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몸이 들려

몸짓 언어 통역사

by Nomadic


해외로 개인 여행을 하게 되면, 말이 통할지가 가장 염려되는 것 중의 하나다.

그래도 지금은 인터넷, 내비게이션, 번역기 같은 게 있지만, 예전에는 사실 단체관광 아니고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 여행을 하는 것은 상당히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대략 한국인들이 알 확률이 높은 영어권이나 일본을 제외하고는, 이른바 '바디 랭귀지'하나 믿고 용감하게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무용담은, 그 나라 언어를 잘하는 사람들의 여행보다 더 우리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기도 했다.

당당하게 이렇게 저렇게 몸짓으로 보여주는 데 못 알아들을 재간이 있느냐, 척 보니 이러이러 한 얘기더라, 는 등의 얘기는, 그러니까 사람은 어디 가나 다 비슷비슷하다는 위안과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나아가서 지구는 둥그니까 같이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뭐 이런 감정으로 마음이 훈훈해오게 해 주기도 하는 것이었으니까.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정말이지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겠는가!


하지만, 말로 똑 부러지게 의사전달을 해도 오해가 난무하는 세상에, 물론 바디 랭귀지 하나로 버틸 수는 없을게다. 찡그리거나 웃는 등의 전혀 가르치지 않은 본능으로 간주되는 감정의 표현방식도 있지만, 각 문화마다 같은 감정이나 의사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게 사실이고 말이다.


초등학교 때 한 선생님이 어느 날, 한국 사람들은 오라고 할 때 동작이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손목을 꺾으며 공기를 끌어들이듯 손을 젓는데, 미국인들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강아지 부르듯 손가락들을 위로 꺾어 올린다는 말에 나름대로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한국 방송 채널은 KBS TBC MBC 등 세 개 밖에 없었던 70년대에는 그밖에 미군부대를 위한 AFKN이라는 수신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채널이 하나 있었고, 우리 집에는 어쩌다 조그마한 소니 컬러티브이가 하나 있었는데, 아직 한국방송은 흑백이었을 때도 AFKN은 이미 컬러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걸로 어렸을 때는 일요일 아침이면 세서미 스트릿과 톰과 제리, 딱따구리 등의 만화를 봤고, 조금 커서는 가이딩 라이트와 제너럴 허스 피탈 같은 솝 오페라들을 보는 것이 영어를 접하는 것의 다였던 시대였으니, 지금처럼 여러 매체를 통해 외국인들의 몸짓을 따로 연구해 볼 기회도 적었던 때다. 부모님이 호주로 이민을 고려한 적이 있으셔서 우리는 졸지에 조기교육 비슷하게 일찍 영어를 접하기 시작해서인지, 영어도 그저 의사소통 수단의 하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지각하고는 있었지만, 서양인들은 말뿐 아니라 몸짓도 다르다는 것은 또 다른 개념의 난관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중학교에 입학해야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울 땐데, 그때 교과과정과 더불어 영어로는 동물도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을 배웠을 때도, 재미있으면서도 한편 뭔가 허탈한 심정이었다.

내 밑으로 둘이나 더 있는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건사하시느라 엄마는 책 읽어주기도 힘드셨고, 그러니 순전히 책이 얼른 읽고 싶은 마음에 세 살 때 한글도 혼자 깨쳤던 나는, 처음 영어를 접하던 날부터 영어도 공부가 아니라 암호 열쇠 찾기 같은 것으로, 자꾸 '접하다' 보면 스르르 깨쳐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어처럼 직접 외국인과 심지어 그들의 개와 고양이들을 만나보지 않고서는 배우지 못할 것이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는 책이라고는 서재에 먼지 쌓인 세로줄 해외 고전 전집뿐이었기 때문에 ( 감지덕지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읽다가 그것도 적응이 되면 가로줄이 이상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영어를 '깨치고' 나면, 역시 서재 한편에 꽂혀있는, '이국적인' 스케치가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걸리버 여행기' 같은 원서들도 (그때는 이 책들이 고전인 줄 모르고 동화책인 줄만 알았다), 엄마 책장의 블론디 만화도,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조크들도 곧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희망으로 차 있던 나는, 그렇게 한 두 조각 없어진 줄을 이미 알고 있는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 느낌이 되고 말았달까.


물론 AFKN과는 영 다른 발음(!)을 가진 선생님들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미국에 와서야 안, 미국은 동물이 다르게 우는 것뿐 아니라, 집과 새끼와 똥도 동물마다 다 다른 이름이 있고, 동물만 다르게 우는 게 아니라 기계도 다른 소리를 내고, 몸도 다르게 아프다는 것을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그 자리에서 영어 같은 것은 벽장에 처박아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확실히 모르는 게 약인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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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미국 생활 선배님이, '유학 와서 영어만 좀 되면 공부 잘할 수 있다고들 징징대지 마라, 한국에서는 한국어를 하니 다들 학점 만점이었냐', 는 일침을 하셔서 올커니,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어느 언어든 그 언어를 안다고 다 '알아듣는' 게 아니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20년을 미국에 살았으니, 이제 팝송 가사는 다 알아듣느냐, 너 영어 잘하냐(?)'는 무례한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나의 답은, 평생 한국에 살았으니 너는 아이돌 노래 가사 다 알아듣고 한국어는 좀 되느냐는 것이다. '요즘' 한국 노래 가사는 도무지 점점 더 알아듣기 힘들고, (한국) 말 제대로 못 하는 한국인도 너무 많다.

