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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Nov 01. 2019

알래스카 봄 이야기(2)

알래스카 효도 관광 -알래스카 크루즈

벌써 7년 전, 엄마 아빠가 알래스카에 놀러와 40일정도 머무르셨을 때, 나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부엌을 두 개로 만들고 나서 고부간의 갈등이 현저히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듯이, 부엌은 원래 나눠 쓰면 안되는 것이라서 한국에 가면 엄마 부엌에서 뭘 해드리려고 해도 뭐가 어디 들었는지 몰라 서로 불편해서 주로 사 먹게 되고, 연로하신 엄마가 해 주시는 건 먹어도 마음이 불편하고 그랬었는데, 당시 13년 전에 나와서 해 드릴 수 없었던 밥을 내 집에서 한달 반 동안 실컷 해드릴 수 있다니 꿈 같아서 몸은 좀 힘들어도 매일매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본래는 (지금 이 순간도, 아우 저녁엔 뭐 먹어 또) 밥 시간이 가까와 오면 밥하기 싫어서 입이 나오기 마련는데 그 때는 정말이지, 매일의 식단을 가득 짜 놓고, 그래도 레스토랑에서 파는 고급진 것도 맛보게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사이사이 외식을 끼워넣는게 아까울 정도였다. 끼니 때마다 밥을 차려놓고 종을 땡 치면 놀이방 착한 아기들처럼 즐겁게 아장아장 방에서 나오시던 모습이 요즘도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페어뱅크스 다운타운

그렇게 그저, 지지 않는 해의 백야도, 맑은 하늘의 구름도, 사시나무 자작나무 푸르른 숲도, 매일매일 신기하고 재미있어 하시고, 뭘 해드려도, 뭘 사드려도 잘 드시고, 잠도 잘 주무시고, 동네 어디를 모시고 가도 그저 편하게 잘 계시긴 했지만 그래도 멀리 오셨는데 뭔가 확실하게 좋은 곳도 보여드려야겠다 싶어서 알래스카 남단에 있는 스워드라는 항구도시에 고래나 해달 등의 야생의 해양동물들과 피요르드 빙하, 그리고 산양이나 곰 등 육지의 동물들을 볼 수 있는 7시간의 크루즈를 타러 함께 며칠의 여행을 떠났다. 이제 대학에 가고나면 방학 때나 올 아이와도 마지막 앵커리지 행이 될 것 같아서 아주 특별한 여행으로 만들고 싶었다.


페어뱅크스에서 앵커리지까지는 남북으로 알래스카의 반 절 정도 밖에 안되지만, 한반도 크기의 17배인 알래스카에서는 이 정도도 쉬엄 쉬엄 가면 7시간은 달려야 해서 첫날은 앵커리지에서 쉬고 다음날 아침 다시 한 두시간 거리의 스워드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서 보이는 알래스카 산맥이며, 특히 앵커리지에서 스워드로 가는 1시간 반 정도의 정말 꿈같이 아름다운 바닷길에 엄마 아빠가 감탄에 감탄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미국에 온 이후로, 자주 가지 못하는 엄마와 아빠와의 여행길에는 언제나,간 곳은 막상 거의 생각이 안 나고 내내 살피던 두 분 얼굴만 생각이 난다. 이때도 선상에서도, 길에서도 엄마 아빠 얼굴만 기억에 가득해서 그 몇 년 후 일부러 따로 다시 휴가를 스워드로 갔었는데, 모든 길이 처음 본 것처럼 새로웠고, 함께 갔던 식당이며 사진 찍은 곳마다 두 분 모습이 떠올라서 먹먹했었다.


스워드는 여름이면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휘티어, 호머, 발디즈, 싯카를 포함한 알래스카 남단 바닷가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 중 하나이다.

스워드와 휘티어로는 시애틀발의 거대한 대양 크루즈선이 들어오고, 나머지는 키나이 피요르드를 돌아 보여주는 관광 페리 (이름은 ‘크루즈’인데 가까운 빙하와 해양동물들을 안내해주는 중형 페리선이다)가 뜬다. 이 피요르드 크루즈는 5월 말부터 8월 말 정도까지 운행하는데, 3~4시간짜리부터 7~8시간짜리 옵션이 있고, 가격은 2019년 현재 일 인당 130불 정도다. 우리는 7시간짜리 피요르드 빙하관광에 음료수 하나와 프라임 립과 연어에 몇 가지 샐러드를 주는 선상 뷔페를 추가 선택했다.


