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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bridKIM Apr 15. 2019

13 우리가 만난 아름다움의 정체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바젤 여행기


# 바젤 유스 호스텔 Youth Hostel Basel과 노마드 호텔 Hotel Nomad


비트라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비트라와 바젤을 검색어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페인트칠은 되었으나 표면처리 하지 않아 시멘트 벽돌의 거칠고 투박함이 드러나는 공간에, 매끈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가구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놓여있는 사진이었다.

바젤 유스 호스텔의 다이닝 공간 ©hybridKIM


이름은 '바젤 유스 호스텔 Youth Hostel Basel'

호텔을 선택하는 기준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이것'과 '저것'을 따져보지도 않은 채 이 사진만 보고 이곳을 우리의 숙소로 점찍어 두었다.

더 이상 유스 Youth라고 할 수도 없는 자들이, 객실도 아닌 다이닝 사진만을 보고 유스 호스텔을 숙소로 르다니.(다행히 이곳에는 개별 샤워시설을 갖춘 트윈룸이 있었다.)


어쨌든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숙박시설 한 곳은 확정 지었다지만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킬만한 선택지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바젤은 스위스에서 박물관 밀도가 가장 높고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오랫동안 활동해온 미술과 건축의 도시니까 이런 힙한 공간들이 줄을 서서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기대는 외면당하고 말았다.

©hybridKIM


바젤 유스호스텔은 1851년 지어진 실크 제조공장 건물이다.

20세기 중반 스위스의 실크 산업이 쇠퇴하면서 공장이 폐쇄된 이후 1970년대부터 유스호스텔로 사용해 오다가 2010년 리노베이션과 증축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리노베이션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것들을 삭제하 것이 아니라 전제로  상태에서 시작는데

오래된 석조건물의 외관과 아치구조를 가진 염료 저장고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두고 증축부에 유리와 목재 프레임을 사용해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

우리가 본 그 사진 속의 다이 공간은 1800년대에는 염료 저장고였던 이다.


바젤 유스 호스텔의 증축부, 발코니 풍경. 옆 방과 발코니로 이어져 있다! ©hybridKIM
그리고 또 하나 매일 아침 발코니에서 만나던 것.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설계한 로슈사 La Roche의 본사 건물이 보인다. ©hybridKIM


이 증축의 설계를 맡은 버크너 브런들러 BUCHNER BRÜNDLER ARCHITEKTEN라는 바젤의 건축가 그룹은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스위스관과 우리의 호텔 후보지에서 최종 탈락한 노마드 호텔의 설계자들이기도 하다.

2010 상하이 엑스포 스위스관과 노마드 호텔 외관. 출처 https://bbarc.ch


그들의 홈페이지에서 뒤늦게 그 사실을 확인하고 객실 컬러 때문에 '여긴, 별로'라고 말한 나의 성급함을 반성하기도 했.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아래의 원인에 기인하는 것 같은데,

비트라의 샵에 놓인 이 책을 보며 E와 함께 웃었다. 출처 https://www.uropublications.com


건축가는 왜 검은색 옷을 입는가 Why do architects wear black?라는 책 제목의 주어에 내가 해당한다는 사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물론 저마다 다르며 검은색 옷을 입지 않는 건축가들도 많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제목을 보며 공감의 웃음을 짓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성급함이 아니라 직업이 문제였다.


어쨌든 우리는 노마드 호텔의 식당을 이용하기로 했고 식당을 이용하면서 보니 디자인에 쓰인 어휘와 디테일이 바젤 유스 호스텔의 그것과 유사하게 용되어 있 그런대로 위로 . 


노마드 호텔은 'Design & Lifestyle Hotel Nomad'라는 타이틀처럼 1층 레스토랑의 위치와 분위기가 흥미롭다. 도심의 가로에 면한 1층에 위치해 접근이 쉽고, 레스토랑 안의 구성원은 세대를 특정하기 어려운 현지인들이다. 게다가 캐주얼한 분위기가 호텔 레스토랑 치고는 심리적 진입장벽이 낮다. 아무래도 로컬 식당을 제대 찾아온  같다. 

숙박 대신 음주를 겸한 식사는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선택이 되었다.

먹고 마시느라 제대로 된 사진이 없다. 노마드 호텔의 레스토랑 ©hybridKIM


#쿤스트 뮤지엄 Kunstmuseum Basel

숙소에서 라인강을 거쳐 쿤스트 뮤지엄 가는 길 ©hybridKIM


숙소가 있던 세인트 알반(St. Alban) 지구에서 목적지로 가는 여정 대부분은 쿤스트 뮤지엄에서 시작되었다.

도착 첫날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시작한 바젤에서의 첫 일정도 쿤스트 뮤지엄의 비스트로였고, 비트라에 갈 때도 바이엘러에 갈 때도 쿤스트 뮤지엄 앞에서 트램을 탔다.


