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ic Oct 31. 2019

알래스카 겨울 이야기(8)

오로라

내가 앞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편견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내가 살다 살다 진짜, 알래스카에 가면 오로라가 보이냐, 진짜 아름답냐고 물어보시는 분들 계시는데 정말이지,


오랜만에 맞는 말씀 하셨다. 영영 안 물어보는 줄.


오로라 볼 수 있고, 아름답습니다. 무척. 데헷

그나마 가장 덜 화려하게 보정한 듯한 사진을 골라보았다.

그러나, 너무 근사하게 찍은 화려한 색의 사진 하고는 좀 다르다.

고속 촬영하고 웅장한 배경음악을 깐 비디오와도 다르다. 실제 배경음악이라고는 그대의 벅찬 숨소리뿐이지만, 혹시 단체 관광을 오셨으면 주변에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소음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Don't kill the messenger.라는 표현이 있는데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그 소식의 근원 대신 애먼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을 미워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역사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 얼핏 소년 관창 생각이 나기도 한다만. 설마 나를 이런 걸로 해하려 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현실을 지적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미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사실이 그러하다. 내가 뻥을 잘 못친다.


2019년 4월 판 뉴요커지의 James Lasdun의 글 <Glow>에 상당히 공감을 했는데, 이 사람은 노르웨이 핀란드 쪽의 화려한 유리돔 이글루를 시작으로 북구 유럽을 돌아보았던데, 몇 번이나 허탕 친 에피소드와 오로라 관광사업의 현실 등 내가 읽은 오로라 '관광' 글 중에서는 가장 현실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고가의 고급 사진기로 오래 노출한 카메라로 찍은 오로라와 별들의 사진은 육안으로 본 것보다 너무나 화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흐린 날씨라서 볼 수 없거나, 카메라로는 희미하나마 잡히는데도 육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오로라를 드디어 그가 스스로 목격했을 때의 감상은 처음 내가 오로라를 보았을 때와 너무 흡사해서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처음 오로라를 보았을 때의 나의 감흥은, 일단 턱이 아프고 (입이 안 다물어지기 때문에), 이 위대하고 거룩한 것이 그저 물리학적 현상이라는 것이 어쩐지 서운하기도 하고, 그런데 또 그런대로 의미가 있기도 하면서 뭔가, 진리를, 우주의 흐름을, 돌아가는 사정을 ‘알 것’ 같은 것이었다. 제임스 라스던도 동의하는 부분이 바로 이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데, 아니어야 하는데 분명 별거인.


이것도 제법 비슷하다.

aurora Borealis 오로라는 미국에서는 northern light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데, 일반적으로 오로라는 사진기로는 총천연색이 잡혀도 보통 육안으로는 그저 가장자리에 약간의 프리즘을 띈 녹색인 경우가 많다.

서서히, 지면을 향해 드리워진 연한 옥빛 커튼처럼 3D로 일렁거린다..

여러 나라에 걸쳐 있는 북단의 오로라 둥근 고리는 반지처럼 다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얼굴을 지면과 평행하게 들어 열심히 올려다보는 동안 저기서 일렁인다 싶으면 어라 없어지고, 끝났나 싶으면 다시 둥실 여기에 모른 척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날은 그저 허여 멀끔하니 실구름 같기도 하고, 심한 날은 온 하늘 가득 빛나는 에메랄드이기도 하다. 처음에 희미하게 보았을 때는 구름과 어떻게 구분하나 자신이 없었는데, 한번 밝게 빛나는 것을 보고 나면 그런 염려는 없다.

오로라는 오로라이고 오로라는 오로라이다.


자연히 어두울수록 더 잘 보이고 사진도 잘 찍히겠지만, 9월부터는 밤에 제법 어두우니까 오로라 알람이 들어오는 데로 잠옷에 가운 하나 걸치고 뒷마당에 나가서 볼 수도 있고, 가로등 밝고 차가 많은 도시 한복판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한 번은 겨울에 따뜻한 라스베이거스에서 며칠 놀고 돌아와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택시에서 기사 양반이, 소나기 오네, 쯤의 말투로 아이코 오늘은 오로라가 좋네,라고 말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정말이지 도시의 온 하늘이 거대한 초록 커튼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는데 조금 바라보다 이내 미터기로 눈을 향한 적도 있다. 아저씨 인간적으로 집 근처에 다 왔다고 그렇게 서행 운전을 해서 20불을 채우실 필요는 없잖아요.


