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3년 8개월 전 월요일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가 전화를 해 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빠가 쓰러져서 지금 앰뷸런스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데! 응급실로 어서 가봐!" 식판을 정리할 새도 없이 뛰쳐나간 나는 소지품을 챙기고 병원으로 급히 달려갔다. 은퇴 후 건축 감리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아빠가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한다.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던 아빠는 그날부터 3년 8개월 동안 이곳저곳 병원을 돌아다니다 결국 하늘나라로 영원히 가버렸다.
몇 번의 고비를 경험했던 것일까? 우리 가족은 아빠의 죽음을 덤덤히 잘 받아들였다. 아빠의 죽음이 슬프긴 했지만, 그동안 병원에서 고생하던 아빠를 생각하면 오히려 잘됐다 싶기도 했다. 마치 장례식을 몇 번이나 치러본 사람처럼 상조회사와 장례식장 예약 등 내 인생의 첫 장례식을 너무나도 순조롭게 진행했다. 일본인 아내는 옆에서 묵묵히 응원을 하고일본과는 다른 장례 문화에 신기해하기도 했다.
+ 장례식장이 왜 병원에 있어?
일본인 아내가 가장 처음 놀란 건, 왜 장례식이 병원에서 진행되냐는 것이었다. 일본인 아내도 일본 전국의 장례식장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본의 장례식은 보통 별도로 마련된 장례식장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처음 병원 장례식장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장례식장은 죽음을 슬퍼하는 장소인데,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다.
나는 아내에게 한국에도 별도의 장례식장이 있다고 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장례식을 집에서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병원 장례식을 선호한다. 장례식만 진행되는 장소는 죽음과 애도만 있지만, 병원에는 생명 탄생과 치유가 함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 아버님은 어디 계셔?
이번 장례식에서 아내는 딸과 조카들 돌봄 담당이 되어 장례식장을 모두 준비한 후 점심시간 즈음에 아이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한국의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은 아내는 슬프기도 했지만,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아빠가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만든 영정 사진의 재단을 보고 "아버님은 어디 계셔? 재단 뒤에 계신 거야?"라고 물었다. 나 어릴 적이야 방에 병풍을 치고 뒤에 시신을 둔 상태로 장례식을 진행하긴 했지만, 지금은 안치실에 고인을 두고 영정 사진만 놓고 장례식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일본의 장례식은 고인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라 한다. 그래서 고인의 얼굴을 직접 보고 만지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입관을 할 때 긴급 가족회의가 소집됐다. 아이들이 지금 9살, 7살, 4살인데 입관 장소에 아이들과 함께 가야 하는 것인지? 아이들이 고인이 된 할아버지를 보고 충격을 받을 것을 걱정해서다. 하지만 아내는 할아버지 얼굴을 보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입관 시간에 7살 딸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해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 일본 사람과 젓가락을 맞대면 결례
3일장을 마치고 화장터로 향했다. 아버지의 관이 화구에 들어가고 약 1시간이 지나자 유골만 남아 다시 나왔다. 비록 아빠의 생명이 끊어지긴 했지만, 불과 1시간 전에만 해도 육체가 있었는데... 하지만 아빠가 좀 더 가볍고 자유로운 모습이 된 것 같아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아빠의 유골은 가루로 분쇄되어 작은 유골함에 담겼다.
아내는 유골을 가루로 분쇄하는 것이 신기했다고 한다. 일본은 화장을 하고 유족들이 유골 앞에 서서 고인의 명복을 마지막으로 빌어준다고 한다. 그리고 긴 젓가락으로 유골을 집어 장례식 담당자에게 전달한다고 한다. 장례식 담당자는 젓가락으로 유족이 건넨 유골을 잡아 유골함에 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사람과 밥을 먹을 때 상대방과 젓가락을 맞부딪히는 건 매우 큰 결례라 한다. 일본인 친구가 젓가락으로 낑낑대며 배추김치를 찢고 있더라도 절대 젓가락으로 반대편을 잡아 찢는 것을 도와주면 안 된다고 한다.
+ 소금은 안 뿌려?
장례식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혹시 한국은 장례식장에서 소금을 답례품으로 주지 않냐고 물어봤다. 일본은 장례식을 참석한 사람들에게 답례품으로 소금을 준다고 한다. 소금을 받은 조문객들은 집에 돌아와 집 안에 들어가기 전에 몸에 소금을 뿌려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재수 없는 일이 있을 때 소금을 뿌리는 문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아마 같은 동양권 문화다 보니 비슷하게 전해져 내려온 풍습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하는 곳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없어진 풍습인 듯하다.
비록 한국과 일본의 장례 문화는 서로 다르지만,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아닐까?
아빠, 그동안 잘 살았어요. 3년이 넘게 고생했으니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침대를 벗어나 자유롭게 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