2013년 런던 타임즈가  5대 미술관으로 선정했다는 쿤스트 뮤지엄 바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립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1661년 법률가이자 미술품 수집가 바실리우스 아머바흐 Basilius Amerbach의 수집품을 시 당국이 사들여 그 컬렉션을 1671년 대중에 공개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 시립미술관의 시작이다.

예술이 아직 상위계급의 전유물이던 시대에 시립미술관이라니, 바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예술적 성취가 이해되는 지점이다.


예술의 도시 바젤의 위상을 증명하는 사건은 1967년에 한 번 더 일어난다.

미술품 수집가 루돌프 슈테린 Rudolf Staechelin에게 대여해 쿤스트 뮤지엄에 전시 중이던 피카소 작품 2점('두 형제 The two brothers'와 '앉아 있는 할리퀸 Seated harlequin')이 소유주의 파산으로 해외로 팔릴 위기에 처하게  .

바젤 시민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그림 구입비용 600만 프랑을 지출하는 것을 투표를 통해 승인하는 것은 물론 240만 프랑을 모금하기에 이른. 

이 소식을 듣고 감동한 피카소는 4개의 작품을 추가로 바젤시에 기증하게 된다.


쿤스트 뮤지엄 바젤은 약 4천 점의 회화, 조각, 설치미술 및 비디오, 30만 점의 소묘 등 방대한 소장품을 자랑하는데  작가들의 면면은 더욱 화려하다.

한스 홀바인, 마네, 모네, 고갱, 세잔, 고흐, 피카소, 브라크, 자코메티, 샤갈, 요셉 보이스, 앤디 워홀 등 르네상스 시대부터 인상주의, 입체주의, 구성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미국미술 작가들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에 숨이  지경이다.


아무튼 이렇게나 대단한 역사를 가진 미술관을 우리는 거의 매일 지나치면서도 비트라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방대한 컬렉션을 보는 2시간여 밖에 할애하지 못했고, 그나마도 페이퍼 뮤지엄에 꼭 가고 싶었던 디자이너 E의 통 큰 양보 있었기 가능한 일이 되었다.


쿤스트 뮤지엄 바젤은 총 3 개관이 있는데 그중 2016년에 개관한 신관이 인상적이다.

©hybridKIM


신관은 2002년에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국립 미술관 현상설계에 각각 31, 30의 나이로 당선된 바 있는 바젤의 젊은 건축가 그룹 크리스트 & 간텐바인 Christ & Gantenbein의 설계로 지어졌는데, 건축잡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 Architectural Digest의 표현을 빌자면 '이 현상설계에서 렘 콜하스, 데이비드 치퍼필드, 자하 하디드 등 대가들과의 경쟁에서 당선되면서 이들은 스타덤에 올랐다.' ( 외에도 페터 춤토르, 라파엘 모네오, 안도 타다오, 쟝 누벨, 디이너&디이너, SANNA 등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23팀이 경쟁에 참여했다!)


스타덤에 오른 만큼 패션지 보그에 등장한 건축가들. 블랙을 입고 있다. 출처 https://www.vogue.it
쿤스트 뮤지엄의 신관(2016) 출처 https://www.mark-magazine.com
내부 수리 중이라 가보지 못한 스위스 국립 미술관 (2016) 출처 https://www.architecturaldigest.com)


이 설계경쟁의 지침은 새로운 건물이 기존 도시의 구조 물론 관 건물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건축가들은 중앙의 둥근 천장, 계단, 바닥의 재료 등의 요소에서 본관의 건축 언어를 인용하고 건물 높이와 창 높이, 그레이 톤의 재료 등을 맞추어 본관과의 조화를 꾀하. 또한 외벽 디테일에 차이를 두어 기존 건물과 차별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본관 건물의 단순 반복이나 카피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은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건물로 설계하고자 했다고.

외벽 디테일 ©hybridKIM
본관과 신관의 연결통로 ©hybridKIM
각각 본관과 신관의 중앙계단 ©hybridKIM, eun
바닥, 벽, 계단실에 쓰인 서로 다른 물성의 회색들 ©hybridKIM

이 신관 건물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건축물 상단의 LED 스트라입 Stripe이다. 프리즈 Frieze라 불리는 건축물 상단의 띠 형태는 고전적인 건축양식의 전형적인 형태를 차용했지만 LED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되었다.

프리즈 Frieze. 예를 들면 이런 것. 출처 https://en.wikipedia.org
쿤스트 뮤지엄 바젤 신관의 프리즈 Frieze ©hybridKIM
지나가던 아이들이 창을 통해 전시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설계되었다. ©hybridKIM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방법 재가 만나는 방법

과거의 것들을 삭제하지 않고 활용한 바젤 유스 호스텔이나 다양한 세대가 공유하는 장이 마련된 노마드 호텔, 도시의 맥락 속에서 기존의 건물을 섬세하게 재해석해낸 쿤스트 뮤지엄은 모두 이 도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고 있다.


우리가 도착 첫날 느낀 '차곡차곡 쌓여있는 아름다움'의 정체는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지.

그 바탕에는 피카소의 작품을 위해 모금한 바젤 사람들이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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