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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Oct 27. 2019

알래스카 겨울 이야기(2)

월동 준비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모습이 아름다

움은 물론, 어제같이 겨울잠에서 일어나 묻어둔 씨앗들을 꺼내 먹던 다람쥐들도 다시 부지런히 솔방울을 모아 나무 밑에 수북이 쌓고 묻으며 겨울 준비를 시작한다.

arctic ground squirrel (spermophilus parryii)

미시간에 살 때 지나가는 다람쥐에게 괜히 땅콩 몇 개 줬다가, 이 팔뚝만한 놈이 모기장을 두번이나 찢고 들어와 난동을 피운 후로는 미안하지만 나는 다람쥐가 전혀 귀엽지가 않다. 그 다음에 산 노스다코타 주의 jack rabbit라는 종의 토끼도, 역시 작은 사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리도 길고 엄청난 크기라서 역시 전혀 귀엽지가 않았는데 내가 사는 페어뱅크스에는 토끼도 거의 보이지 않고, 커다란 청설모도 없다.

대신, arctic ground squirrel (학명 : spermophilus parryii) 이라는 조그만 다람쥐들이 있는데, 알래스카에 사는 질긴 종이라 그런지 제법 추워질 때까지 안 자고 봄에도 아직 눈이 녹지 않았을 때부터 일어나 눈밭에 터널을 뚫고 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녀석들도 별로 귀엽지가 않다. (사진이 특별히 사납게 나왔다고 생각하는 그대는 아직도 환상속의 그대)

산골짜기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가지고 소풍을,

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 집 주변 산책로 끝에 있는 가문비나무에는 터프가이 하나가 사는데, 크기는 아무튼 생수병만 한 것이 어찌나 시끄럽게 짖어대는지, 처음에는 새소리인 줄 알았는데 다람쥐인 게 기가 막혀 검색해보았더니,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그렇게 떠드는 녀석들이 있다고 한다. 쳇, 안 먹어. 아무리 내가 견과류를 좋아하지만 솔방울 따위 나 안 뺏어 먹는다구.


처음에는 도토리나 밤나무도 없이 솔방울에 먹을 것이 뭐가 있길래 그러냐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주먹만 한 크기에서 고작 엄지만큼 나오는 부분을 먹겠다고 가시도 날카로운 아티초크를 키워 먹는 인간이 할 말은 아니다.

게다가 미시간에서 이미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깨달은 후로는, 어설픈 디즈니 다람쥐 같은 이미지는 멀리멀리 떠나버렸고, 다람쥐나 나나 각자 잘 살기로 협정을 맺은 지 오래다.


다람쥐들도 이렇게 열심히 월동준비를 하는데 사람도 월동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알래스카인의 월동준비라면 김장이나 솜이불 준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 얘기다.

확대해서 보셔야 소용없습니다. 언제적 누구 차인지 모름.

북캐나다나 일부 알래스카 지역처럼 겨울에 영하 10도 이하를 넘나드는 날이 두어 달 이상 지속하는 곳에 살려면 그저 겨울용 부동액을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부동액이 얼어 엔진이 들러붙지 않게 하는 winterization 설비가 필요하다. 이는, 차 엔진을 열선으로 감싸는 장치로, 이 열선에 연결된 plug플러그를 집이나 학교, 도서관, 식당 등 대부분의 시설에 준비되어 있는 소켓에 꽂을 수 있게 해 둔 장치다.

물론 무료이다. 이 정도 시설도 준비해놓지 않고 알래스카에서 장사를 해 먹으려고 하는 것은 무리다. 무료 전기라면 누가 뽑아먹지 않을까 생각하는 건설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이 계실지 모르는데, 차를 보호해야 하는 온도라면 왠만한 전자기기는 쥐약 좋지 않은 서식조건이라는 것을 유념하시면 좋다. 물론 안에서 조절 가능한 장치라서 온도가 낮지 않으면 꺼 둔다.


알래스카라고 해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처럼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은 (나중에 설명하겠음) 앵커리지만 해도 각자 알아서 할 일이지만, 페어뱅크스정도 위도에 살려면, 차를 구입할 때 약간의 추가비용을 내고 이 설비를 해 놓은 것을 사던가, 자기 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반드시 이 설비를 해야 한다.  

더운 피 동물인 사람도 난방하고 들어가 앉아있으면서, 말 못 하는 차라고 바깥에 그냥 내버려두면 인간적으로 너무하기도 하지만, 사실 너무 더운 곳에 살아도 마찬가지듯이, 추우면 이동에 차 의존도가 높으니까 편의에 의해 차를 더 잘 관리해줘야 하는 이기적인 목적이다.  

화씨로 0도 이하, 즉 섭씨로 영하 17도 정도 밑으로 내려가면, 적어도 시동 걸기 전 두시간 전쯤에는 콘센트에 꽂아 두는 게 차의 사실은 나의 신상에 좋다. 추우면 집난방비만도 상당하기 때문에, 차고를 난방하느니 덥힐 필요 없는 차체는 말고 엔진에만 뜨거운 찜질 담요를 싸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고 가볍게 말하고는 있지만, 역시 몹시 추운 날 차를 두고 들어오노라면, 감기기운 있는 아이 이불 덮어주는 에미처럼 나도 모르게 웅얼웅얼 염려의 인사말을 하게 된다. 괜찮을거야. 잘 자.

인간의 무생물 감정이입은 진화론적으로 참으로 불휘 깊은 나무이다.


이 설비 때문에, 앵커리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페어뱅크스 이북의 모든 차 앞에는 혓바닥처럼 플러그를 차 앞에 대롱대롱 매달고 있고, 이게 없는 외지 차가 보이면 한여름에도 불안해서, 나쁜 예언을 하는 마녀처럼 검은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목쉰 소리로 ‘돌아가욧 겨울이 오기 전에!’ 하고 외치고 싶어진다.


삐꼭!

좀 떨어진 건물 안에서부터 시동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사정거리가 긴 오토 스타터도 필수다. 요즘에는 앱으로 시동을 켤 수 있는 모양이지만, 차의 현재 온도도 알려주고, 아주 추운 날은 아예 차의 시동을 좀 더 있다 끄게 한다거나 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 좋다. 내리기 전에 좌석 열선 스위치를 올려두고, 출발하기 10분 전 정도 전에 미리 실내에서 시동을 켜 놓으면 차도 좋고 나도 좋다.


셀폰충전은 잊어도 겨울에 이 리모트의 충전은 잊지 않는 것이 참 알래스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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