 들머리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무언가 은밀하게 숨어 들어가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너 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크게 한번 굽이쳐서 이어지기 때문에 처음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잠시 당황하곤 한다.     

2020년 12월 12일 / 임산계곡 들머리에서 바라본 논남 버스정류장

아무튼 그 계곡이 바로 오늘 내가 가야 할 임산계곡이다. 명지산과 귀목봉 줄기가 만나는 귀목고개까지 이어지는 고갯길이다. 그 고개 너머에는 앞에서 얘기한 상판리가 있으며 더 가면 현리가 나온다. 오래전 화전민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지금은 등산객의 발길도 뜸한 그저 명목만 유지하는 폐길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논남기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다리를 건너 그 길로 들어섰다. 잣나무 숲이 일직선으로 열병해 있고 계곡 옆에는 인기척 없는 펜션 몇 채가 퀭하니 지나가는 객을 내다보고 있다. 순간 코끝이 시큰거렸다. 찬 공기가 계곡 상류에서 거세게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사실 그 건물들이 순수한 펜션인지 주거 가옥인지 별장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 때 펜션과 전원주택 붐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지어진 건물들이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푼 원초적 본능에 기인한 혹은 감성적 충동으로 인간들은 이런 깊은 산골짜기에 집을 짓지만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으로의 엑서더스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결과 건물들은 방치되고 흉물로 변한다. 지금 이런 얘기를 길게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욕망은 너무나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애완견을 유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표현을 좀 강하게 하면, 인간은 자연에게 충동적이고 폭력적이면서 공감능력도 상실한 반 자연적 인격장애자들이다.      


약 2킬로미터 가까이 들어가면 계곡 분기점이 나오고 드디어 마지막 펜션을 지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계곡 트레킹이 시작된다. 거대한 산에 들어가면 느낄 수 있는 어떤 성스러운 기운이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기운을 느끼며 가다 보면 겨울 특유의 수풀 냄새가 의식을 자극하고, 그렇게 그 기운과 향기에 나는 푹 빠져들기 시작한다. 등산로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한다. 아마도 한여름이면 숲이 길을 덮어 직감으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검푸른 이끼에 덥힌 너덜과 앙상한 수풀이 어두운 계곡을 따라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20년 12월 12일 / 10년 전 폭우로 망가진 임산계곡. 지금도 그 당시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이 계곡 길은 십 년 전 강력한 폭우로 인해 심하게 파손되었었다. 사람 몸만 한 바위들이 물살에 휩쓸려 지나간 생체기가 지금도 남아 있었다. 그 폭우 이후 다음 해에 왔을 때가 기억난다. 숲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던 계곡은 미사일 포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굉음을 토해내는 거센 물결이 넘실거리던 당시 상황이 현실감 있게 상상되었다. 지금은 십 년이란 시간이 지나 그나마 조금 완화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자연의 광기를 보는 것처럼 섬찟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지리산 피아골로 하산하다가 본 집채만 한 바위가 떠올랐다. 대원사 계곡에서 수십 명의 피서객들을 주검으로 몰고 간 전대미문의 폭우가 몰아치던 당시였는데, 피아골도 예외가 아니어서 경사각 높은 계곡 끝에서 급류에 휩쓸려온 집채만 한 바위 여러 개가 계곡 중간에 떡 하고 서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현상은 대자연의 정화작용이며 또한 살아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그곳에 가는 우리는 불편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계곡도 언젠가 폭우로 또다시 변형될 것이고 그 변형은 고착화될 틈도 없이 또다시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그것은 대자연의 섭리이다. 인간은 그저 이 지구에서 몇 십만 년 동안 생존하다 거쳐 갈 객에 불과할 뿐이지 않는가.     


아직도 상흔이 가시지 않은 계곡 바위틈을 비집고 건너 바로 숲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이 과거에 사람이 다닌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바닥에는 아직도 그 당시 깔아놓았던 호박돌들이 검푸른 이끼를 뒤집어쓴 채 발길에 밟히고 있었다. 우마차 하나는 충분히 다닐 수 있는 폭이었다. 여름이 오면 다시 이 길은 수풀로 덮여 오솔길처럼 변할 것이다. 그나마 나 같은 사람이라도 온다면 그 길이 보이겠지만 세월이 흘러 그마저도 없다면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귀목봉 장재울 산판길처럼 말이다.


