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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Oct 29. 2019

알래스카 겨울 이야기(4)

얼어붙은 호수

겨울이 깊어지면 나는,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얼어붙은 스미스 호수 (미국인들이 붙인 이름이 다소 재미없어서 웬만하면 본명을 불러주고 싶지만, 알래스카 원주민의 한 부족인 아타바스칸어 언어로 Tr'exwghodegi Troth Yeddha' Bena라고 하니까 웬만하지가 않다)에 꼭 한 번은 간다.

북단 배로우라면 모를까 페어뱅크스쯤만 되어도 흐르는 강물은 중앙까지 완전히 얼어붙는 일은 잘 없지만, 호수들은 중앙까지 잘하면 1미터까지 단단히 얼어붙기 때문에 일기예보와 함께 얼음의 두께도 통보가 된다.


흔히 회자하는, 에스키모에게는 눈에 해당하는 말이 수십 가지라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지 오래지만, 초기 골드러시로 알래스카 서부로부터 얼어붙은 강물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에게도 그랬듯이, 물은 겨울에는 얼어붙은 물은 ‘얼음길’이 되기 때문에 알래스카 인의 삶에 중요한 요소다.


*일단 하나의 '에스키모 언어'라는 것도 없거니와, 그저 누군가가 쓴 하나의 글로 비롯된 이 '소동'을 분석한 글.

(매거진 연재가 끝나고 나면 이 글을 번역해 올릴지 고려 중이다.)

https://www.buzzfeed.com/tomchivers/no-the-inuit-dont-have-100-words-for-snow


이 호수의 얼음은 봄이 오기 시작할 즈음에도 여전히 두껍기 때문에, 꼭 한 겨울에 갈 필요는 없기도 하지만, 영하 20도 정도라도 별 ‘장비’가 있어야 가는 곳은 아니다.

여느 추운 날씨처럼 그저 내복을 갖춰 입고, 패딩이나 기모 등의 ‘겨울 바지’에, 셔츠를 하나 더 받쳐 입고 일반 스웨터를 덧입고 파카를 입는 정도다.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몸보다 말단 부분을 보온하는 것이 중요해서, 체온이 많이 빠져나가는 머리, 얼굴을 모자와 목도리로 잘 덮고, 두꺼운 양말에, 미끄럼 방지가 되어있고 방수와 보온이 좋은 부츠를 신는다. 너무 시시해서 조금 송구스럽지만 그러하다. 나는 괜히 오들 거리는 게 싫어서 한국에서 살 때도 내복 잘 입고 다녔으니 말인데, 아무리 추워도 몇 달 되지도 않는 한국 겨울에 자꾸 춥다고 단군 할아버지 탓하지 말고 추우면 조금 더 입어주면 확실히 도움이 된다. 언제 봤다고 한 번 믿어보시라니까.


미시간도 그랬지만, 눈이 많은 주는 어쩌다 폭설이 오는 도시와 달리 눈 치우는 시스템도 좋아서 웬만큼 와서는 사람이나 차를 위한 도로 상태도 문제없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인도는 눈이나 얼음이 항상 남아 있기 때문에 넘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손을 주머니에 넣지 않고 걷도록 한다. 고관절이라도 부러지면 좀 아프기도 하겠지만 미국 의료보험시스템으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다가 패가망신하는 수가 있다.

그리고 장갑은, 멋진 가죽이나 플라스틱이 단단해져 버리는 어설픈 방수 장갑보다는 보온이 잘 되는 이중직 털장갑을 끼는 게 일상생활의 손의 체온을 보존하는데 더 좋다.

건조한 편인 알래스카는 함박눈도 잘 뭉쳐지지 않아서 눈놀이나 눈사람 만들기도 여의치 않지만, 초겨울이나 늦겨울 눈이 녹기 시작할 때면 잘 뭉쳐질 때가 있어서, 눈사람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물론 방수 장갑을 끼면 되고. 이 답답한 사람아. 


물론 동물이 특정 기온에 발열 기구 보조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절대 한계점이 있겠지만, 눈이 오면 문손잡이나 전깃줄 위에도 이십 센티는 고대로 쌓여 있을 정도로 바람이 안 부는 알래스카에서는, 잘 입기만 하면 영하 30도에서도 30분 거리는 문제없이 나가 다닐 수가 있어서, 길 건너도 차로 가는 미국인들의 습관을 생각하면 오히려 다른 주의 소도시들보다도 한겨울에도 길에 사람이 항상 걸어 다니고 있는 편이다.


