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좋은 일이다
언제 한 번 가족들끼리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아빠가 한 커플에 대한 에피소드를 얘기해 준 적이 있다.
우연히 창 밖을 봤는데 어느 노부부가 운동장을 산책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산책을 하는 그 모습이 좀 특이했는데, 남편과 부인은 앞뒤로 걷고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족히 3-4명은 더 들어갈 수 있는 간격이 신기할 만큼 일정하고 또 꾸준히 유지됐더랬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것은 자세히 보니 그 노부부의 모습이 낯이 많이 익었고, 더 자세히 보니 그 두 사람이 본인의 부모님이더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정체를 듣자마자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했던 한 커플의 산책 미스터리는 단박에 해소되었다. 군인 출신에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할아버지와 그런 남편과 80 평생을 보낸 할머니라면 충분히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지난 몇 년 동안 할머니께서 많이 아프셨는데, 할아버지는 늘 그래 왔듯이 묵묵히, 그리고 담담히 할머니 곁을 지켰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시간이 조금 지나 온 가족이 모여 점심 식사를 함께한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따사로운 게 참 좋아서 할아버지와 벤치에 잠시 앉았다 가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할아버지에게 반말을 해대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이런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가진 사람답게 평상시에도 할아버지에게 찰싹 달라붙어 치대는 것을 잘했지만, 그 날은 특히나 더 찰싹 붙어 조잘거렸다.
이런저런 얘기를 조발조발하다가 “할아버지, 오늘 날씨도 너무 좋고 밥도 진짜 맛있었다. 그치?”라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응. 앞으로는 좋은 거 더 많이 보고 들어야겠어”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동안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할아버지가 더 많이 힘드셨나 보다. 그래, 할아버지도 이제 할아버지를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좋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할아버지의 말은 나의 뒤통수를 아주 세게 쳤다.
좋은 거 더 많이 보고 들으려고
그래야 가서 좋은 얘기 많이 해주지
예전에 TV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 슬픈 일이 생겼을 때 걱정과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정말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는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조금 더 나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걱정과 위로를 보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나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따라서 누군가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마음을 다해 함께 기뻐해 준다면 그 사람은 나를 정말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슬픔을 함께하는 것보다 기쁨을 함께하는 것이 훨씬 더 순수한 애정과 진심을 요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들을 때 할머니를 떠올렸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곳에 갈 때 생각나는 사람.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은 사람. 그에게 그녀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
그리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걸 나눈다는 것은
참으로 따뜻하고,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