그러니, 모름지기 '언어'라는 것은, 대충 먹고사는 데 쓰이는 말만 통하면 된다는 말도 맞고, '잘하려면' 끝없이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말도 맞다.

또한, 시험 한 두 번으로 누군가의 '영어 실력'을 판단하는 것은 스냅사진으로 그 사람의 과거 전반을 파악하려는 것만큼이나 무리고, 공부 잘하는 것과 현명한 것은 다르듯이 영어 '시험을 잘 보는' 것과 영어를 '잘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늘 내가 설파하고 있는 주제지만, 영어는 그저 일개 언어일 뿐이고, 모국어를 포함한 어느 언어도 그 자체가 공부의 목적이 아니라 그저 매개 수단일 뿐인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다 알 수 없는 영원한 숙제로 남는다.


그리고 언어의 무시할 수 없는 기능, '의사소통'의 매개 중의 하나가 몸짓 언어다.

결국 같은 것인데도, 내가 바디랭귀지를 몸짓 언어로 굳이 바꾸어 말하는 이유는, 흔히 바디랭귀지라고 하면, '이거' 주세요(가리킨다), 머리 아파요 (머리를 잡고 얼굴을 찡그린다), 여기 가려면 이리로 쭉, 저리로 쭉, 그런 것, 대략 도리도리 짝짜꿍에 해당하는 것들을 연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와서 살면 본의 아니게 '눈치'가 발달한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대한의 국민이 외국에 나와 지레 '긴다'는 것이 아니라, 말 외의 언어에도 신경을 쓴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모국어가 아닌 말로 의사소통을 하려니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물론, 동작 하나하나, 얼굴의 미묘한 변화 하나하나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주의를 더 기울이게 된다.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매일매일이 전투다. 영어가 필요할 때만 꺼내어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보를 영어로 듣고, 영어로 읽고, 영어로 전달하니 영어로 '생각'을 해야 한다. 의사소통이 분명할수록, 오해는 없을수록 좋고, 동료나 상사라면 실제로 상대방이 무슨 뜻에서 저런 말을 하는지 짚을 수 있으면 좋다. 그저 인간을 믿는 마음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인종차별이 아니더라도 포식동물인 인간은 언제든지 밟을 수 있는 것은 밟는다.


그래서 나는, 실제 말도 중요하지만 특정 몸짓이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의미, 그리고 신체부위를 가리키는 말을 사용한 감정의 표현법, 같은 문장 구조이지만 몸의 부위만 달라지면 어떻게 달라지는 가, 전치사 하나로 또 어떻게 다른 의미가 되는가, 그리고 같은 신체 부위와 몸짓이 한국과 다른 의미를 가지는 등에 관한 것에 대해 늘 관심이 있었고, 있고, 그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물론 신체 부위를 사용한 표현은 너무나 많아서 한 권으로는 도저히 다 다룰 수도 없을 정도다. 그래서 처음 구상은 대략 하체 제외하고 상체 정도였는데, 그게 다시 좁혀지고 좁혀져서, 머리도 제외하고, 상체 중심으로, 어깨, 목, 등, 가슴, 배 등 이른바 torso라고 불리는 부위와, limbs팔다리 중에서 상체에 달린 팔, 팔꿈치와 손, 손가락까지만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본의 아니게 얼굴 없는 미인이 되어버렸는데, 감정은 사실 얼굴을 보면 가장 빨리 알아챌 수 있을 것을 안다. 근육이 80여 개고, 이를 사용해 만들 수 있는 표정은 수천 개라고 하는 얼굴은, 입으로 말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가장 감정 표현이 잘 드러나는 곳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조차 감정의 표현이 되니까.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만으로도 지금 생각하는 단어가 gawk, gape, slack jaw, yawn, open, crack, split, 등 다 다른 모양새와 감정을 드러내니, 머리 전체는 관두고 입과 눈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이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얼굴 말고도 다른 부위에서도 오히려 더 섬세하고 소중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는 것에 주목하기로 했다. 누군가에 대한 기억은, 얼굴 외에도 당시는 얼핏 스쳐 지나갔던, 의미도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아니 알았지만 무시하고 싶었던, 하지만, 혹은 그래서, 더 두고두고 떠오르는 작은 몸짓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몸짓들 대신 말로 확실히 말해주었더라면 달라진 게 있을까. 말로 하면 좀 더 잘 이해했을까.

하지만, 그보다, 내가 더 그 몸짓을 잘 읽었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등을 툭툭 두드려주던 손, 옆구리를 넌지시 찌르던 팔꿈치,

짐짓 씩씩하게 펴 보여주던, 혹, 대수롭지 않다는 듯, 으쓱, 하던,


그 어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으로 시작하도록 하자.


*disclaimer : (이 디스클레이머는, '부인 성명'으로, '무엇은 아니다', 고 미리 선수를 쳐서 주로 특정 책임을 분명히 집어 두는 사항들을 말한다)

상체만 가지고도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각 몸 부위의 단어에는 여기서 다루지 못한 다른 뜻과 의미들도 물론 남아있다. 사용빈도도 감안하고, 별로 재미없는 것들 등은 내 임의로 추려냈다. 애초에 모든 세부사항을 다루려면 한 권 가지고는 되지도 않거니와 무엇보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씩 연관 있는 것들을 연결해서 한 자리에 모으는 것에 치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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