피요르드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항해는 잔잔하지만, 볼만한 것이 많은 먼바다까지 내달리는 30분 정도 과정에서 나와 정또는 조금 멀미를 했고, 엄마와 아이는 그저 그랬지만 방년 팔순이셨던 우리 아버지는 “배는 원래 조금 더 요동을 쳐 줘야 제맛인데 말이야!” 하며 내 옆에서 기염을 토하시기도 했으니 역시 멀미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귀찮은승객 참여 행사도 준비되어 있고, 식사하는 동안 공연도 준비되어 있어 일단 도착해서는 모두 문제없이 선상 뷔페를 즐기긴 했다. (이미 뷔페에 돈을 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멀미 치료제)


가끔 파란 빙하가 털썩! 하고 바다로 무너져내리는 모양을 지구 기후 변화의 상징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온난화라서 그런 게 아니라 빙하는 본래 그렇게 서서히 흘러내려 와 자연적으로 한 번씩 바다로 깎여 떨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예전에는 관광객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를 내서 떨구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안 하는 추세다. 모든 빙하는 소중하니까요.

그렇게 빙하가 깨져 떨어지면 배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페리를 빙하에서 너무 가까이 세워주지는 않아서 사실 조금 시무룩해진다. 멀리서 보면 푸릇푸릇하고 허연 빙벽이 피요르드 사이에 ‘낑가’있는 정도로밖에 안 보이니까. 하지만 5월에 봄 잠바를 입고 보는 얼음벽이라고 생각하면 역시 재미나긴 하다. 그리고, 빙하에 올라가 가까이 보거나 위를 걸어 볼 수 있는 곳도 스워드 가는 길과 호머 등에 따로 있으니 크게 낙심하지 않아도 된다. 스워드 근처의 Exit Glacier 빙하공원에는 (오바마 옹이 왔던 곳), 빙하가 지구 기후 변화로 얼마나 줄어들었는가를 연도별로 표시를 해 놓아 지구 기후 변화가 실감 난다.


우리야 알래스카라도 5월이면 봄인 걸 알고 있었지만, 노인네들이라서 혹시 모른다고 나름대로 두터운 옷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이날 엄마 아버지 두 분 모두 가벼운 봄 잠바를 입고 씩씩하게 즐기시는 바람에 옷을 한 보따리를 들고 쫓아다니느라 나만 고생이었다. 역시 효도는 쉽지않아.


그래도 빙하 근처는 찬 바다라 작은 빙산과 얼음 조각들이 떠다녀서 선원들이 이걸 하나 찍어다 선상에서 사람들 사진도 찍고, 정으로 쪼아 만든 칵테일을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모든 것이 포함된 가격인데 따로 부가수입을 올리는 게 속이 좀 보이지만 그래도 기분이니까 예쁜 보드카 선라이즈 칵테일을 한 잔 마시기도 했다. 아직 SNS를 전혀 하지 않을 때라서 아무에게도 자랑하지 못했지만.


페리에서 볼 수 있는 야생동물들은, 각종 고래나 해달, 수달, 그리고, 비둘기보다 좀 작은 정도의 크기에 평소에는 우중충한 갈색이다가 겨울이 되면 보호색으로 하얀색을 띠고, 새로서는 특이하게 수북하게 털이 나 있는 발이 귀여운 알래스카 주 새 타미간 (ptarmigan, p는 묵음으로, 그냥 타미간이라고 읽으니까 긴장 푸시고)와, 알록달록 부리가 우스꽝스럽게 생긴 퍼핀 ( puffin. 타미간과 퍼핀 두 새 모두 식용은 딱히?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원주민들이 배가 너무 고프면 뭐는 못먹겠느냐마는먹을 수도 있지만, 일반인 상대로 요리를 만들어 팔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바다표범 등 다양하다. 돌고래는 몰라도 범고래 등은 고래와 그대의 건강을 위해서 멀리서 보게 해주기 때문에 역시 조금 아쉽지만, 고래의 첨벙이나 빙하의 첨벙으로 배가 전복되고 나면 아쉬움 따위는 느낄 새가 없을 것이다.


