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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Sep 17. 2023

공황이 찾아왔다

남편과 헤어지고, 공황과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내게 이혼을 요구하고, 담담하게 이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황이 찾아왔다. 나는 겉으로 괜찮은 척하며, 내가 정말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마음은 사실, 그렇지 않았다.


이혼 서류를 접수하러 가는 길, 운전할 힘이 없어 버스를 탔다. 평소 멀미가 심한 탓에 대중교통 타는 게 쉽지 않은 편이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 느껴본 것이었기에, 처음엔 이 증상이 공황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만원 버스도 아니었는데, 극심하게 답답함을 느끼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숨을 쉴 수 없어 빨리 버스를 뛰어내리고, 허리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남편과 법원 앞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촉박해,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멀리서 남편이 보였고, 남편에게 걸어가는 그 짧은 거리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터벅터벅 걷는 내 발걸음이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져 마치 슬로우 장면 같았다. 하늘이 빙빙 도는 듯 어지럽기도 하고. 이러다 정말 쓰러져버리는 건 아닐까, 드라마 속 장면을 떠올렸지만 현실은 아주 안전하게 서류를 접수하며 끝났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이렇게 끝날 걸 왜 그동안 아등바등거렸을까.'


서류를 접수하고 나오며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허탈감이 나를 집어삼켰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거 같았지만 애꿎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켰다. 어쩌면 그날 남편의 표정도 나와 조금은 비슷해 보였다. 법원 문 앞에서 남편과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법원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남편과 서류가 정리되면 거처도 따로 마련해야 하고, 아이랑 둘이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현실적인 고민들이 날아들었다.


'또 숨이 쉬어지지 않으면 어쩌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다시 타는 것이 두려웠지만 힘겹게 버스를 탔고, 다행히 아까와 같은 증상은 없었다. 그렇게 공황의 첫 증상은 공황인 줄 모르고 지나갔다. 하지만 내게 찾아온 공황은 쉬이 내게서 떠날 생각이 없었는지, 며칠 후 내게 또다시 찾아왔다.


남편은 선뜻 이혼하겠다고 수긍하고 바로 서류 접수를 하는 내 모습이, 마치 이혼을 기다렸단 듯이 보여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도 나와의 이혼이 맞는지 결혼을 유지하는 게 맞는지, 헷갈렸던 걸까. 남편은 '이혼을 기다렸냐며, 아주 좋아 보인다고.'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남편과 나는 또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끝난 마당에 또 이렇게 말다툼을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말다툼의 상황이 너무 넌덜머리가 났다. 더 이상 남편과 바닥을 치고 싶지 않아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과호흡이 찾아왔다. 도무지 내가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다. 내가 마치 숨을 쉬는 방법을 잊은 듯,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한참을 숨을 헐떡이다 다시 숨이 쉬어졌다. 눈물이 조용히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옆에 잠든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버스에서 느꼈던 감정도, 지금 느낀 과호흡도 뭔가 이상해. 설마...'


과호흡이 잦아들고 난 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날 버스에서 느꼈던 숨 쉴 수 없는 감정과 지금의 과호흡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인터넷에 내가 느낀 감정과 증상들을 찾아봤고, 공황이 내게 찾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왜 하필 내게 이런 고난이 찾아온 걸까. 이혼만으론 부족했던 걸까, 나는 더 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 왜 공황까지 찾아와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갖가지 생각들과 원망들이 뒤엉켜 밤새 나를 괴롭혔다. 나는 착한 사람이라곤 못해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이렇게 힘든 고난이 연거푸 찾아오는 걸 보면 분명, 나는 나도 모르는 죄를 지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만 견디기 힘든 시련이 계속 찾아올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게 두려워 매일 다니던 운동도 쉴 수밖에 없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며칠을 지내자, 이렇게 지내면 우울감에 휩싸여 영영 헤어 나올 수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 오랜만에 헬스장에 갔다. 헬스장에 들어서자마자 큰 음악소리에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리고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내려놓는 기구의 쇳소리가 너무도 날카롭고 크게 내 귓청을 파고들었다.


그날 이후로 한참 동안 모든 소리가 크게 들려, 사람이 많은 장소나 노랫소리가 큰 헬스장엔 갈 수 없었다. 집에서도 최대한 소리 없이 지냈고, 가족들에게 작은 소리로 생활해 줄 것을 부탁했다. 남편과는 그 뒤에도 몇 번이나 부딪치고 싸움의 직전 상황까지 이르는 경험을 했고, 나는 나의 건강을 위해 아이와 잠시 친정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서류가 채 정리되기도 전에, 우리는 끝이 나버렸다.


살기 위해서 벗어났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남편과 한 공간에서 더 지내다간, 미쳐버릴 것만 같았고 남편을 미워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당장 필요한 짐들과 옷가지들만 챙겨 아이와 친정으로 향했다. 그렇게 남편과 헤어지고, 공황과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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