한국도 평균기온이 안 나와서 서울과 부산을 따로 얘기해야 하는 마당에, 한국의 17배 크기인 알래스카는, 주 내에서도 북남의 기온 차이가 크게 나서 알래스카의 평균기온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알래스카 중부의 페어뱅크스는 겨울에는 한겨울에 영하 30-40으로 떨어지는 날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거지 대체로는 한창 추울 때도 최저 영하 20도 정도에 머무른다. 게다가 알래스카에도 분명 푸르른 봄 여름 가을이 있기 때문에 알래스카 하면 흔히‘잘못’ 상상하는, 아마도 북극의 이미지와 실제 알래스카와는 거리가 있다. ('일종의 프롤로그' 참조)

한국은 일기예보를 너무 국지적으로 해서, 무슨 기단이 나름의 개인 의지와 목적이라도 있는 듯이 '접근을 한다', '물러간다'는 식으로 분석하는데, 사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올 수 있기 때문에 북반구의 기후는 모두 뱀처럼 구불구불 연결된 jet stream제트기류를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삼한사온처럼 알래스카에도 한겨울에도 영상으로 올라가 숨통 트이는 날들도 있고, 한국이 강추위를 겪고 있으면 한국보다 알래스카가 더 따뜻할 수도 있고, 한국과 남쪽 국가들의 날씨가 풀리면 알래스카가 본의 아니게 희생을 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그런 것이다. 물론, 제주도가 서울보다 더 추운 날이 간혹  존재하듯이 알래스카 내에서도 북단이 더 따뜻하기도 하고 남단이 더 추운 날도 있을 수 있고, 같은 기온이라도 바람 따라 습도 따라 체감도 다르고 말이다.

게다가, 한국처럼 전반적으로 습도까지 높은 나라는 여름에는 습도가 높으면 불쾌지수와 함께 체감기온이 올라가고, 겨울에는 습도가 높고 바람이 많이 불면 체감이 반대로 10도는 더 떨어지는 수가 있지만,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 알래스카는 여름 겨울 체감기온이 실제 기온보다 5도가량 높을 수도 있다. 미네소타, 위스콘신 등 그 언저리 바람 많이 부는 미 중부 평지에 살아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미닫이문이 밀려 열릴 정도로 항상 풍속도 높고 돌풍도 많은 노스다코타는 실제 기온이 영상이라도 ‘이 추운’ 알래스카보다도 나다니기 힘들었다.


몇 년 전 안식년으로 한국에 10개월 머무를 때, 남들 멋진 트렌치코트 입고 다니는 봄가을로는 동 저고리 바람에 돌아다녀서 걱정을 많이 들었던 나도, 한겨울 한 달 정도는 부모님 집에서 칩거하면서 두문불출 고구마나 구워 먹고 있었다. 즉, 알래스카 인들은 추위에 적응이 되어 가죽이 두꺼워져서 ‘추위를 덜 타는’ 게 아니라, 정말이지 '살을 엔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겨울바람에 습도까지 높아서 웬만한 목도리로도 해결이 안 되는 한국의 겨울 날씨만 아는 사람들은 알래스카의 추위가 견딜만하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경험한 만큼만 이해하고, 그저 아는 만큼만 보이니까. 훗.

2019년 알래스카 앵커리지 기록: 그래프에서 보이는 화씨 90은 섭씨로 32도 정도 된다.

사실은 나도, 겨울이 좋다, 추위가 좋다, 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다 문명의 이기가 있어 가능한 사치스러운 말이라는 말에 나는 추운 게 더운 거보다 좋아 같은 소리를 하며 까불다 멈칫한 적이 있다.

실제로 코가 빨개지는 산책에서 기분 좋게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없다면 추위를 즐기기는 힘들 것이다. 잭 런던 소설 특유의 극한지방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는, 추운 곳에서 혼자 길을 잃고 장갑이나 신이 물에 젖거나 해서 얼어 죽는(!) 것이지만, 상식적으로, 더워도 추워도 에어컨이나 난방 등 편의 시설이 도와주는데 굳이 일부러 외지 살이를 찾는 건 캠핑보다 더 번거로울 정도다.

그리고 나는 캠핑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나이에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안 된 곳에서 지내는 것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아쉬운 데로 10년 개인 경험으로는, 겨우내 좀처럼 영하 10도 이하로도 떨어지지 않아서 어리둥절할 정도로 따뜻한 해도 있었지만, 우리 오기 수년 전에 영하 50도 넘는 날이 몇 주 지속해서 비행기도 못 뜨고 물자 수송이 며칠 끊어진 적이 있었다는 괴담을 들은 적은 있다.


