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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Sep 22. 2023

거짓말을 싫어하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

언제쯤이면 이혼에 당당할 수 있을까




3월 2일,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의 입학식에 남편 없이 혼자 아이의 손을 잡고 입학식에 갔다. 결혼생활을 유지할 때도 남편은 일이 먼저였기 때문에, 설령 이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남편은 일이 있으면 아이의 입학식에 참석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 혼자 아이 입학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수많은 학부모들 틈에 끼여 내 아이를 잘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드는 나의 키도 마음도 작아지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강당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아이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건, 그저 기분 탓이겠지?


아이의 입학식날이 이혼하고 가장 크게 남편의 빈자리를 느낀 날 같다. 이사를 하고 등기 서류 작업을 하며 처음 혼자 처리하는 일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가며 그럭저럭 혼자 잘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입학식에 남편 없이 혼자 가는 건, 내 상상보다 조금 더 슬펐다.


하지만 내가  선택이기에 아이 앞에서는  밝고 신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나처럼 쓸쓸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그날, 아이는 내게 표현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나는 그날 아이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의 존재는, 존재할 때보다 존재하지 않을   크게  존재의 부피를 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


3월 초, 같은 아파트에 사는 1학년 엄마들 모임이 있었다. 원래도 낯가림이 심한 편인 나는, 몇 번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고 단톡방에서는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늘 눈팅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친구들을 사귀는 게 나 때문에 어려워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고개를 들었고 다음 모임엔 참석하기로 용기를 내보았다.


친구네 집에 초대받아 가는 건데, 빈 손으로 갈 수 없어 디저트를 사고 단정히 포장을 해서 갔다. 역시나 이런 모임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초인종을 누르는 그 순간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나는 엄마니까 잘할 수 있어! 아자아자!" 이미 여러 차례 만나 친분이 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음료를 마시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OO네는 놀이터에서도 거의 못 본 거 같아요. 놀이터 자주 안 나와요?"

"아 네. 아직 날이 추워서 자주 안 나갔어요."

"맞아. 다른 집은 아빠랑 나오기도 하는데, OO네는 본 적이 없네."

" 아 네. 저희는 주말부부라 평일에 아이랑 저만 있어요."


나도 모르게 불쑥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모르게 자기 방어처럼 불쑥 거짓말을 뱉어버렸다. 순간 두려웠다. 아직 잘 모르는 엄마들이 우리가 이혼 가정인 걸 알게 되면 어쩌나, 색안경을 끼고 아이를 바라보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들이 순간 나를 사로잡고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거짓말로 상황을 무마하도록 나를 몰고 갔다.


'내가 거짓말을 했구나'

'앞으로 늘 거짓말을 하고 나를 포장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한숨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때 내 가슴에 박혀 상담을 받을 때까지 빠져나가지 않았던 가시는, 아이에 대한 염려였다. 나는 거짓말하는 것을 다른 어떤 것보다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앞으로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를 거짓말의 굴레에 갇히게 되었다. 동네 엄마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 한, 나는 몇 년이고 주말부부 행세를 해야 할 테고, 그런 상황이 얼마나 괴로울까.


그런데 이런 거짓말의 굴레에 나만 갇히는 게 아니라, 아이도 같이 갇히게 된다는 게 끔찍했다. 아이도 나처럼 곤란한 마음에, 불쑥 거짓말을 하고 자신이 양치기 소년이 된듯한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면 어쩌나. 아이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그 부분이 가장 염려가 되었다.


언제쯤이면 이혼에 당당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이혼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익숙해지긴 하는 걸까.


아직 이혼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서 이렇게 모든 것이 어렵고 서툰 걸까. 아이에 대한 걱정과 미안한 감정들이 내 마음과 머릿속을 온통 헤집고 다닌 날이었다. 재결합을 하는 게 나은 걸까, 처음으로 재결합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그린 날이었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구나 느낀 날이었다.


부족한 엄마여서 늘 아이에게 미안한 엄마지만,

아이가 나와 같은 감정을 부디 몰랐으면 하는 게 엄마의 마음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한 빨리, 이혼에 익숙해지기를.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 내 아이를 지켜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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