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ic Nov 01. 2019

알래스카 봄 이야기(1)

춘풍 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4월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하며, 새소리에 잠이 깨는 아침이 생기기 시작하면, 믿기지 않겠지만 알래스카에도 봄이 온다.


나무들이 버들강아지같이 보송보송한 새 눈들을 내고, 곧이어 눈 녹는 물을 마시며 하루가 달리 서둘러 연두색 싹을 내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벌컥벌컥 들이켜는지 자작나무는 새잎 끝마다 마시고 남은 물방울이 맺혀있을 정도라, 마치 배고팠던 아기 우유 먹는 것 보는 것처럼 귀엽고 기특하다. 5월에 접어들면 본격적인 봄이고 하루가 다르게 잎이 자라 멀리서 보면 나무들에 초록 안개가 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해가 짧아지고 길어지는 게 여름 겨울 비슷한 속도로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지지지만, 위도가 높은 알래스카에서는, 하지가 지나면 처음에는 낮의 길이가 조금씩 줄다가 나중에는 최대 7분씩으로 성큼성큼 줄어가다가 멈추고, 동지를 기해 다시 필름을 돌리는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바뀌어, 다시 조금씩 낮이 늘어가다가 성큼성큼 늘어 하지까지 가는 식이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겨울 시작으로 치는 동지 12월 20일부터는 겨울이 깊어지면서, 이미 외려 반대로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곧 달력이 넘어가며 해가 바뀌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3/21일 춘분부터 해가 밤보다 더 길어지기 시작하며 봄이 오는 것이다.


실제 느껴지는 온도보다 ‘계절의 이름에 걸맞은’ 옷차림 생각을 생각하며 사는 곳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해 길이가 계절 따라 다른 알래스카에서는 계절 바뀜이 글자 그래도 피부로 느껴진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춘분 추분은 전 세계가 모두 낮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지구 어디에 있아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의 시간과 일치하는 날. 아무리 한국과 낯 길이가 같아도 짜장면은 먹을 수 없지요마는.


알래스카의 가을은,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에 계절이 바뀌며 내리는 비에 젖었던 잔디나 낙엽에 아직 긴 햇살이 닿아 훈훈한 김이 올라와 어딘가 촉촉한 봄 냄새가 나곤 하는데, 봄은 반대로 눈이 녹으면서 드러난 지난가을의 마른 잔디와 낙엽이 건조한 공기로 마르기 시작하고 그래서 바삭한 가을 냄새가 난다. 문득 아침에 창을 열거나 종일 틀어박혀 있다가 밖을 나서면 나는 냄새에 지금 겨울로 가는 중이던가 봄으로 가는 중이었는지 혼동이 될 정도다.

오래전 미국의 어느 거리를 지나다가, 누군가의 실크 드레스 태양에 그슬러 나는 냄새와 인근의 수제품 상점에서 풍기는 향냄새가 어우러져 희한하게 추석이 떠 올라 코끝이 찡하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 알래스카의 봄에서 추석 냄새가 난다는 것은 번번이 혼란스러운 일이다.

그전에 살던 노스다코타에서는 인종차별로 불이익도 있었고 늘, 언제든지 기회만 닿으면 뜬다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정이 붙지 않았고, 그래서  더 그 몰아치는 바람이 싫었고, 지금도 나는 바람소리가 싫기도 하니, 몸에 새겨진 기억들은 내 마음대로가 아닌 모양이다.


뭐는 내 마음대로냐마는.

이전 10화 알래스카 겨울 이야기(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