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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Sep 21. 2023

과연 진실이 중요할까

진실이 다르다 한들 상처로 얼룩진 내 마음이 깨끗이 닦일까, 하고




'정말 바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설령 바람이 아니라 해도, 그 일로 내 신뢰는 깨져버렸고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지.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는데, 어떻게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내내 두려웠어. 다시 상처받으면 어쩌지, 그때는 더 담담할 수 있을까, 하고. '


남편은 늘 이야기했다. 내가 상처받은 일은 그저 오해에서 시작된 거라고. 육체적 관계를 갖거나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그때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냐며. 상처받고 아파하는 나를 답답해했다. 하지만 상처받기 두려워 마음의 벽이 두텁게 자라난 나에겐, 그때의 일이 정말 불륜이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을 예전처럼 신뢰할 수 없어서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그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남녀 간의 설레는 사랑은 지속되는 기간이 참 짧다. 그럼에도 서로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 때, 두 사람을 단단히 묶어줄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때, 두 사람의 사랑은 빛바래지 않고 사랑으로 남을 수 있다. 신뢰가 사라진다면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할 수 없게 되니까. 우리의 마음은 상처받을까 두려워 본능적으로 방어기제가 발동하게 되니까.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자라나면 순식간에, 상대방과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거리감이 생겨나게 된다. 이 거리감을 상대방이 느꼈을 땐, '사랑이 식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서운한 감정을 싹트게 한다.


나는 남편을 사랑했고, 남편이 언제나 나의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 이후로 남편에 대한 나의 신뢰는 무너졌고, 겉으로 보이는 관계에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때로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 경우가 있어서, 나 또한 예전처럼 일정 부분은 다시 회복이 되고 괜찮아진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과의 정서적 거리가 많이 멀어졌고, 그만큼 육체적 거리도 멀어져 좁힐 수 없었다.


남편은 육체적 거리가 멀어진 것에 늘 불만이었고, 내게 사랑이 식었다며 자신은 그저 돈 벌어오는 가장이냐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남편도 오죽 답답하면 저렇게 얘기할까 싶어 안타까웠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남편의 질책에 나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만큼 남편에게 미안함이 쌓여갔다. 그리고 밤만 되면 마음이 불안했다. 남편의 부부관계 요구에 나는 거절을 할 테고, 남편은 또 불같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테지. 부디 오늘 밤은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두려움에 떠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지켜주고 싶었다. 그럴 때면 더 깊숙이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남편은 직업 특성상 술자리가 많았다. 술을 마시며 새벽 귀가를 할 때도 많았고, 아주 가끔 외박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밤새 연락되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다.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새벽시간은 유난히도 시간이 천천히 흘러 마치 며칠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의심의 싹을 틔운 내 마음은 망상들이 자꾸만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독이려 노력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일은 결국 나를 괴롭히고 좀먹는 일이다. 밤새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나는 처절하게 바닥을 치며 고통에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 상대가 아닌 나에 대한 미움이 자꾸만 자라나는 그런 .


그럴 때면 '과연 진실이 중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심이 나를 휘몰아치며 고통 속에 밤을 지새우고 난 뒤, 진실이 다르다 한들 상처로 얼룩진 내 마음이 깨끗이 닦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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