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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May 17. 2021

무진기행...

월명리 당골에서 운수골

서울에서 강원도 양구까지는 먼 거리였다. 과거에 말이다. 과거래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아니다. 고작 십오 년 전만 해도 멀었고 그 전에는 더 멀었다. 춘천까지 왕복하는 것만도 하루를 꽉 채워야 했는데 양구까지 더 가는 것은 춘천에 간만큼 더 가야 양구에 당도할 수 있었다. 특히 배후령과 추곡령을 넘어 수인리와 웅진리 소양호 꼬부랑길은 가혹할 만큼 시간을 잡아먹었다. 1970년대 초에 소양호가 생기면서 억지로 산을 깎아 만든 도로였기 때문에 안전 문제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의 창자 같은 그 길은 악명이 자자했었다. 더구나 도로 상태가 엉망이어서 자동차 운행은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차마고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양구 사람들은 오히려 거리는 멀지만 인제로 해서 서울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양구나 인제에서 군 복무를 한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그래서 소양호에서 운행하던 여객선을 타고 춘천으로 나왔다고 한다. 하긴 그 당시만 해도 하루에 10번 이상 운행했을 정도로 활황을 이루어 양구뿐만 아니라 인제에도 뱃길이 닿았다. 내륙 지역에서 뱃길이라고, 먼 나라 얘기 같지만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다 알고 있다시피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면서 세계 최고의 토목기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병풍처럼 막혀 있는 그 산에 다 구멍을 뻥뻥 뚫어놓았다. 추곡리부터 양구 초입 심포리까지 거의 터널화 한 결과 거리는 1/3로 줄었다. 석현리 선착장에서 매일 열 번 넘게 운항하던 뱃길도 끊겼다. 수인리와 웅진리에 시외버스 정류장도 만들어졌다. 이제 춘천 시내를 빠져나와 달리면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악명 높았던 곱창길은 한 시대의 유물로 남아 꼬부랑길이라 명명된 관광도로로 변모하였다.     


사실 나는 그 덕을 많이 봤다. 15년 전 같으면 당일치기로 꿈도 꾸지 못했던 사명산 등정을 시간적인 부담 없이 감행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정말 그 당시에는 사명산이라고 하면 강원도 정선에 있는 가리왕산에 버금가는 오지로 여겼었다. 그런 사명산을 서울에서 소요산 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겐 센세이션 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더 깊은 오지를 가기 위해 오늘 산행 보따리를 쌌다.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양구 읍내를 가기 전에 웅진리에서 하차하여 바로 사명산을 올라갈 수 있지만, 오늘 산행은 양구 읍내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바로 월명리가 그곳이다.

      

월명리는 은둔의 땅이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마을이다. 영화 동막골처럼 첩첩산중에 위치한 외부로부터 은폐되어 있는 마을이다. 전쟁통에도 쉽게 침범할 수 없는 천연 요새였으며, 양구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이다. 사명산과 파라호를 사이에 두고 작은 개천 하나가 실핏줄처럼 흐르는 데, 그 골을 따라 농가 십여 채가 흩어져 있다. 왼쪽으로는 1200미터의 사명산 정상이 우뚝 솟아있고, 뒤쪽으로는 그에 버금가는 사명산 줄기가 감싸고 있으며, 오른쪽으로도 500에서 700미터에 이르는 산자락이 파라호까지 말발급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리니까 삼면이 산이고 개천 쪽 만 파라호를 접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이지 않고,  결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을이 아니다.

     

2020년 10월 24일 / 월명리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

그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오직 하나다. 양구에서 20리 길을 가다가 마지막에 가파른 공수령을 넘어야 월명리로 갈 수 있다. 물론 지금은 2년 전에 터널이 만들어져 한결 수월해졌지만 그래도 눈이 오는 날이면 통제되기 일쑤이다. 옛 고갯길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협곡 같은 좁은 골을 타고 급경사를 굽이치며 오르는 길은 정말 히말라야 산길을 연상하게 한다. 지금은 터널이 생겨 버스가 다닐 수 있지만 그 전에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굴곡진 경사면은 긴장감을 유발하고도 남는다.

