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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 어른이 Aug 30. 2021

16화. 한국 식당은 믿을 수가 없어~

일본인 아내와 사는 한국 남자의 솔직한 이야기

모처럼 부엌 정리를 했다. 정리보다 비움에 가까웠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 사용하지 않는 주방용품... 여태껏 이런 쓰레기들과 함께 살았다니! 시원하게 선반을 비우는데 고춧가루가 담긴 작은 병을 발견했다. 엄마한테 받은 고춧가루다.


"이 고춧가루... 언제 받았지...?"

"기억도 안나~ 4~5년은 되지 않았을까?"

"근데... 이거 먹을 수 있는 거야?"


일본인 아내가 주로 음식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춧가루, 고추장 등 매운 양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엄마에게 받았던 고춧가루 역시 처음 받았을 때와 양이 별반 차이가 없다. 원래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결혼 후 집에서는 매운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올해 7살이 된 우리 딸은 태어나서 매운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보니 고춧가루가 조금만 들어가도 먹기 힘들어한다.


# 라면 먹고 사기당한 느낌은 처음이야
한국 생활이 15년이 된 아내는 이제 매운 한국 라면도 '후~~ 맵다~~' 하면서 잘 먹는다. 하지만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먹을 수 있는 라면은 사리**면 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내의 한국 생활 초반, 진*면을 먹고 사기를 당한 느낌이었다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진*면은 '매운맛'과 '순한 맛'이 있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아내는 당연히 '순한 맛'을 골랐고 집에서 '순한 맛' 진*면을 끓여 먹고 화가 났다고 한다.


"이게 왜 순한 맛이야?!"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맵긴 하지만 진*면 매운맛보다 맵기가 조금은 덜한 '순한 맛'이라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순한 맛 라면이 있긴 한 거야?라고 한다.

# 일본인에 매운맛이란?

일본에 가면 꼭 사 오는 반찬이 있다. '다베루 라유'인데 한국어로 해석하자면 '먹는 고추기름'이다. 고추기름에 담근 후레이크 마늘인데, 밥도둑이 따로 없어 따끈한 흰밥과 함께 먹으면 두 그릇도 뚝딱이다. '다베루 라유'는 일본에서 매운 음식에 속하지만, 매운걸 잘 먹지 못하는 내게도 '다베루 라유'는 단지 고추 향이 나는 양념이다.


# 칼칼하긴 하지만 맵진 않아

화를 잘 내지 않는 아내지만, 몇 년 전 식당에서 화를 낸 적이 있다. 국수를 좋아하는 딸과 함께 잔치국수를 먹으러 갔다. 진*면 순한 맛에 당한 경험이 있는 아내인지라 식당에 갈 때면 주문하기 전 꼭 매운 음식인지 꼭 물어본다. 잔치 국숫집 역시 식당 주인에게 아이가 먹을 거라며 매운지 물어봤고, 주인은...


"하나도 안 매워요~ 애들도 잘 먹어요~"


라고 했다. 아내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딸을 위해 잔치국수를 주문했다. 하지만 한입을 먹자마자 청양고추의 맛이 확 났다고 한다. 아내도 그렇지만 딸아이 역시 "매워~ 매워~"라고 하며 한 젓가락도 먹지 못했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아내는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이거 안 맵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식당 주인은

"이거 안 매운 건데... 우리 집 국물엔 청양고추가 조금 들어가 칼칼하긴 하지만 맵진 않아 얘들도 잘 먹는데..."


그 후 아내는 한국 식당에서 안 맵다는 말을 믿지 못하게 됐다.

# 맵지는 않지만 아린 맛이 좀 있어요

올해 여름휴가는 가족과 함께 경주로 갔다. 요즘 핫하다는 황리단길 한옥호텔에서 묵었는데, 황리단길에는 인스타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들이 즐비했다. 그중 아내가 꼭 가고 싶다는 일본식 카레집이 있었다. 둘째 날 점심을 먹기 위해 카레집을 갔다. 메뉴판에는 매운 정도에 따라 고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와 함께 있었기에 고추 그림이 하나도 없는 메뉴를 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 식당에서 당한 경험이 있었던 아내는 종업원에게 물었다.


"이거 안 매워요?"

"네! 이건 안 매워요. 하지만 카레 특유의 아린 맛이 좀 있어요."


아내와 종업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방장은 뭔가 이상했는지, 우리에게 시식을 권했다. 티스푼으로 맵지 않다는 카레를 먹어 본 아내는


"죄송합니다. 우리 딸이 못 먹을 것 같아요."


라며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말했다.


한국에서 안 맵다는 말은 정말 못 믿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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