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빈자리
"엄마 목이 아파. 침을 삼키기 힘들어."
"어제 OO이가 이불을 안 덮고 자서 그래. 이따 점심쯤 되면 괜찮아질 거야."
아이는 등교준비를 하면서 내게 목이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아이가 아침에 목이 붓는 일이 많아, 나는 으레 하던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도 아픈 목을 가지고 학교를 가는 아이가 짠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 아픈 걸로 학교를 결석하는 게 맞나, 짧은 찰나 고민했지만 잦은 결석은 아이에게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결국 아이의 등교를 묵묵히 준비했다. 다만, 목이 아프다는 아이를 위해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잔 타서 먹이고, 목에는 단정히 손수건을 둘러주었다. 이렇게나마 아픈 아이의 힘듦을 덜어주고 싶었다.
아이는 학원에 다녀오고 평소처럼 저녁밥을 먹었다. 주어진 숙제를 하고 오늘의 일과를 마친 아이는, 내게 영상을 보고 싶은 눈빛을 마구 쏘아댔다. 아이는 다행히 아직 유튜브나 휴대폰의 재미는 몰라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는 정도로 여유시간의 낙을 보내곤 한다. 어제도 아이는 평소처럼 어린이 프로그램을 30분 정도 시청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열두 시쯤 되었을 때, 아이가 잠에서 깨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OO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아이는 내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중언부언 이야기를 했다. 나는 다급히 아이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아이의 이마는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나는 서둘러 체온측정기를 찾아 아이의 체온을 재보았다.
39.7도였다.
나는 아이가 열경련이라도 할까 봐 그 순간 너무나도 무서웠다. 급한 마음에 아이의 옷을 전부 벗겼다. 그리고 물수건을 여러 개 만들어 아이의 이마, 목, 겨드랑이에 올려주었다. 다른 물수건으론 연신 아이의 팔과 다리를 쓸어내렸다. 아이는 춥다고 내게 이불을 덮어달라고 했지만, 나는 아이의 작은 몸을 수건으로 찜질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해열제를 먹었음에도 쉬이 열이 떨어지지 않아, 교차복용으로 해열제를 먹였다. 그렇게 1시간쯤 흘렀을까. 간신히 떨어진 체온이 38.8도였다.
해열제도 듣지 않고, 아이는 오한이 찾아와 벌벌 떨고 있는 상황이 두려웠다.
'아이를 지금이라도 업고 응급실로 향해야 하나. 응급실에 갔다가 괜히 고생만 하면 어쩌지. 근데 집에 있다가 열이 안 잡혀서 열경련이라도 하면..?'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괴롭혔다. 온전히 나 혼자 판단하고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이혼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아이의 케어는 결혼 중에도 늘 내 몫이었고, 이혼 후에도 아이의 양육을 내가 맡았기에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픈 상황에 누구에게 의지할 수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아이는 어릴 때 경련을 하고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남편이 내 곁에 있었고, 두려운 상황에서 같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때는 아픈 아이의 곁에서 쪽잠을 자며 나 홀로 간호하는 것에, 약간의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고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지나고 돌이켜보니, 내가 그 당시 몰랐던 것일 뿐, 아이에 대해 같이 걱정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 또한 부모가 함께 육아를 하는 일이었던 셈이다.
이제 나는 혼자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결정을 해야 했다. 경련이 오면 어쩌지 두려움에 전전긍긍 마음을 졸이며 밤을 지새우는 동안, 앞으로도 나 혼자 결정해야 하는 무수한 상황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엄마와 아빠 역할의 많은 부분을 나 혼자 감당하기로 결심했으니, 더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평소처럼 아픈 아이옆에서 물수건을 올리고 밤을 지새워 간호하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하루는 하루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앞으로도 아이의 적성 혹은 진로, 아이의 건강, 아이의 친구 문제 등에서 숱하게 많은 고민과 결정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나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의지함 없이, 나 홀로 아이의 든든한 엄마가 되어주어야 함을.
이른 아침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이는 밤새 열과 잘 싸워주었고, 열이 39도 언저리에서 맴돌며 아이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고, 아이는 수액을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입원을 하는 상황까지 고려하고 병원에 갔는데, 다행히 집에서 지켜보라고 하셨다.
여전히 39도를 웃도는 아이는 처방받아온 약을 먹고 잠들었다. 그 옆에 앉아 노트북 자판 위에 가만히 손을 얹어보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좋을지 몰라 한참동안 빈 화면을 바라보다가, 지금의 내 감정을 차분히 써 내려갔다. 내 옆에 물수건을 올리고 잠든 아이. 그 아이 곁에서 오늘 밤도 하얗게 지새워야 하는 나는, 이렇게 한 뼘 자라남을 느낀다.
아이들은 아프고 난 뒤, 껑충 자라난 느낌을 주곤 한다. 아이를 기르는 8년 동안 느낀 생각이다. 또 아이가 아픈 만큼, 그 시간을 함께하는 나도 아이와 한 뼘 자라남을.
아이가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부디 오늘 밤은 많이 아파하지 않고, 무탈히 지나가기를.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고 기도하며, 외로운 시간을 이겨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