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만큼, 상대방과의 간극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혼 후 남편은 주말에 1번 아이를 만나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같이 하거나 아이와 영화를 보거나 대략 5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남편은 아이를 다시 집에 데려다준다.
"찾아보니까 부부상담 많이들 받더라. 우리.. 부부상담 받아볼래?"
"이미 끝났는데.. 의미가 있을까?"
"끝낼 때 전문가의 도움이나 노력 없이 끝낸 거 같아서. 마지막까지 노력해 봐도 아닌 거면 미련이 없지 않을까?"
"그렇긴 하지. 오빠가 찾아본 데 있으면 그렇게 하자."
6월이 시작될 무렵, 남편은 내게 마지막으로 부부상담을 받아보자고 제안을 했다. 나도 재결합에 대한 미련이 완전 0프로는 아니었고, 여전히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으니까, 부부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부부상담을 시작하기 전날, 막상 부부상담을 시작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고 두려웠다. 과거의 상처를 다시 수면 위로 들추는 게 겁이 났고, 그 과정에서 남편도 나도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걱정과 우려와는 달리, 남편과 부부상담은 불편함 없이 진행되었다. 첫날 상담은 부부상담으로 진행되었고, 그 뒤 각자 2번씩 개인 상담이 이루어졌다. 개인 상담 때는 TCI검사도 받았고, 각자의 유년시절에 대한 상담이 진행되었다. 그 뒤 다시 부부상담으로 이어졌다.
TCI검사를 통해 남편과 내가 맞지 않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남편은 감수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하고 자율성은 거의 100프로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관계지향적이고 감수성이 많이 발달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 둘이 만나 결혼했으니, 서로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남편에게 정서적 공감을 받지 못해 힘들었던 나는, 왜 남편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고부갈등 상황에서 어떤 정서적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지 못했던 남편을 원망했던 지난날,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혹은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내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분이 났던 날, 그 모든 나날 위에 이해가 내려앉았고 그 시간들을 품어주었다.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배려하지 않아서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 아님을 이제야 알았다. 그는 나와 다르게 정서적으로 느끼고 공감할 수 없었던 것. 그저 그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몰랐고, 나에 대한 그의 마음으로 돌려 답을 찾으려 애를 썼다. 나를 가족으로 조금 더 받아주고 인정한다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깊은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는 기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남편은 개인의 성취 위주로 과거를 떠올렸고, 나는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와 추억으로 내 과거를 불러왔다. 이런 방식이 단편적으로 우리의 성격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남편은 늘 일이 먼저였고, 아이의 육아나 가정의 일은 그다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혼 생활동안 남편이 육아와 집안일에 더 많은 도움을 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가정주부로서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견딜 수 없는 일들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내 생일날에도 회식을 하러 가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나는 생일날 남편과 단 둘이 데이트를 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다. 내 생일날은 명절에 끼어있어 시댁에 함께 있으며 지나가거나, 회식날과 겹쳐 주말에 생일축하를 해야 했다. 물론 생일 선물은 그 뒤에라도 꼭 챙겨줬다. 하지만 생일 당일, 회식에 밀리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서운한 마음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서, 정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원했다. 그건 부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사랑은 서로가 관심을 주고 아껴줄 때 텃밭의 꽃처럼 아름답게 커나갈 수 있는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남편은 이런 사랑 타령을 그저 타령, 노래쯤으로 들었다. 그때는 왜 저렇게 반응할까, 싶었지만 지금은 나랑 많이 달라서 그랬구나, 싶다.
물론 그때는 남편도 본인과 다른 나의 모습을, 그저 기질적으로 다르기에 당연한 것임을 알지 못했다. 그때의 남편은, 나는 사소한 거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는 조금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자주 '너는 너무 예민해'라는 얘기를 했고, 그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정말 예민해서 모든 것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상담을 하며, 나의 예민함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과 내가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 남편의 행동에 자꾸만 내가 불편감을 느꼈던 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예민해서 문제가 아니라, 그저 우리 둘의 타고난 기질이 달라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 스스로를 미워했던 미움이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이혼을 하고도, '내가 덜 예민했더라면 이혼하지 않고 무난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아갔을 텐데..' 혹은 '내가 예민해서 결국 이렇게 끝이 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후회로 싹트고 나에 대한 원망으로 자라나, 나의 마음 한켠 어두운 그림자로 자리 잡았다.
사실 상담은 남편을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상담을 받으며 느낀 것은 '상대방을 제대로 몰랐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잘 몰랐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없었고, 나를 모르는 만큼 상대방과의 간극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상담의 시간을 통해 나는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뿐 아니라, 더 깊게는 나를 이해하고 내게 따뜻하게 손 내밀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비난하고 질책하며 내가 나를 아프게 했던 지난날에서, 이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더는 나를 아프게 하지 않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방을 이해하는 만큼, 나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랐다.
단순히 우리가 재결합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부부상담을 시작했지만, 상담은 오히려 나를 온전하게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나를 온전하게 바라보는 시작은, 순수하게 상대방과 나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는 시작이기도 하다.
서로를 비난하거나 탓할 의도 없이, 순수하게 남편과 나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우리가 정말 간극을 좁히며 살아갈 수 있을지 알아가 보자고. 서로의 가치관의 차이가 과연 좁혀지는 범위에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상담을 받는 기간에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자고, 다짐했다.
상담의 결과가 과연 재결합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재결합은 역시나 아니었다로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부부상담을 통해 더 객관적으로 우리 사이를 바라보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미련 없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 거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