오로라는 태양 활동이 활발한 시간과 어두운 시간과 구름 없는 시간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볼 수 있다.

오로라 예보가 위의 지도처럼 좋아도 오늘처럼 눈이 와서는 오로라를 볼 재간이 없기도 하지만, 겨울에는 밤이 길고, 알래스카는 딱히 강수량이 많은 편이 아니니까 태양 활동만 대충 맞으면 되긴 한데, 태양 활동, 그것이 장기 예측이 안된다는 것도 문제다. 보통 패키지 예약은 한두 달 전에는 하실 텐데, 정확한 태양활동은 한 두 주 정도 전부터 가능하고 기상은 또한 장기 예측이 어려우니 말이다.

그게 쉬우면 왜 소풍날 비가 오겠는가.


여기서 잠깐, 내게는 남대문이 남쪽에 있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지만 가끔 일껏 얘기를 해도 깨닫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말해두는데, 오로라는 밤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즉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적어도 가을은 되어야 볼 수 있다!

싸구려 이발소 달력 판 오로라 사진을 보아도 배경이 밤하늘인데도 백야‘현상’과 오로라가 공존하리라 생각하시면 곤란하다. 하지에는 해가 4시간밖에 안 져서 한밤중에도 훤한데 그 희미한 불빛을 볼 방법이 없지 않은가. 즉, 굳이 알래스카 사는 사람 앞에서, ‘나는 추위는 당최 싫어서’라고 어깨 움츠리는 재미나는 분들은 오로라 볼 생각은 애초에 하지 마시라고 미리 말씀드리고 싶다. 여름에 크루즈 타러 오셔서, 빙하도 보고 고래도 보고 까르르 우리 귀여운 해달 조개 까는 것도 보고, 한정된 횟수와 인원만 입장이 가능한 데날리 공원에 들어가 곰이 얼마나 무서운지 몸소 체험하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시는 건 좋은데, ‘그 참에’ 오로라도 보고 가겠다, 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주로 더운 나라로 관광을 가고, 알래스카에 와도 여름에 크루즈 타러 오는데, 오로라를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는다고도 하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버킷 리스트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일본인들은 여름보다 겨울에 알래스카에 많이 온다.


흥, 그러면‘더’ 아름다운 핀란드나 노르웨이를 가지 뭐, 하고 토라지는 그대여,

흥, 거기도 추울 때 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나도 토라진다.


알래스카의 가장 큰 도시 앵커리지는 61.21° N으로, 많이들 좋아하시는 ‘아름다운 복지국가’ 핀란드의 헬싱키의 위도 60.16° N과 비슷하다.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평균기온

핀란드 추운 거도 알알알고 있숴! 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그래도 핀란드는 괜히 ‘춥다는 것의 대명사’로 심심하면 한 번씩 칼 쓴 춘향이처럼 끌려 나오지도 않고, 오로라 보러 가는데도 큰 부담을 안 느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핀란드 헬싱키는 알래스카 외에 또 하나의‘추위의 상징’인 위도 55.75° N인 러시아의 모스크바보다 북쪽이며, 다시 그 모스크바는 59.93° N의 생 뻬쪠스부르크나 59.91° N에 위치한 ‘아름다운 북구유럽’ 노르웨이의 오슬로보다 남쪽에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평균기온

게다가, 앞서 언급한 뉴요커지의 아티클에 의하면, 어느 유명인의 소개로 2천 년 초반에 뜨기 시작한 오로라 관광사업으로 차려놓은 유리 돔은 실제로는 편하게 누워서 오로라를 감상하기는 힘들며, 실제로 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보장 안 되는 것 대비 가격도 엄청나고,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가히 돛대기 시장이라서, 고요한 자연 속에서 오로라를 감상한다는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오로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을 얼음낚시나 개썰매 등으로 달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니까.


