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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Oct 30. 2019

알래스카 겨울 이야기(6)

冬至(동지)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매년 12월 21-22은 해가 가장 짧은 동지 (winter solstice)고, 음력을 쓰지 않는 미국에서는 입동이 아니라 동지를 겨울의 시작으로 친다.


우리가 알래스카에 도착하자마자 알래스카 선배님들은, 영하 50도 설화(!!) 포함, 일종의 주의사항이나 경고생겁주기 등을 허심탄회(!!)하게들 들려주셨는데, 사실 많은 분이 생각하시는 것과 달리 많은 부분이 추위가 아니고 긴 겨울밤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여름에 해가 매우 길어 백야가 있는 것처럼, 북단의 겨울에는 밤이 매우 길고, 동물은 빛이 필요하게 진화를 했기 때문에, 일조량이 일정 수준이 되지 않으면 우울해진다며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일조량에 대한 경고는, 이미 처음 5년 간 살았던 미시간에 도착하자마자 들었던 얘기였다.

Lake Michigan, Lake Huron, Lake Erie, Lake Superior로 둘러싸고 있는 둥근 장갑 모양으로 유명한 미시간 주는 lake effect ‘호수 효과’에 의해 강수량이 많고 흐린 날이 많다. 그래서 ‘어느 해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는 40일 동안 해가 안 나 자살률이 엄청났다’는 괴담은 알래스카의 영하 50도 괴담과 묘하게 닮아있다.

아무튼 사람들은 초짜들 겁주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초짜들은 겁을 먹게 마련이다.

미국에 와서 한 군데서만 산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사실 자기 사는 지역만 알고 '미국'은 잘 모르는 수도 많지만, 이렇게 좀 굴러 먹은 사람의 유리한 점이 있다. 촤 어디서 이 솨람들이.


나도 여러번 보고 비디오도 소유하고 있는, 우리의 바르시니코프 옹이 멋지게 출연한 영화 '백야 - 1985'와,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인썸니아 -2002'로 인하여 계몽된 많은 분들은, 위도가 높은 곳에 백야가 있는 줄은 아시면서, 그게 지구 기울기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기초과학과 연관을 잘 못시키시는 것 같다.

백야라는 건 즉, 그저 위도가 높은 곳에서는 여름에는 그저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는 기간이 짧아져 낮이 길어진 것이고, 따라서 위도 높은 곳에서의 겨울에는 해가 지평선 아래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져 밤이 길어진다는 것을 생각 못하시는 분이 많은 것이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대학졸업률을 자랑하면 뭐하는가 배운 것을 실용화하지 않으면. 이래가지고는 수학은 인터넷 쇼핑할 줄 아는 만큼만 배우면 되는거 아니냐는 말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지진 강도가 1 높아지면 로그 1 높아지는 거란 것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이 잔소리 하는 중)


백야는 백야白夜인데 겨울에 밤이 긴 건 왜 흑주黑晝라 부르지 않는지 모르겠다만, 백야처럼 일출 일몰 시각에는 앞뒤로 은빛의 시간이 있어서 생각보다는 밝은 시간이 길지만, 아무튼 10월부터 2월까지는 장시간 어둡다.

이 거대한 알래스카에서는 주내에서도 일몰 일출 시각이 남북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중부의 페어뱅크스는 동지에는 실제로 해가 떠 있는 시간은 4시간이 채 안 된다.

그래서, 공공도서관에서는 인공 해 램프를 대여해주기도 하고, cabin fever(겨우내 집에 틀어박혀 운동량 부족과 일조량 부족으로 건강을 해치는 것)에 대비해서, 도서관과 콘서트홀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주민들이 나와서 활동할 것을 장려하기도 한다.


사실 나도 처음에 좀 긴장하긴 했었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다행히도 어두워서 우울해지거나 하는 건 모르겠다. 글씨가 작으면 돋보기를 끼듯 어두우면 필요에 의해 불을 켤 뿐, 밤낮의 길이에 대해 계속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뭔가를 계속 측정하고 재고 있다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다. 공기가 좋지 않으니 매일 공기 수준을 점검하고, 혈당의 건강수치가 유지되지 않으니까 매일 혈액검사를 하는 것이다. 삶에는 해 말고도 다른 채울 것이 많다는 생각이다. 배고프니 밥 먹고 졸리니 자고 손톱이 길었으니 깎듯이, 해가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저 그때그때 느껴지고 반응할 일이 될 뿐이다.


동지에 해가 짧다는 것은,  해가 속도가 빠르게 슝~ 떴다 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고도가 낮아서, 나오는가 싶으면 도로 들어가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알래스카에 산 이래로는 사실 한국 사람들이 일출이나 일몰을 보려 애써 어딜 멀리 간다고 하면 문득 의아하다. 보아도 보아도 아름다운 일출 일몰 자체가 시시해서가 아니라, 겨울에는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집에 난 커다란 남향 창으로 몇 시간 만에 해가 왼쪽 끝에서 떠서 포물선을 그리며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걸 떠가는 구름 보듯 쉽게 지켜볼 수도 있으니까.

사실, 동지도 아니고 정초의 해는, 보름달처럼 모양이 다른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별로 특별한 해도 아니다.

정말 북극에 가면, 동지에는 해가 정말 잠시 이마만 내밀었다 지기 때문에, 과학적인 설명이 안되던 시절의 원주민들에게는 동지에 해가 사라지는 것은 얼마나 두려웠을 것이고, 또다시 '해가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현상이었을지, 왜 해를 신으로 섬겼는지 짐작이 간다.

이런 곳에서 동지에 거의 꼬박 하루를 사라졌다 비로소 뜬 해를 보면 가히 '참 일출'을 보았다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알래스카는 오로라 관광이 아니라 일출관광을 모집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세요 알래스카 앉은 자리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곳.


뉴 멕시코 산타페의 전통 주택

여기서 잠깐,

얼핏 이글루 같은 걸 생각하고 추운 곳은 집에 바람 들라 창을 작게 뚫고, 웅숭거리고 살아야 할 것 같지만, 그건 다른 문명은 물론 단열 창문이 없을 적 얘기지, 난방에는 태양열 에너지를 무시할 수 없어서, 적도에 가까운 더운 곳일수록 창을 작게 내고, 알래스카는 외려 대부분 이중 단열 창을 해가 잘 들도록 크게 낸다.

때문에,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하는 동지부터는 다시 길어지는 해로 일조량은 점점 많아지고, 그래서 실내는 해가 나는 만큼 차츰 더워져서 겨울을 잘 나게끔 자연스레 발란스가 맞춰지는 부분도 있다.


본격적으로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11월부터는 4월 초까지는 거의 녹지 않으니까 항상 사방에 눈이 있고, 그래서 하얀 반사 빛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렇게 어둡다는 느낌이 안 드는 것도 있다.

그래서 외려, 겨울 초입에 눈도 없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가 실제로 밤이 길 때보다 더 싫다는 사람도, 거꾸로 겨울에 어두운 건 어차피 불 켜고 실내 생활하니까 괜찮은데 여름에 해가 안 지는 건 암막 커튼을 쳐도 완전히 피할 수 없어 더 고역이라는 사람도 있다.


옛날에 침 좋아하던 길창덕 님 만화 '꺼벙이'에서, 꺼벙이가 방학숙제 일기가 쓰기 싫어서 미리 다 써놓고 그대로 하기로 하다가 망하는 에피소드가 있었긴 하지만, 사람마다 자기 얘기는 자기가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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