     

양구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나는 주변 분식점에서 김밥 한 줄로 곡기를 채우고 택시를 탔다. 읍내에서 월명리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지만 하루에 3번 들어가기 때문에 산행 일정에 맞추기에는 불가능했다. 오후 3시에 들어가는 버스가 있긴 한데, 반대편 웅진리에서 넘어오는 경우에는 이용할 수 있었다. 사실 강원도에서는 하루에 두 번 들어가는 리 단위의 마을이 많고, 한 번 들어가는 마을도 상당하다. 물론 아예 안 들어가는 마을도 많지만 말이다. 설령 버스가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이른 아침이어서 읍내 버스로 외지 사람이 찾아들기에는 요원하다. 요즘 자동차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택시를 타지 못할 사람도 없지만 버스는 공적인 자금이 투입된 일종의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운행된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한 사람을 위해 버스는 들어가고 설령 승객이 없더라도 배차시간이 되면 이유 불문하고 운행한다.

    

택시는 공수리를 거쳐 위에서 얘기한 월명터널을 지나 월명 삼거리에서 상무룡리 방향으로 가다 당골 들머리에서 정차했다. 버스로 왔다면 여기서 10리 이상을 더 가야 상무룡리 종점, 그러니까 파라호 변에 낚시꾼들을 상대로 하는 민박집 몇 채가 있는 마을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것이다.


나는 택시에서 내렸다. 길은 텅 비었다. 차량 흔적이 없는 아스팔트 도로 위로 찬 기운이 핥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찬 기운은 봄이나 여름이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건너편 능선에 태양이 걸쳐져 있을 시간이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 길을 따라 더 들어가면 파라호가 나온다. 골수 강태공들이나 간혹 다닐 뿐 외지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길이다. 이 당골도 월래 사명산 등반 들머리여서 등산에 대한 흔적이 남아있지만 그마저도 이제 지워지고 있었다. 이곳까지 들어와서 산에 오른다는 것은 정말 지독한 산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퍼포먼스이다. 단순히 산에 오르는 행위가 아닌 루트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고결한 산꾼의 행위 예술적 등반이라는 것이다.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십여 년 전 8000미터 14좌 등정을 이룩한 박영석이 안나푸르나 등반 루트를 개발하다 사망한 사건을 보면 알피니스트들에게 등반 루트라는 개념이 무엇이지를 말해주고 있다. 루트 산행 또한 형식과 사이즈만 다를 뿐 추구하는 정신은 루트 등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21년 4월 17일 / 당골 마을

당골은 처음부터 예의도 없이 높은 폐활량을 요구한다. 사명산의 말 심줄 같은 능선 줄기들이 촘촘하게 둘러쌓고 있는 당골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농가 몇 채가 불청객을 무관심하게 마중한다. 이곳에 사는 사연들이 제각각인 듯,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퇴락한 농가와 새로 단장한 가옥들이 혼재해 있다. 그래 봐야 10 채도 안 된다. 그중에는 농사를 짓는 집도 있고 그러지 않는 집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좁은 골짜기에 변변하게 농사를 지을 밭도 없는 게 사실이다. 오래전 화전도 했겠지만 열악한 이곳에서 그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지난하고 궁박했던 그들의 삶이 어렵지 않게 연상되고 있었다. 삶은 그저 생존이라는 것, 보릿고개나 초근목피 같은 단어들이 맴돌았다.

    

2021년 4월 17일 / 마지막 외딴집.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했다.

그렇게 20분 정도 비탈면 마을을 다 지나면 마지막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농가 하나가 눈에 띈다. 웬만한 정자보다 조금 큰 정도의 작은 외딴집인데, 아래 마지막 집과도 2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그리고 경사가 심한 산등성이에 은폐되어 걸쳐져 있는 그 집 뒤로 50년 정도 되는 활엽수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 월명리에서 가장 높고 외진 곳에 있는 집이다. 작년 11월 이곳에 왔을 때 아주머니 둘이 김장을 하고 있었고, 오늘도 집 아래 공터에 SUV 차량이 주차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도 집의 외관을 보더라도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깊은 산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누가 처음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는지 그 사람이 정말 궁금했다. 과연 누구였을까.

     

이제 그 궁금증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트레킹 속으로 들어간다. 지역 자체가 워낙 깊은 산속이라 초입부터 오지 냄새가 물씬 풍겼다. 숲과 이끼 등으로 인해 길의 형태는 뚜렷하지 않지만 산판길처럼 꽤 넓었다. 사명산 오르는 중간점 해발 700미터에 암자 수준의 절집 터가 있는데, 아마도 그 절집과 관련되어 길을 냈는지 모른다. 당골 들머리에서 3킬로미터 정도 산길을 이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다는 것은 기록에는 없지만 이 지역에서 꽤 영험한 절집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표교 차 500미터에 이르는 산길이라면 결코 편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처에는 이미 봄기운이 확연하지만 당골은 이제야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마도 당골은 봄이 가장 늦게 오는 곳인지 모른다. 새벽에 돌부리를 비집고 머리를 내민 어린 쑥들이 아직 마른 풀숲 사이에서 발걸음에 밟히고, 철망처럼 얼키설키 꼬여 있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산벚꽃이 이 거칠고 음습한 당골을 그나마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개여울 소리였다. 두꺼운 얼음을 깨고 들고일어난 소리가 자신의 존재를 고하듯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겨우내 침묵에 눌려있던 소리가 질곡의 시간에서 해방된 듯, 이 산벚꽃 피우는 당골에 봄이 왔노라고 선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소리도 자신의 건재함을 선포한다. 이름도 알 수 없고, 금방 태어난 병아리처럼 아직 마음껏 소리를 지르지 못하지만 그 소리는 헤비메탈 같은 물소리를 발라드로 만들었다.  