사실 예전에도 이 길은 이렇게 착하지 않았다. 강씨봉 휴양림이 건립되기 이전 그러니까 논남기 길이 비포장일 때도 이곳으로 산행을 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명지산을 올라가는 들머리는 거의가 익근리였고, 그나마 교통편이 좋은 상판리에서도 꽤 올라갔지만 논남기는 알피니즘을 신봉하는 산객들이나 혹은 요즘 말로 알바하는 사람들이나 다니던 신화 속의 날머리였다. 물론 계곡 입구에 있는 펜션이나 기도원 건물은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정말 첩첩산중 오지였다. 하늘을 덮은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대자연의 평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경건한 곳이었다. 오랜 기간 벌어졌던 산판과 한국전쟁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자연의 정화작용과 관의 녹화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2020년 12월 12일 / 귀목고개로 가는 임산계곡 길

계곡 상부에서 고개 마루로 이어지는 지역은 골이 깊고 원시림을 이루고 있어서 인공물인 통나무 간이 계단도 단시간 내에 분해시킬 정도로 습하고 어둡다. 인공물이든 죽은 나무든 어떠한 유기물질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부패 과정을 거쳐 질소 함유물이 많은 고질의 흙으로 변하게 한다. 가서 보면 그런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현상을 실감할 수 있다. 따라서 길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아 갈 때마다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나를 발견하곤 했었다. 그렇다고 고립감이나 음습한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곳으로 가지 않고 새로 난 임도로 갈 작정이다. 5~6년 전에 갔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계곡 상부 나무 울타리가 있는 곳에서 새로 난 임도로 들어섰다. 아직 풀도 자라지 않은 황토색 임도 들머리가 계곡 너머로 보였다. 그 길은 계곡 아래 방향으로 길게 이어져 마지막 펜션이 있는 부근에서 기존의 임도와 만난다. ㄴ자로 산등성을 깎아 만든 붉은 임도가 굽이쳐 이어지고, 급경사 능선 아래에는 험악했던 공사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다 보면 오른쪽 임산계곡을 사이에 두고 명지산의 우람한 근육을 감상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마도 벌크업 된 명지산이 없었다면 정말 우울하고, 지루하고 그리고 삭막한 산행이 되었을 것이다.


그 길을 걷는 내내 사실 마음은 편치 않았다. 생살을 도려내듯 굴삭기가 산등성이를 깎아내는 것을 상상하면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임도의 존재는 자연을 일정 부분 파괴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양면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피성을 합리화하는 나의 견해가 정당한 논리인지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임도를 만드는 것은 관광이나 개발의 목적이 아니고 산림 보호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불편함을 속일 수 없었다.          


이제 임산계곡을 완전히 벗어나 기존 임도와 접하는 부분에 이르렀을 때 가야 할 건너편 산등성이에서 기계음과 함께 벌목 현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까 임산계곡 들머리에서 벌목한 나무를 한 가득 싣고 지나가는 산판 트럭과 마주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임도를 중심으로 산판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점심 때라 산판도 쉬겠거니 하고 그 틈을 타 빨리 지나갈 요량으로 속도를 붙였다. 그렇게 경사면을 씩씩거리며 오르고 있을 때 멀리서 들려오던 기계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기어코 잠시 후 나무를 산더미처럼 실은 대형 산판 트럭과 조우하는 상황에 봉착하였다. 이 좀은 길을 가득 메우고 산사태처럼 밀려 내려오는 트럭을 피할 곳을 찾다가 길 옆 움푹 들어간 수풀에 몸을 숨겼고, 곧이어 육중한 트럭이 굉음을 질러대며 바로 옆으로 지나갔다. 트럭에 부딪친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스쳤다. 트럭이 지나간 후 임도로 나온 나는 긴 한숨을 토해내며 그 괴물의 꽁무니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거구의 트럭은 아파토사우르스처럼 뒤뚱거리며 곡예를 하듯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엔진 타는 냄새와 뿌연 연기가 가시지 않고 한참 동안 임도에 머물러 있었다.