그 아티클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알래스카까지의 비행기 값만 생각하고는, ‘그렇지 한국에서는 비행기값 싼 유럽으로들 가셔야지’ 하고 너그러이 이해을 했었는데, 오로라를 보고 싶다면서 일껏 비행기 값은 싸게 유럽에 가서 사실은 별것도 아닌 '얼핏 사진으로 보아 근사한' 돔 호텔과 인스타 그램에 올인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고생을 안 하려고 하면 역시 미국이 최고라는 믿을만한 의견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미쿡인들은 절대로 wilderness자연을 체험한다며 관광객을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한국인들이 말하는 글램핑은 이들에게는 일상이다. 스포츠용품 가게에 가보면, 이럴 거면 캠핑은 왜 가니 싶은 것들이 쟁여져 있다. 내가 알래스카로 오기로 ('사는' 이유는 또 조금 다르다. 그 얘기는 나중에) 결정한 것도 사실 무슨 거룩한 진취적 기상이 아니라, 높은 임금과 이 '미국인들의 편의시설에 대한 열망'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살기 좋은 곳'의 조건에는 뜻밖에 자연환경과 '보람'보다는 쇼핑과 연봉이 중요한 법이다. 그게 아니라면 왜 모두 농촌을 떠나는거죠. 흥 (아직도 토라져 있는 나는 속좁은 사람)


만약, 정말 그대가 원하는 것이

오로라 사진이나 오로라를 보러간 본인의 사진이 아니라

오로라를 보는 것이라면 말이다. (아니었어?)

유치하지만 뭐 이런거 정도?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올해 가을에는 '순전히 우연히' 태양활동이 무척 활발하였다. 아직 낮에는 티셔츠 정도의 날씨에 해도 아직 완전히 짧아지지 않은 가을 초입부터, 자기 전 뒷마당에 나가보면 구름처럼 대수롭지 않게 오로라가 '떠 다니고' 있어서, 이걸 보러 왜 겨울에 오시는 건가 의아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다시 말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이고 지역주민이나 누리는 특혜이다. (이런 걸로 받는 '특혜'라면 아무도 뭐라하지 않겠지)

그래도 요즘에는 앱이라는 신문물이 있어서 단기간은 예측도 가능하고 알람도 받을 수 있어, 잠깐 오로라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라면 잠 정도는 기꺼이 바꾸실 것이라 믿는다.

꽤 볼만하니까 (괜히 내가 으쓱)


'아주아주 가끔' 태양 활동이 엄청나게 강해서 저 아래 위도 40 정도의 위도에서 목격된 적이 내가 미국 사는 20년 동안 두 번인가 있었으니까, 핀란드나 알래스카처럼 추운 것도 싫고, 귀찮아서 멀리는 못 가겠는데 죽기 전에 오로라는 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위도가 서울보다는 조금 높은 곳에 상주하시면서 복권 맞기를 기다려 보시는 방법도 있다.

그 유명한 유배지로 유래 깊은 아오지 탄광의 위도가 42.51° N 된다는 것을 참조하세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지금 이 순간~ 북구 유럽, 알래스카, 캐나다 등의 오로라는 늘 동경의 대상인데 왜 비슷한 위도의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의 오로라는 왜 언급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지만, 역시 인스타그램 탓이겟지 후후




오로라를 '제대로' 찍으려면 800불 이하짜리 카메라로는 시도도 하지 말라고 하길래 내 아이패드와 일반 캠코더로는 포기한 지 오래다. 인스타그램 어카운트도 없는 내게 알래스카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것을 기대하신다면 좀 죄송하지만 온라인에 나 말고도 많은 전문가분들이 찍어놓은 것들이 있는데 정말이지 나까지 거들 것 없을 것 같다. 국수 한 그릇을 찍을 수는 있지만 정말 확실히 맛있게 찍을 것이 아니면 식욕 떨어지는 사진을 굳이 올릴 필요 없다는 생각? (전설의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가장한 심드렁자)


어차피 뭐든 기억에 잘 담아둔 것이 더 오래가기도 한다.

마음만 먹고 기다리면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지금은 오로라도 알래스의 눈같이 또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눈이 절대 질리지 않는 정도로 그래도 그대로 좋아서 좋다. 눈이 많기로 유명한 미시간에서부터 첫눈이 반갑지 않은 적은 없었기도 하고. (알래스카는 추워지면 눈이 안 녹아서 그렇지 대체로 눈이 그렇게 많이 오는 곳은 아니다.)


좋다.

살면서 정말 좋은 것 중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 것들도 있지만,

그렇게 늘 기다리면 온다는 것을 아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이전 08화 알래스카 겨울 이야기(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