    

2021년 4월 17일 / 당골 상류

이 당골의 겨울은 너무 길었다. 꽁꽁 언 땅과 계곡에 겨우내 눈이 쌓이고, 소리 또한 얼어붙어 긴 시간 동안 전나무 뿌리 밑에서 동면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침묵이었다. 암흑물질처럼 무거운 침묵은 동토의 땅을 가득 매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 흔한 바람소리도 없다면, 우주의 침묵 같은 정적이 대기압보다 더 큰 에너지로 이 대지를 짓누른다. 당신은 질식할 것 같은 그 침묵의 세계에 빠져본 적이 있는가.


당골의 봄은 이제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봄처럼 예쁘고 아늑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는 어느 무명 화가처럼 봄을 채색하고 있었다. 투박하지만 순수하게, 거칠지만 차분하게, 그리고 침묵하지만 쓸쓸하지 않았다. 나는 개여울 소리가 시나브로 작아지는 것을 감지하며, 고독에 못이여 쓰러져 있는 등산 이정표를 무심하게 지나, 그리고 이제 긴 이별을 고하 듯 사람의 자취를 잃어가는 그 당골을 걸었다. 이 길은 어느 누구도 유혹하지 않는다. 봄이 오고 생명의 메커니즘이 작동되더라도 세상에 알리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 당골의 봄은 무심하게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2021년 4월 17일 / 당골 상류

그렇게 당골의 봄에 취해 오르다 보면 도솔천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욕계에 내동댕이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 좋은 세월은 다 지났다. 만든 지 몇 년 밖에 안 되는 황토색 임도가 산허리를 타고 길게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놈은 입을 쫙 벌리고 침을 흘리며 나를 마중한다. 다른 곳으로 탈출할 곳이 없다는 것을 그놈은 잘 알고 있는 듯 유혹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온갖 교태를 부리며 나를 유혹했겠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영혼이 빼앗긴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마법에 걸긴 것처럼 나는 젓꿀이 흐르는 임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옛 등산로로 가면 1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20분 걸려서 돌아가야 하는 비효율적 상황을 홀로 투덜거리며 나는 걸었다. 아프리카 열병 울타리가 없었다면 옛 길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울타리를 월담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고난의 행군을 감수해야만 했다. 야생동물은 넘을 수 없지만 인간은 조금의 위험을 감수하면 2미터 정도 되는 울타리는 충분히 넘을 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물보다 우월한 운동 능력으로 말이다.

    

그래도 임도는 나의 불만을 조금은 달래주려는 듯, 1차 목표점인 임도 삼거리와 200여 미터를 남겨놓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진 지점에 도착했을 때 탁 트린 조망을 선사한다. 올라온 노고에 조금의 보답을 받은 나는 애들처럼 금방 입을 헤벌리고 봉우리 부럽지 않은 그 풍광을 만끽한다. 월명천을 사이에 두고 한 시간 반 전에 택시를 타고 지나왔던 월명터널이 바로 보인다. 이 산 중턱에서 보이는 월명리는 정말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물론이고 항공에서도 이곳에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고 보지 못할 것이다.     

2021년 4월 17일 / 임도 조망점. 월명터널이 보인다.

이제 오르막은 얼추 다 끝난 것 같다. 본격적인 월명 임도가 시작된다. 합수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나는 당골의 강한 인상을 털어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산행은 20킬로미터가 넘는 외형적인 사이즈를 경험하는 것도 있었지만 당골의 봄을 느껴보는 것도 큰 목적 중에 하나였다. 작년 가을에 접한 당골과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고 싶었다. 감히 평가는 할 수 없고 그냥 느껴보고 싶었다. 확실히 가을의 당골과 봄의 당골은 달랐다.

