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아내와 사는 한국 남자의 솔직한 이야기
일본인 아내와 함께한 지 벌써 10년. 어느덧 불혹이 넘은 나이가 됐지만 아직 "저도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요"라며 일본인과의 소개팅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물론 내 아내가 일본인 여성을 대표할 수 없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일본인과 결혼의 장단점을 생각해 봤다.
# 좋은 점 : 결혼은 했지만, 나로 살고 있다
일본은 개인주의가 강하다고들 한다. 개인주의란 단어가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내 경우는 좀 다르다. 결혼을 하면 '나'가 아닌 OO의 남편, OO의 아빠가 되어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고들 한다. 아저씨들이 술을 마시면서 "왕년에 내가~"란 말을 하며 호기로웠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나는 결혼 후에 더욱 나답게 살고 있는 듯하다.
나는 취미가 좀 많은 편이다. 스노우보드, 직장인 밴드(키보드), 색소폰 등. 유부남임에도 결혼 전과 변함없이, 오히려 더 열심히 취미 생활을 하는 나를 보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집에서 와이프가 뭐라고 하지 않아?"라며 걱정을 해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건 일본 특유의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이렇게 취미 생활을 하는데 싫지 않아?"라고 아내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아내는 "본인이 하고 싶은 거잖아. 그걸 내가 왜 말려?"라며 이런 질문을 하는 내가 더 이상하다고 한다. 물론 나 역시 아내가 뭔가를 하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 결혼을 했다고 모든 것을 둘이 꼭 함께 즐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인생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개인을 존중하고 서로 응원해줘야 한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다.
# 반은 좋고, 반은 아쉽고 : 경제에 대한 생각
일본인은 저축을 많이 하고 검소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건 사실이다. 아내를 비롯해 아내의 일본인 친구들 역시 대부분 검소한 편이다. 대출을 받는 것이 싫어 신혼집을 구할 때도, 차를 살 때도 대출 없이 지금 형편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아파트가 아닌 빌라, 중형차가 아닌 소형차였긴 했지만 우린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참 건전한 경제생활이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아쉬운 것은 있다.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른 아파트를 보면 말이다. 10년 전 결혼할 때, 지금은 서울 시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고가의 아파트 단지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미분양이 많았다. 부동산을 잘 알던 친척은 대출을 최대한 받아 미분양 아파트를 사라고 했다. 아내와 심각하게 논의를 했고 결국 대출은 빚, 갚아야 할 돈이라며 아파트를 사지 않았다. 지금은 '대출 = 레버리지 투자'의 개념도 있긴 하지만, 당시에는 일본의 경제관념이 컸을 때라 대출 자체를 두려워했다.
# 나쁜 점: 역사는 바꿀 수 없다
스포츠 한일전은 서로의 나라를 응원하며 즐길 수 있다. 하지만, 3월 1일과 8월 15일 등 한일 역사의 중요한 시점의 기념일이 돌아오면 TV를 켜는 것이 불편하다. 일제강점기를 주제로 다룬 특선영화, 다큐멘터리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 번은 가족끼리 박물관 견학을 간 적이 있다. 일본 유물을 설명하던 학예사는 일본에 대한 욕을 엄청 하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학예사는 아내가 일본인인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럴수록 역사를 가르쳐줘야 한다고 하고,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는 내가 매국노 인양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면 일본에서 딸의 안부를 걱정하는 장모님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6살 딸아이에겐 "너는 반은 한국인이고, 반은 일본인이야"라고 가르친다. 이 아이가 한국의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들을 때 불편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건 후회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