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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Sep 20. 2023

그날 이후로, 나는 무성욕자가 되었다

우리의 사실상 이혼사유




 글은 썼다가 지웠다가, 유독 많은 고민이 뒤따라와 용기가 필요했던 글이다. 나의 부끄러운 치부를 세상 밖에 내놓는 것은 먼저 두려움이 앞서, 솔직해지려는 나의 발목을 붙잡는다. 하지만 용기를 내보고 싶다. 4  일이지만, 여전히  발목을 붙잡고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그림자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이제는 정말이지, 앞으로 나아가고 으니까.  이상은 과거에 머물러 자책도, 원망도 하고 싶지 않다.


4년 전, 설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남편과 아이는 잠들어 있었고, 잠귀가 밝은 나는 새벽에 여러 차례 울리는 남편의 휴대폰 진동소리에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쯤이었고, 대체 이 시간에 계속 연락을 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나도 모르게 남편의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풀고 휴대폰을 보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남편의 휴대폰을 몰래 본 것은 잘못된 행동이고, 그 행동으로 결국 상처를 입게 되었으니 내가 가장 후회하는 행동 중에 하나다.


남편의 카톡을 본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어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눈 내리는 창 밖에 서있는 것처럼, 뼛속까지 스미는 차디찬 추위를 느꼈다. 떨리는 몸에 힘을 주고, 애써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잠든 남편의 얼굴과 남편의 휴대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 남편을 깨워서 물어야 할까, 모르는 척 넘어가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그 여자의 휴대폰 번호를 내 휴대폰에 저장했다.


그리고 좁은 집 안을 서성이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남편에게 묻는다면, 휴대폰을 봤다는 이유로 내게 불같이 화를 낼 것이 뻔하고, 그 여자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할 것이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렇게 두세 시간을 고민하다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남편에게 물었다.

"누구야? 이름은 남자로 저장되어 있는데, 여자잖아. 그리고 내가 작년에, 패드에 영상통화 기록이 떠서 이 번호 누구냐고 물은 적 있는데, 그때 모르는 번호라며. 친구가 번호 바꾸기 전에 쓰던 예전 번호라며."

"지금 내 폰 몰래 본거야?"

"지금 그게 중요해? 누군데 남자 이름으로 저장해 놓고 몰래 연락하냐고. 그리고 모르는 번호라고 왜 거짓말은 한 거야?"

"그냥 아는 동생이야. 근데 네가 뭐라고 할까 봐, 그래서 순간 거짓말 했어."

"지금 전화해서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고 해."

"아무 사이도 아닌데 쪽팔리게 왜 이래. 내 폰 내놔!"

"지금 전화하라고. 아무 사이도 아닌데 새벽에 영상통화하고 그러니?"

"우리가 뭐 불륜이라도 했냐. 듣자 하니 기분 나쁘게. 내 폰 내놓으라고!"

"이게 불륜이 아니면 뭐야? 둘이 떳떳하면 지금 전화해!"


남편은 힘을 써서 내게서 휴대폰을 뺏으려 했고, 나는 처절하게 휴대폰을 뺏기지 않으려 했다. 내가 뺏기지 않으려 할수록 남편의 힘은 세져서, 결국 남편이 내 손을 세게 비틀고 휴대폰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새벽동이 채 트기도 전에 남편은 집을 나갔다. 나는 남편이 떠난 빈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런 게 불륜이 아니면 대체 뭐란 거지', 속으로 이 말만 되뇌었다.


아침 9시가 되고, 용기를 내어 그 여자에게 전화를 했다.

"OO의 와이프예요. 앞으로 우리 남편하고 연락하지 말아요. 가정도 있는 것 같은데 남의 남편이랑 그러는 건 아니에요. 그쪽 남편도 이런 사실 알아요?"

"내가 어쨌다고 우리 남편 타령이야. 나랑 우리 남편은 사이 엄청 좋거든요?"

"그럼 우리 남편하고 왜 그랬어요? 남의 남편한테 콧소리 가득한 카톡 보내면서 애교 부리고, 새벽에 영통 하는 건 아니지 않아요?"

"당신 문제를 왜 나한테 뭐라고 하냐고. 당신 남편이 당신이랑 살기 싫다는데, 그럼 그건 그쪽 문제잖아."

"진짜 우리 남편이 나랑 살기 싫다고 얘기했다고?"

"그래. 안 맞아서 진짜 살기 싫다고 얘기했어."


나는 분명 더 이상 연락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려고 전화했는데, 되려 상처만 잔뜩 안고 그 여자와 통화가 끝나버렸다. 이런 기분에 도저히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어,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왔다. 2시간을 넘게 꼬박 걸었다. 검정 롱패딩에 몸을 맡긴 채, 패딩 모자에 얼굴을 감춘 채 펑펑 울었다. 걷고 또 걸어도 도무지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 여자의 말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2시간을 넘게 걷고 또 걸어도, 내 귀에 계속 달라붙어 나를 괴롭혔다. 마지막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다섯 살 아이처럼 한참을 울었다. 누군가 봤다면, 명절 이른 아침에 누가 저리 청승을 떨고 있나 했을 것이다.


아무리 울어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었다.

'나랑 사는 게 그렇게 지옥 같았을까. 내가 그토록 싫었을까. 왜 다른 사람에게 나를 그렇게 얘기했지? 정말 두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닌데 내가 오해한 걸까?'


가만히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작은 동네를 두세 시간 헤집고 다녔건만, 도무지 답을 알 수도 없고 가슴이 진정되지도 않았다. 남편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나의 어떤 점이 그렇게 싫었던 걸까.


남편과는 하루가 꼬박 지나고야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남편은 그 여자와 아무 관계도 아니고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그 여자에게 전화하니 그 여자가 화가 나서, 나에게 상처 주려고 그렇게 얘기한 거라며.


나는 남편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고, 남편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은 믿으면서 자기의 말은 믿지 않는다며 되려 내게 화를 냈다. 그 순간 내게 불같이 화를 내는 남편의 모습에, 정말 내가 잘못 오해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 당시, 해결되지 않는 상처들로 남편과의 이혼을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4살밖에 안 된 아이를 생각하면 차마 아빠 없이 자라게 할 수 없어, 내 가슴에 묻기로 했다. 힘든 내 마음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하늘에선 하얀 눈이 펑펑 내렸고,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상처를 안고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무성욕자가 되었다.


"대체 언제까지 사골 우릴 거야?"

남편은 나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버린, 아직 딱정이가 제대로 앉지도 않은 그때를 그저 지나간 해프닝정도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아직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그저 부부관계를 피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아무리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도, 현재까지 나를 괴롭힌다면 그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일 뿐이다.


나는 남편의 이혼요구의 상당 부분이 내가 무성욕자가 되어 온전한 부부관계를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남편이 원하는 삶을 살게 놓아주고 싶었다. 더는 내가 채워줄 수 없는 욕망으로 끝없는 다툼을 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도 일체의 망설임 없이 이혼에 동의를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그때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하나의 기능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상처에 발 묶여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답답하지만, 하나씩 해결해보려 한다. 이젠 솔직하게 인정하고,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과거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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