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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 Nov 21. 2021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이거 소설책이었던가?
 마치 실상을 확인하는 다큐멘터리 책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신문의 국제면에서 여러 번 보아왔지만 그들이 실제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어떤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차치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겨우 짐작이나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나에게 멀고 낯선 나라다. 뉴스에서 종종 보아 오고 그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 안의 상황을 알려고 해 본 적은 솔직히 없다. 내가 살기 바쁜걸. 주변 사람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는 삶인데.
 그런 나에게 이 소설은 또 다른 시각의 채널을 열어주었다. 가슴 아프고 처절한 역사의 배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일생을 너무 생생하게 그려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간성, 휴머니즘이 너무나도 잘 표현되어 있어 그들이 속한 그 슬프고 아픈 역사적 배경을 더 극적으로 느끼게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근현대사 안에서 묘사되는 마리암과 라일라의 비극적인 삶이 비단 소설 속 주인공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실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 읽는 내내 가슴 아프고 무거웠다.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로부터조차 무시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싶은 본능에 따라 한줄기 희망을 잡듯 온 마음으로 믿었던 아버지로부터도 버림을 받은 마리암은 팔리듯 머나먼 낯선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삶의 시작이 된다. 또 다른 주인공인 라일라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전쟁으로 부모와 소중한 친구인 타리크를 잃으며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른 삶이 펼쳐지게 된다. 이 두 주인공의 삶은 초반엔 각각 많이 다른 별개의 삶인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두 주인공이 만나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설정 등을 통해 나는 엉뚱하게도 희망을 느낀 기분이고 읽는 내내 무거웠던 안타까운 마음들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다. 사랑을 베푸는 모습으로 위로받았다.

 두 주인공이 한집에 살며,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고, 마리암의 크고 희생적인 사랑에 그 모습을 보는 내가 오히려 초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편안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며 희생을 기피하는 나를 비롯한 꽤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한 인간의 삶이, 비극적인 삶의 배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켜내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라일라를 위해 희생을 택한 마리암, 라일라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태어나면, 새로운 마리암의 삶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멋진 말로 이 슬프고 찬란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유독 소설을 잘 읽지 못하는 것에 비해 이 책은 비교적 흥미롭고 또 물 흐르듯 읽었지만 읽는 동안, 다 읽고 나서 마음은 그 어느 책을 읽었을 때 보다 가볍지 못했다. 어떤 것들이 이렇게 찬란하게 사랑을 주고, 또 받는 숭고한 그들의 삶을 그토록 비극적으로 만드는 걸까. 왜 그들은 이런 사회적 구조 안에서 억압받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누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며 왜 멈출 수는 없는 걸까 하는 등의 의문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어느 한 소수 기득권의 이득을 위해 희생해도 되는 인간은 없다. 아프가니스탄이 배경인 이 소설에서는 여성들의 삶이 비극적으로 묘사돼 있지만 사실 이것은 단지 여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한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실상들이 한가득이다. 우리나라도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권리 신장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것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과 또 많이 다르다. 심지어 이런 것들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점에, 그 이질감에 경악하게 된다.

 여성들이 얼굴과 몸을 노출하고 당당히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사회, 남자가 없이 외출할 수 있는 그런, 바라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회가 21세기를 지나는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이 되길 상상해본다. 그것을 위해, 그곳의 여성들이 무력감과 절망감에 모두 쓰러지기 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 세계에 인간의 보편적 권리가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가치로 서길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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