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Oct 22. 2023

행운과 행복의 차이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과정




나른한 주말 오후, 아이와 손을 꼭 잡고 산책을 나섰다. 가을볕이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만큼,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오후였기에,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웠으니까. 아이와 산책의 끝은 늘 동네 마트다. 동네마트에 들러 아이가 좋아하는 젤리나 먹거리를 한 두 개씩 사 오면,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어준다.


아이의 행복은, 결코 거창하지 않은 동네 산책과 마트 쇼핑에 있다는 사실이, 내게 큰 힘이 되어준다.


"엄마 여기 세 잎 클로버 많아. 우리 네 잎 클로버 찾아보자."

"좋아."

"이모가 원래 네 잎 클로버는 잘 없대. 지난번에 하수구 근처에서 네 잎 클로버 찾은 적 있는데."

"정말? OO이는 네 잎 클로버가 좋아?

"응. 네 잎 클로버가 더 없으니까. 엄마는?"

"엄마는, 세 잎 클로버가 좋더라."

"왜?"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뜻하고,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뜻하니까."

"둘의 차이가 뭐야?"


아이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세 잎 클로버 무리를 만났다. 옹기종기 모여 우리에게 다정히 손짓하는 그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이와 나는 세 잎 클로버 무리 앞에 쪼그려 앉아, 혹시 네 잎 클로버가 있지는 않을까, 요리조리 한참을 살펴보았다. 나는 네 잎 클로버를 갖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두 눈을 있는 힘껏 크게 뜨고 찾아보았지만, 네 잎 클로버는 끝까지 눈인사를 보내지 않았다. 결국 우리의 네 잎 클로버 찾기는 실패했다. 하지만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세 잎클로버들 사이에 마주 앉은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었다.


"행운과 행복의 차이는, 예를 들면 이런  같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클로버보다   클로버를 좋아해.  이유는 아마,   클로버는 흔하지 않고 특별해서,   클로버를 찾으면 행운이   같다는 생각을 . 행운은 내가 바라던 바가 갑자기 이루어진다거나 성공을 하거나 사랑이 이루어지거나 이런 . 어쨌든 인생에서 아주  번의 기회로 특별하게 주어지는 거야.

하지만   클로버는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어. 지금 우리 옆만 봐도   클로버는 수북하게 쌓여있잖아. 이것처럼 행복은 우리 옆에 있어서 우리가   느끼는 거야. 하지만 우리가 숨을 참고 깊게 들여다보면 그때   있어. 지금 우리가 가을 햇살을 쬐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가서 만두를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계획이라는 . 너랑 나랑 이렇게 웃으며 시간을 보낼  있는 . 이런  행복 같아. 행복이라고 느낄  있으면 행복이 되지만, 매일  옆에 있으니까 행복이라고 여기지 못하면 행복이   없는 그런 것들."


아이는 내 얘기를 조용히 듣더니, 잔뜩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럼 나도 세 잎 클로버가 더 좋아. 나는 엄마가 오늘도 건강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거든. 행운보다 행복이 더 좋은 거 같아."

"맞아. 행운이 있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그저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그게 최고지."


아이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에게 해준 이야기는,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으며, 오늘의 행복보단 어떤 행운이, 성공의 운이 내게 있어주기를 바랐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었고, 더 나은 환경을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이런 바람들은 현재의 감사함을 이따금씩 빼앗아갔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만이 내게 더 깊숙이 뿌리내리게 했다.


오늘의 감사함을 잊고 일상의 행복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경제적 여건이나 삶의 환경이 더 윤택해진다 한들 내 삶도 진정 윤택해지지는 못하리라. 20대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았지만, 내 마음은 더 많이 지쳤고 병이 자라났으니까. 지난 8년 간 몸소 느낀 바다. 가난하지만 꿈을 좇으며 꿈꿀 수 있는 오늘에 감사했던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더 건강하고 빛났던 순간이다.


오늘이 없다면 내일이 있을 수 있을까.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행운이 의미가 있을까.

결국 중요한 건, 오늘의 특별하지 않은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오늘은, 아이와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며 행복과 행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좁디 좁아진 가슴을 가득 채우는 기쁨이 느껴졌다. 가슴이 뻥 뚫려 가슴의 크기가 두세 배는 커질 만큼 파-란 하늘 아래, 아이와 눈 맞추며 이야기할 수 있는 오늘이 참 좋았다. 내게 아직 이런 감정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내가 순수하게 눈 맞추고 대화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어 좋았고, 아이가 많이 자라 행복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가 자주 종종 주위를 살펴보고 감각을 깨운다면, 우리 옆에는 늘 세 잎 클로버가 존재한다. 행복은, 고개를 돌리고 마음의 눈으로 지그시 현재를 바라본다면, 오늘의 시간 속에서도 무수히 많이 만날 수 있다. 오늘 당신 옆에, 그리고 내 옆에 존재하는 행복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이란 건,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특별함보다는 평범함 속에서 감사함을 느낄 수 있기를.


평범한 하루를 살아간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범하게 하루를 잘 살아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나와 당신의 어깨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밤이다.







이전 10화 아이의 고열로 밤을 지새우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