그래서,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실 나도 얄팍하게도 슬그머니 깡통 야채, 스프라든가 국수 등 저장식품에 손이 가는데, 어떻든 10년 동안 아직은 비상식량이 필요한 적은 없었고 10년 동안 가장 추웠던 기억은 어느 겨울 한 삼일 영하 45도 정도였는데, 그것 때문에 별 다른 일이 일어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추운 곳일수록 실내 난방이 잘 되고 대비가 잘 되어있는 편이기 때문에, 조금만 기온이 떨어져도 동파가 속출하고 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일이 다반사인 여느 곳들과는 다르다. 알래스카는 대체적으로 추운 것 말고는 오히려 다른 지역에 비해 허리케인, 폭염, 폭설 등 ‘이상 기후’나 토네이도 등이 발생할 경우의 수도 낮고 말이다.


땅이 넓은 미주는 사실 완전히 '안전한 곳'이란 없다. 하기사 어디는 그렇겠냐마는.

허리케인이 잘 오는 동부는 전기 끊길 때를 대비해서 집마다 자가발전기를, 홍수가 잘 나는 곳은 전기 펌프를 구비하고 있고, 토네이도가 잘 오는 중부는 비상경보 시스템 구축에, 서부는 지진과 산불을 대비해 보험을 단단히 드는 등 전국이 지역마다 이상기후에 항상 대비를 하는 편이다. 여름에 폭염이 있을 수 있는 남부는 물을, 그리고 나머지 지역도 그러니 어느 정도 저장식품을 갖추게 되고, 내 친구 하나는 플로리다에서 위험이 지나고 나면 그렇게 쟁여둔 스팸(!!) 등을 거라지세일에  가지고 나와 파는 걸 본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가끔 집을 장기간 비우게 되어 냉동실이며 안 먹힌 깡통들 먹어 치우기를 해보면, 실제로 자연재해를 만나면 집에 축적한 ‘비상식량’은 얼마 가지 않아 동이 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제나 집 냉장고에 ‘뭐가 이렇게 많’ 게 들어 있다면, 나만 좋아하는 간식 넣을 곳 없다고 철딱서니 없이 투덜거릴 일이 아니라 뒤에 숨은 가사노동을 감사하도록 하자.

가을 스미스 호수의 bird's eye veiw

한겨울에는 얼음 두께가 무려 1m (40인치) 정도까지 얼어붙는 스미스 호수는 각 면이 300m인 삼각형의 아담한 호수로, 봄 여름 가을에는 잔잔한 호수를 둘러싼 나무들이 거울처럼 비치고, 주변의 작은 물줄기들이 졸졸졸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내고 있는 각종 새와 물고기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주립대 내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여름에는 산악자전거, 겨울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스노 슈즈를 즐기도록 잘 만들어 놓은 숲길이나, 잘 닦아 놓은 널찍한 산책로를 따라 십오 분 정도 가볍게 걸어 들어가면 된다.


얼음 두께별 들어갈 수 있는 무게 차트(‘’는 인치로 1인치는 2.5cm 정도다) 스미스 호수는 40인치 이상도 얼 수 있다..

호수가 얼었다고 하면 매끈한 야외 스케이트장 위를 지치는 여느님 같은 장면을 상상할지 모르지만, 스노모빌이나 스키를 즐길 수 있도록 눈이 쌓이게 둔 곳이다.

얼음낚시 역시 사냥처럼 허가증도 사야 하고 (나중에 '사냥'에 대해 얘기할 때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그냥 뚜벅뚜벅 들어와 대충 구멍을 뚫고 간이 낚싯대를 드리우는 게 아니라, 얼음의 두께를 고려해서 작은 이동식 오두막이나 천막 같은 것을 쳐 놓고 정해진 곳에서 안전하고 안락하게 하는 게 일반적이라서 (아무튼 미국인들은 사서 고생은 거의 안 한다고 보면 맞다. 가끔 어떤 ‘기계’들은 몸 쓰고 말지 싶은 것들이 많지만, 노동자들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한다는 차원에서는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 얼음낚시를 체험해보고 싶으면 몇백 불 정도에 관광코스도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지만, 스미스 호수는 그냥 겨울 호수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곳이라서 나는 더 좋다.


호수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팔을 벌리고 한 바퀴 돌면 다른 계절에 본 그 푸른 물 위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 번번이 신기해서 절로 와하하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베드로야 내가 스미스 호수 위를 걸어야




얼어붙은 호수의 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눈을 헤쳐 얼음을 가까이 들여다본 적이 있다.

호수 전체가 거대한 흑요석처럼 말간 검은 돌이 되어 잠잠히 잠들어 있었고, 그 안에 걱정과 비밀을 내려놓고 가면, 겨우내 가만히 품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 괜찮아질 즈음에 봄 시냇물로 졸졸졸 녹아 흘러가 줄 것 같았다.


뒤에 나올 오로라 이야기를 위한 미끼상품 : 스미스 호수에 비친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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