그밖에 안내에 따라 멀리 육지의 독수리나 산양과 곰 등도 볼 수 있도록 배에 성능 좋은 망원경들도 무료로 넉넉히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일부러 좋은 망원경을 장만해서 싸가지고 갔는데 아무튼 효도관광이니까요 네.


그보다, 해달이 비디오에 본 것 처럼 귀엽다고 생각하면 절대,

맞습니다! 아악 너무너무 귀여워!

이 귀여운 것들을 무식한 유럽인들이 가죽을 쓰기 위해 잡았다고 생각하면 주먹도 울고 나도 울고


혹시 바다에서 연어 볼 생각을 하시는 분은 설마 없겠지만, 참고로 말하자면, 연어는 7월 1일부터 시작되는 연어 시즌에 낚싯배를 타고 찾아보셔야 하고, 혹시 살아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물고기 이름을 검색하면 물고기 정보가 아니라 횟집 정보가 나오는 나라답게 회를 생각하시는 거라면, 그냥 숙소 주변의 슈퍼마켓이나 주로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일식점에 들러보도록 하자.

노르웨이산 연어를 팔고 있을 수도 있지만, 훗.

알래스카가 삼면이 바다라서 어떻든 수자원이 있는 주긴 하지만, 너비가 193km밖에 안 되는 한국과 달리, 주 내라고 해도 바다까지 580km인 페어뱅크스에서 (상기하라 알래스카의 크기를!) 거리상 만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가져오는 거나 다름이 없다. 앵커리지라고 해도 뻘바다라 바로 앞바다에서 잡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따라서, 페어뱅크스에서‘도’ 싱싱한 알래스칸 킹크랩과 연어나 새우들을 즐기는 건 사실인데, 이런 먹거리들은 어차피 냉동 공수되는 것이 바람직해서 -얼핏 살려서 데려오면 더 싱싱할 것 같지만 오는 사이에 먹이를 제대로 주지 않으면 이 아이들이 살이 빠져서(!) 오히려 더 손해라고 한다- 냉동 공수되는 것은 매한가지인 노르웨이산 연어 따위보다 품질 좋은 천연 알래스카 연어가 더 비싸기도 한 형편이라서 그렇다.

황석영님의 '밥도둑'을 보면 참게장을 만들때 전날 미리 게에게 쇠고기를 먹여서(?!) 담그는 얘기가 나오는데, 안타깝게도 킹크랩은 이미 냉동공수된 것으로 다리만 판매하기 때문에 실험해 볼 방법은 없다.


그래도 명색이 알래스카라서, 종종 직접 잡은 킹크랩을 페어뱅크스 시내 길거리 트럭에서 옥수수빵처럼 팔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차를 세우고,  얼마요? 하고 창밖으로 넌지시 물으면 낚시꾼 아저씨가 굵기가 사람 팔뚝만 한 colossal king crab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암시장 소총이라도 되는 듯 슥 열어 보여주기도 한다.

오세요 알래스카 차가 막히면 뻥튀기가 아니라 킹크랩을 사 먹을 수 있는 곳.


그밖에, 주로 카누 타기나 낚시를 하러 많이들 가는 Homer호머라는 곳에는, 일정액을 내면 굵직한 조개를 마음껏 잡아 나올 수가 있다고 한다. 막상 한국 사람들은 경복궁도 안 가듯 나도 호머는 아직은 가보지 못했는데 기필코 다음 휴가에는,하고, 십년 째 별러만 본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호머가 있다.

사실 하느냐 안 하느냐는 순전히 나에게 달린 걸 알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는 것들. 역시 알래스카로 초대했지만 미적미적 미루시던 시어머니는 몇 년 후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때까지는 10년이 넘도록 한국에 겨우 두 번 들어갔을 뿐일 때라서 더 안타까웠다.

물론 사람은 각자 우선순위라는 게 있지만, 살다 보면 우선순위는 바뀌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종종 뒤늦게 깨닫는다.


호머에, 올해는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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