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ic Oct 31. 2019

알래스카 겨울 이야기(9)

눈내리는 페앵선 완행열차에

알래스카에는 페어뱅크스에서 앵커리지를 거쳐 발디즈, 스워드, 호머 등 남쪽 주요 항구 도시들까지 연결되는 철도가 있어서, 석유나 석탄 등 물자 수송도 하지만 관광열차도 따로 운영된다.

진청색의 몸체에 노란 글씨로, ‘알래스카’(뜻밖이지?)라고 쓰여있는 멋진 열차의 관망석을 사면, 유리 돔이 있어서 아름다운 알래스카를 구경하기 좋게 되어있다.


직선거리 578km 거리의 앵커리지까지 차로는 6~7시간, 비행기로는 1시간인데, 코스가 주요 아름다운 포인트를 놀민놀민 천천히 돌아 돌아가는 관광열차라서 12시간 걸린다. 디날리 산의 만년설과, 수많은 높은 산맥들을 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해외로 나가기를 좋아하듯 나는 주민이라서 이적지 한번도 타보지 못했지만 다녀온 사람들 말에 의하면 정말 좋다고 한다.


한국의 산도 아담하니 정겹고 좋지만 거대한 알래스카의 산맥과 숲을 만나면, 오로라와 비슷하게 '경이'라는 감정이 둥실 떠오른다.

인간이 참 작다는 생각.

사람이 작아진다는 것은 애먼 겸손이 아니라, 그래서 시시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알래스카를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이제 곧 돌아갈, '일상'을 열심히 산다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위대한 가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수억 년에 걸쳐 흐르는 대자연의 시간과 상관없이 그 틈에서 우리는 각자 내 자리를 찾아 살고 있다는 것.

이 거대하고 위대함 틈바구니에 내 설 자리가 있다는 것!

여름에도 운행하지만, 이 관광열차는 겨울 눈꽃열차가 별미다.

현재,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 간 일주일에 하루, 한 번 운행하는데, 앵커리지에서 올라온 차가 다음 날 다시 내려가는 스케줄이라, 호텔을 저렴하게 묶어 패키지도 판매하고 있다. 너무 지루해서 밀린 고전을 읽어치우다 돌아버린다운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보다는 200불에 12시간이라면 거뜬하지 않은가.

물론 실내는 따뜻하고, 사려 깊게 내려서 껴입을 옷을 위해 비행기처럼 큰 가방도 두 개 무료로 실어준다. 앞으로 12년은 여름마다 꺼내 볼 12시간의 설경을 즐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차 삯이나 비행기 삯이 거의 같으니, 이왕 올라온 김에 유황온천 하며 오로라도 노려보고, 겨울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World Ice Art Championships 세계의 장인들이 펼치는 세계 얼음조각전도 보고, 알래스카 답게 인구 십만 도시 페어뱅크스에만도 두 개나 되는 아이스하키장에서 하키 경기도 보면서 하루 이틀 쉬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도 좋을 것 같다.

전시를 가지 않아도 워낙 얼음 조각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서 무료 '서비스'로 크고 작은 얼음 조각들을 곧잘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오세요 알래스카 돌잔치나 약혼식에 가지 않아도 금세 녹아서 얼굴이 없어질 염려가 없는 얼음 백조를 볼 수 있는 곳.


물론 여름에는 더 자주 운행되기도 하고, 이 기차를 타고 앵커리지로부터 남단의 아름다운 항구도시들로 가는 길도 무척 아름답다. 놀라는 순간에 숨을 흑 들이마시게 된다고 해서 아주 놀라운 것을 breath-taking이라고 하는데, 산모퉁이를 돌아 차창밖으로 파아란 바다가 펼쳐지면 절로 숨은 흡 들이마시게 될지 모르지만,

절대 환상적이지는 않다.

지극히 명료하게, 철저하게, 아름다운 풍경이 창 밖에, 바로 거기에, 척 놓여있으니까.  


환상이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 오세요 알래스카 환상이 현실이 되는 


이전 09화 알래스카 겨울 이야기(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