    

아무튼 나는 또다시 미로 같은 산길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미로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제 걷는 것이 일상이 된 듯 별다른 감흥은 일어나지 않았다. 첫 만남에는 항상 설렘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감정의 변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후 그저 길이 있기에 걷는다는 지극히 상투적인 명제를 수긍하는 나를 별견하게 된다. 혹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산행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못해 억지로 할 수 없으며, 그럴 경우는 맨탈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긴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직도 16킬로미터 이상 더 가야 한다. 항상 그렇듯 서사도 없고 드라마틱이라고는 전혀 없는 똑같은 길이 연속될 것이다. 길이 무너지고,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절경을 감상하고, 급경사의 희열을 느끼고, 그리고 위험과 맞닥트릴 상황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가다가 지겨우면 그동안 듣지 못한 클래식을 들을 것이고 그것도 지겨우면 과학 관련 팟캐스트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숲길을 오감으로 느껴보고 싶으면 모든 의식의 플러그를 뽑고 침묵 모드로 몰입할 것이다. 다리만 버텨준다면 무한정 걸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길은 거기에 존재할 뿐 나와의 싸움이다.

     

2021년 4월 17일 / 방천 임도

월명임도는 사명산 몸통 외곽을 마치 밧줄로 꽁꽁 묶어 놓은 것처럼 감아 돌고 있다. 산허리를 구절양장처럼 굽이굽이 가다 보면 추곡리에서 올라오는 사거리인 고개와 만난다. 바로 운수 고개이다. 그 고개를 넘어가면 방천리 운수골인데, 그 마을도 월명리처럼 파라호와 접하고 있으며 전문 낚시꾼이나 찾는 외부로부터 단절된 외딴곳이다. 그리고 월명임도와 이어지는 길은 죽엽산 허리를 돌아 방천리 애너미 고개에서 긴 여정을 마감한다.

      

그렇게 외진 곳에도 사람이 산다. 오래전 화전을 하던 폐가나 다름없는 집도 있고, 그 후예들이 농사를 짓는 집도 있고, 주말에나 가끔 주인이 찾아오는 집도 있고, 인생의 곡절을 잊기 위해 사는 집도 있고, 삶의 아픔 등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한 집도 있고, 그리고 각각 여러 가지 사연을 간직한 집들도 있다. 그러니까 집집마다 그들만의 오이디푸스 신화 같은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밝은 정신으로 보는 사람들보다도, 인생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 깊은 고립된 곳에 집을 짓고 무언가 마음의 정화를 위해 몸부림친다. 집은 주인의 정신세계를 대변한다. 고립된 곳에 집을 짓는 것은 그 주인의 정신적 파토스가 고립을 추구하고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집은 자신을 반영한다. 정서적 휴양이 목적이라면 이런 외롭고 적막한 곳에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일상을 영위하는 집이라면 그 생명력은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집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일정 기간은 집과 주인이 공존하겠지만 사람의 정신세계는 복잡하기 때문에 마음이 변하면 냉정하게 집은 버려진다. 마치 반려견을 버리듯이 말이다. 산에 다니다 보면 그렇게 방치된 빈집들이 상상 외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경치 좋은 산속에 흉가로 방치된 집을 보면 주인 없이 험악한 거리를 배회하는 유기견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제 철거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게 속절없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간다.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잡초와 잡목들이 뒤덮고 수많은 동물들이 드나들다 보면 집은 기괴한 바위처럼 산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세속과 선경의 욕망이 충돌하던 기구한 사연도 그 대자연에 흡수되어 땅에 묻힌다. 마치 천화처럼 말이다. 그 쓸쓸함에서 집주인의 쓸쓸함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2021년 4월 17일 / 운수고개와 그 고개에서 본 추곡리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선정과도 같이, 의식의 전원이 꺼진 채 걷고 있을 때 산길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잔뜩 흐렸던 하늘은 일기예보를 비웃듯 가는 빗줄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레인재킷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입고 있던 윈드재킷 후드를 뒤집어썼다. 후드를 스치는 빗방울에서 아직도 겨울 기운이 느껴졌고, 줄기차게 걷는 데도 한기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설악산에는 그 시간에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비도 차갑고, 땅도 차갑고, 앙상한 나뭇가지들도 아직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는 오래 내리지 않았다. 운수령에 도착할 즈음에 빗방울은 슬며시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지막 남은 찬기를 소멸해버린 듯 곧이어 태양이 하늘에 모습을 나타냈다. 정말 언제 흐렸냐는 듯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햇살을 만끽하며 운수 고개를 내려간다. 봄 햇살이 얼굴에서 화려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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