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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Oct 29. 2019

알래스카 겨울 이야기(5)

북극의 노천 유황온천

Chena 치나 강을 끼고 있는 우리 페어뱅크스의 주변 소도시들을 묶은 일종의‘구’인 North Star ‘borough’ 북극성 구에 속해 있다. 그리고, 페어뱅크스 가까이에는 엉뚱하게도 이름이 North pole 북극이라는 소도시가 있다. 물론, 알래스카 중부쯤에 있기 때문에 물론 진짜 북극과는 거리가 먼 '무늬만 북극'이다. 여기를 다녀가고는 북극을 다녀왔다고 말하느냐 아니냐는 순전히 그대의 양심유머감각에 달려있다.


그래도 이름값을 하느라고 사계절 크리스마스 마을이 있고, '산타클로스 하우스'라는 커다란 상설 크리스마스 기념품 상점이 있다.

사실 미시간에도 Frankenmuth 프랑켄무스라는 상설 '크리스마스 마을'이 마을이 있었는데, 상설 크리스마스라고 해봐야 상점이라는 얘기고, 슈니츨이나 소시지 등 독일식  음식을 맛보러 몇 번 간 적이 있다.

이 상점에는 무릎에 기어 올라가는 순간 내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는 관심 없고 운 것만 다 알고 있을 것 같은, 미안하지만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산타 할아버지가 상주하며, 어린이들의 얼마 안 남은 동심을 안간힘을 다해 자극하려 애쓰고 있다.

마당에는 꾀죄죄한 루돌프, 아니 순록 한 마리가 있는데 주변의 풀을 뜯어주면 착하게 잘 먹는 것이 근데 저기요 여기 얘 밥 언제 주셨죠 다.


북극이라는 이름세 때문에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이 산타에게 쓴 편지들이 도착해서 자원봉사자들이 손편지 답장을 보내고 있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우리 왔을 때만 해도 들었는데, 몇 년 후 시 예산이 삭감되어서 여의치 않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지금 찾아보니 오호 여전히 답장을… 돈을 받고 팔고 있는 모양이다.

동심 파괴 잔혹사를 벌이지 않으려면 역시 돈이 드는 모양이다. (먼 산)


'크리스마스 마을'에서 그래도 순간 충동구매로 크리스마스 장신구라도 한 개 사들고 나면, 어쩐지 씁쓸한 입맛을 달래기 위해 North Pole과 Fairbanks페어뱅크스 동쪽으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치나 핫 스프링’이라는 노천 유황온천으로 가는 게 좋겠다.  

chena hot spring

노천이니까 뜨거운 온천에 몸을 담그고 겨울에 눈을 맞으며 운이 좋으면 오로라까지 볼 수 있는 환상적인 곳이다. 도착하면서 근방에서부터 풍기는 유황 냄새에 처음에는 어딘가에서 달걀을 잔뜩 삶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혼탕이라서 가지고 간 가벼운 옷을 입고 다 함께 들어가 어린아이들처럼 괜히 더 뜨거운 곳을 찾아 움직여보기도 하고, 유황온천이 피부에 좋다고 하니까 얼굴에도 끼얹어보기도 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한 번 들어가서 피부가 좋아질 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끼고 들어간 은반지가 하고 있던 금목걸이와 전혀 구별이 안 되는 누런 금‘색’으로 변해서 한 이틀은 갔던, 진짜배기 유황온천이다.

이 온천 리조트에서 묵으면서, 개썰매 관광이나, 오로라 관광 등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봄에 부모님을 놀러 오셨을 때 당일로 모시고 갔었는데, 우리가 간 날에는 사육일 리 없는 무스 몇 마리가 마치 주인과 미리 뒷거래라도 한 듯이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어서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도 했다.

 

문득, 지옥이 달걀 삶는 냄새가 나는 곳이라면 어쩐지 당황하지 않고 일단 감동란을 하나씩 먹으면서 생각해 볼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맥반석 달걀은커녕 미역국이나 식혜도 팔지 않으니, 그 대신 건물 내를 온통 얼음으로 만들어 놓은 다소 뻔한 이름의, '상설' ‘오로라 아이스 뮤지엄’에 들러 볼 수 있다.


오로라 아이스 뮤지엄

얼음 조각물들과 인증샷을 찍고, 얼음 의자에 앉아(왜) 얼음 잔에 담긴 칵테일(예스!)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눈 높은 글로벌 대한의 국민께서 디즈니의 얼음 궁전 같은 화려한 것을 기대하시면 실망하시겠지만 ‘살아있는 알래스카’(촌스럽다는 뜻이다)를 경험한다고 위안 삼으시면 그럭저럭 가볼 만한 곳이다.


혹시 산타 마을에 실망하셨다면 이 상설이라는 말이 조금 눈썹이 올라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페어뱅크스에 있는, 반대로 여름에도 영하 40도를 체험하게 해 준다는 상설 '북극 기후 체험관'은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파카를 빌려 입고 들어가는 냉동실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벌 기회가 오면 잡고 보는 게 좋다는 것을 깨달은 알래스카인들의 진취적인 기상을 존경하게 된다.


유황온천 가는 길

물론 서울 사람은 남산에 안 올라가듯이, 지역민보다는 관광객이 가는 곳이니까, 이 지역민의 시큰둥함을 감안해서 받아들이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아모르 타울즈의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모스크바는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가장 나기 좋은 곳'이라 했듯이, 사실 알래스카의 겨울은 그냥 산길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겨울이면 뒷마당에서 오로라를 심심하면 한 번씩 볼 수 있는 사람이라서.(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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