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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Oct 17. 2023

3대가 목욕하러 가는 날

평범한 동네 목욕탕





"목욕탕 갈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목욕탕에 가자는 엄마의 연락에,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할머니랑 목욕탕 갈까?"

"응 좋아."


아이는 올해 초, 생애 처음으로 목욕탕에 갔었다. 생애 처음은 뭐든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은가. 아이는 특별할 것 없는 동네 목욕탕에 다녀왔음에도, 너무너무 좋았다며, 내게 목욕탕에 또 가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내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목욕탕에 가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6개월이나 지나서야 아이는 생애 두 번째 목욕탕 방문을 하게 되었다.


아이는 평범한 동네 목욕탕도 그저 신기하고 재밌는 모양이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할머니에게 질문을 하고, 온탕과 이벤트탕을 오고 갔다.


"뜨거운 온탕은 좀 답답해. 나는 시원한 이벤트탕이 더 좋아."

"그래도 때도 밀려면 온탕에 들어가야 해."

"온탕은 물이 너무 깊은 거 같아서 무서워."

"이제 많이 커서 전혀 깊지 않은 걸. 겁내지 말고 여기에 앉아봐."


아이는 온탕보다 이벤트탕에 앉아 시원함을 만끽하고 싶어, 자꾸 온탕의 불편함을 토로했다. 결국 아이의 등쌀에 못 이겨 우리는 이벤트탕에 들어가 시원한 물에 몸을 맡겼다. 아이는 시원한 물이 좋다며, 싱글벙글 웃으며 탕 속에 있는 시간을 만끽했다.


"나도 엄마처럼 얼른 키가 커서, 탕에 마음껏 앉아도 되면 좋겠다. 지금 나는 바닥에 앉으면 탕에 퐁당 빠질 것만 같아. "


아이는 탕 속에 자유자재로 앉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물론 아이는 목욕탕에서만 어른이 되고 싶은 눈치다. 목욕탕 밖 세상에선, 어른의 삶이 책임져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는 천천히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이와 목욕탕에 오니, 어릴 적 가족들과 주말마다 목욕탕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주말마다 집 근처 목욕탕에 가족들끼리 가면, 아빠랑 목욕을 하러 가는 남동생이 부러웠다. 엄마는 언니랑 내가 아프다고 해도 끝까지 때를 밀었지만, 아빠는 동생이 아프다고 하면 굳이 힘들게 때를 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절 엄마는 언니와 내게 목욕탕에서 파는 음료수를 사주지 않았다. 아빠는 남동생에게 목욕탕에서 파는 바나나우유를 사주곤 했는데, 엄마는 목욕탕에서 파는 음료는 비싸다고 절대 사주지 않았다. 언니랑 나는 목욕탕에서 나와 뚱뚱한 바나나우유를 먹는 남동생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엄마는 남매 셋을 키우며 알뜰살뜰 살림을 했다. 그 탓에 조금은 짠순이처럼 우리를 키웠고, 목욕탕의 추억에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추억이 따뜻하게 남은 이유는, 우리 다섯 가족이 함께 보낸 시간이리라.


언니도 타지로 대학을 가며 집을 떠났고, 나도 타지로 대학을 가게 되며 집을 나오게 됐다. 그렇게 우리 다섯 식구가 함께 사는 날도 끝이 났었다. 그 뒤론 결혼을 하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독립하게 되었으니, 다섯 식구가 온전히 하나가 되어 지냈던 기억은 그 자체로 소중하게 남아버렸다.


이제 여기저기 많은 주름을 갖게 된 엄마의 몸을 보며, 어쩌면 아이와 나 그리고 엄마, 이렇게 3대가 목욕하는 지금 이 시간도 머지않아 그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어릴 적 목욕탕 기억처럼.


엄마와 아빠가 내 곁에 있는 지금에 익숙해져, 부모님의 감사함을 자꾸만 잊곤 한다. 부모님의 존재가 그리워질 날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부모님과 특별한 날의 여행도, 평범한 날의 일상도 소중히 남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동네 목욕탕에서의 목욕일지라도, 앞으로 더 기쁜 마음으로 엄마와 목욕을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하루.


어쩌면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나의 삶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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