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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 어른이 Nov 26. 2023

지옥철에서 넷플릭스를 못 보는 이유

마! 흔한 일 아니겠니?

평소 건강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1년에 한 번 받는 건강검진은 꼭 시험장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초음파 사진은 왜 그렇게 많이 찍지? 왜, 사진을 찍으며 '어?'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거지?

수면 내시경을 마치고 정신을 차린 후 간호사한테 물어본다. 

"위는 괜찮나요? 제가 만성 위염이라 매년 내시경 검사를 받으라 했거든요."

하지만 매번 제대로 답변을 듣긴 어렵다.

"정확한 진단 결과는 선생님께 들어야 해요."

간호사는 딱 잘라 말한다. 하지만 그때부터 걱정 시작이다.

'뭐가 있는 건가? 그래서 얘기를 못해주는 건가? 깨끗해요!라고 한마디면 되는데..'

하지만, 올해도 건강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 다행이다. 


지금 내 나이가 건강검진을 긴장하는 나이라 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검사실 중 당당하게 들어가는 곳도 있다. 바로 시력 검사실. 라식을 받지 않았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안경을 쓰지 않고 아직 좌우 시력 1.2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도 역시 시력 검사판의 글씨를 자신 있게 읽고 나왔다. 

그런 내게도 4년 전쯤 시력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이 약 1시간 정도 되는데, 그 시간 동안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곤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데, 초점이 잘 맞춰지지 않고 자막이 흐릿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많아 눈이 침침한 건가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여유의 공간이 생기자 손을 좀 뻗을 수 있었고, 그제야 스마트폰 자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내 핸드폰은 S사의 노트형 제품으로 화면이 크다.)


하루는 회사에서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 했다. 눈이 좀 불편한데, 한쪽 눈에 꼭 기름종이를 덧대어 놓은 것처럼 불편한 기분이라 했다. 눈곱이 자주 끼는 것 같아 자주 눈을 비빈다고도 했다. 이 말을 잠잠히 듣고 있던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노안이야. 이제 시작할 때가 됐지


내가 노안이라니? 인정하기 힘들었다. 하루이틀이면 괜찮아질 거라 기대했지만 생각과 달랐다. 시간이 갈수록 지하철에서 스마트폰과 눈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결국 십여 년 만에 안과에 가보기로 했다. 안과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받은 후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눈이 아주 좋네요. 보통 사람보다 훨씬 건강한 눈이에요. 그런데 노안이 시작됐어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본인은 불편하겠지만, 아마 보통 사람보다 훨씬 잘 보일걸요? 원래 눈이 좋았던 사람들이 시력이 조금만 나빠져도 불편함을 더 크게 느끼곤 해요."


눈이 건강하다는 기쁜 소식과 노안이란 슬픈 소식을 하루에 들을 줄이야.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 나는 원래 글을 쓸 때 화면 크기를 90% 정도로 맞추고 자간을 줄이고 폰트 크기도 작게 했다. 그래야 왠지 글을 쓸 때 집중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화면의 크기는 120~130%가 됐다.


노안이란 판정을 받은 후에도 눈이 좋아질 수 있을 거란 헛된 상상도 했다. 건강기능식품으로 루테인을 챙겨 먹기 시작하고, 눈에 좋다는 음식을 꾸준히 먹었다. 그렇게 헛된 상상을 3~4년을 하고 결국 올해는 안경을 맞추기로 했다.

중학교 시절에 빨강, 파랑, 노랑 등 컬러풀한 뿔테안경이 인기였다. 안경 도수가 없더라도 패션 아이템으로 뿔테안경을 쓰는 친구들도 많았다. 나도 뿔테안경을 쓰고 싶어 엄마한테 사달라 했지만, 눈 좋은데 안경 쓰면 눈이 나빠질 수 있다며 사주지 않았다. 그때는 뿔테안경을 쓰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 내가 올해 생애 처음으로 안경점을 찾았다. 하지만 기쁘진 않았다. 노안으로 안경점을 찾았다는 것이 속상하기만 했다. 안경점 안을 둘러보는데, 안경테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먼저 안경사의 상담을 받았다. 안경사는 눈 검사를 하고 이상하게 생긴 테스트 안경을 씌워줬다. 그리고 나는 외쳤다. 

보인다! 환하게 잘 보인다!


안경을 착용하던 사람이라면 오버하지 말라 할 수 있지만, 생애 첫 안경을 써 본 나는 눈에 광명을 찾은 듯 선명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안경사님. 잘 보여요! 그런데 나이도 아직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돋보기안경이라니, 마음이 아프네요"라고 했다. 그러자 안경사는

"이걸 돋보기 렌즈라고 부르지 않아요! 근용 렌즈라 해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돋보기안경, 노안 안경이라 하면 사람들이 거부감이 있어 근용 렌즈라 한다. 하지만 결국 본질은 노안을 위한 돋보기안경이다. 

생애 첫 안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돋보기안경이라 항상 쓰고 있을 수는 없고 책을 볼 때나 컴퓨터를 쓸 때만 착용했다. 썼다 벗었다를 반복해야 하는 건 참 번거로운 일이었다. 또, 안경을 쓰고 10~20분 정도 있으면 빙글빙글 어지러웠다. 안경을 잘못 맞춘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안경 경험으로는 대선배인 어린 후배가 원래 새 안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 노안 안경을 착용한 지 이제 5개월, 이제 어느 정도 노안 안경에 적응을 했다. 노안을 인정하고 노안 안경을 받아들이니 세상이 참 편해졌다.


그런데...

얼마 전 스마트폰의 글씨 크기를 이전보다 2단계 더 크게 키웠다.

속상했지만, 그래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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