2020년 12월 12일 / 한창 산판 중이다

경사가 완만해지는 지역에 다다르자 임도에는 산판용 차량들이 다닌 흔적들이 역력했다. 벌목한 나무 잔재들이 널브러진 산등선과 트럭이 다닐 수 있게 보강한 임도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빨리 이곳을 벗어나려고 걸음을 재촉할 때 벌목한 나무를 트럭에 상차하는 현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실이 되고 말았다. 저 사람들은 점심도 안 먹나 하고 나는 구시렁거렸다. 산판용 굴삭기는 엔진 소리를 연신 토해내고 있었다.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던 나는 감독관인 듯 한 사람에게 지나가도 된다는 동의를 받은 후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한 아름 되는 잣나무들이 임도 곳곳에 쌓여 있었고, 벌목작업이 끝난 산등성에는 금방 잘린 듯 한 잣나무들이 전쟁터에서 죽은 시체처럼 처참하게 쓰러져 있었다. 간혹 임도를 다니다 보면 산판 하는 광경을 보기도 하는데 이렇게 규모가 큰 산판 현장 중심부를 통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엔진 냄새와 톱밥 냄새들이 혼재하여 계속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현장을 빠져나온 나는 언덕 마루에서 잠시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돌렸다. 보이지 않는 저 아래 산등성이 숲에서 엔진톱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어수선한 산판 현장이 멀어지면서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간간히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산판 현장의 잔상도 사라졌다. 또다시 찾아온 익숙한 침묵 속으로 나의 두 다리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겨울 산길의 침묵은 유난히 깊었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도, 산길에 뒹구는 가랑잎 소리도, 새소리와 곤충소리도, 그 흔한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발자국 소리도 침묵에 잠식된 듯 들리지 않았다.

2020년 12월 12일 / 잿빛 산길

겨울 산길은 잿빛이었다. 그 흔한 눈도 없었고, 검푸른 잣나무와 소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지난가을에 떨어진 가랑잎과 습기 잔뜩 먹은 길바닥과 그리고 차디찬 하늘은 여러 가지 파스텔 톤 회색으로 배색되어 있었다. 송곳 같은 나뭇가지가 나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아득히 먼 기억을 찾아가 듯, 무의식의 편린이 유혹의 손길로 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신화인지, 실제 존재했던 기억인지 모를 시간들이 뒤섞여, 마치 미몽에 빠진 것처럼 그 공간을 걷는다. 아마도 먼발치에서 보면 나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나는 그 공간 속에 흡수되어 일렁이는 바람에 떠도는 그저 하찮은 공기 입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임산계곡에서 인공물이 부패되어 흙으로 변하듯 나의 영혼도 이 회색 공간에서 분해되어 산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갔을까, 잿빛 산길은 잠시 전망대에서 태양에 노출되어 화악산과 명지산의 장대한 풍광을 선사하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전망대에서 강씨봉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나 오늘은 논남계곡 즉 오뚝이 고개 방향으로 들어갔다가 논남계곡 따라 휴양림으로 나갈 예정이다. 더 짙은 잿빛 속으로, 더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산길은 밖으로 나갈 것을 거부하고 더욱 깊은 계곡으로 나를 유혹한다. 멤피스토펠레스에 현혹된 나는 속절없이 빨려 들어간다. 암막 커튼처럼 산은 태양을 차단하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이 길을 지배한다.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 다리는 그 모두가 어우러진 산길을 본능적으로 거칠게 밟고 있다. 이 산의 지배자는 이 산길이다. 이 산길이 원하는 데로 나의 두 다리는 움직일 뿐이다. 그 끝이 어디인지 나는 모른다. 그 길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아인지 모르지만,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영혼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양을 알 수 없는 새로운 그 무엇이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12월 1일 / 논남계곡 길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가다 보면 일동에서 오뚝이 고개를 넘어오는 길과 만난다. 오후의 희뿌연 하늘이 지친 내 몸뚱이를 백허그하듯 감싸주었다. 눈이 부셨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신파조 국산 영화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온 듯, 그 잿빛 냄새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세속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그리고  얼음 아래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바특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쉴 동안 귓가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내 귀를 거쳐 텅 빈 계곡 어디론가 멀어진다.


논남계곡은 장작 패듯이 강씨봉과 귀목봉을 갈라놓고 긴 꼬리를 물고 휴양림을 빠져나간다. 폴더처럼 금방 접힐 듯이 능선은 서로 가까이 마주하고 있다. 늦은 오후가 되면 고개 마루금이 유독 눈부시도록 밝아진다. 아마도 계곡이 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잰걸음으로 한 시간 이상 내려가면 대처로 나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나는 마루금에서 비추는 희미한 햇살을 뒤로하고 텅 빈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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