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 인내하고, 얼마만큼 표현해야 하는 걸까
최근에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많이 참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힘들면 얘기하세요."
솔직히 내가 봐도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참는 편인 것 같기는 하다.
불만이 생기고 불편한 부분이 생겨도 일단 몇 번은 참아본다.
그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얘기를 한다.
평소에도 내성적인 편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말이 많은 것보다는 말이 적은 게 낫다는 걸 느끼면서
안 그래도 많지 않았던 말 수가 더욱 줄어들게 된 것도 나를 '많이 참는 사람'으로 보이게끔 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많이 참고 말 수가 적다는 것은 굳이 불필요한 말을 꺼내어 실수를 범하는 확률을 줄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의사 표현력이 감소한다는 것, 심해지면 내면에 응어리가 생긴다는 단점이 있다.
이렇게 오랜 기간을 지내다 보니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참아야 하고, 어떤 경우에 참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동안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인내하고, 그러다가 말을 해야겠다 싶은 상황이 오면 얘기하고...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내 삶의 기준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특히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 오면 이걸 참아야 하는 건지, 이야기해야 하는 건지 더욱 혼란스럽다.
굳이 여기서 문제를 걸고넘어질 상황이 아닌데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하자는 마음이 생긴다.
신중해지고, 조심스러워지고, 눈치를 보게 된다.
이 의문을 해소해 줄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을 것 같다.
누군가는 일단 세 번은 참는 나를 보고 답답하다고, 그걸 왜 참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섣불리 나서지 않는 내가 현명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해답은 '나'이지 않을까.
내가 참을 만하다면 참는 것이고, 참지 못할 것 같다면 참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남들에겐 아무런 타격이 없는 것이어도, 나에게는 천불이 날 만한 상황일 수도 있고
나는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에겐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비수에 꽂히는 말일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도 매 순간마다 얼마만큼 인내하고 얼마만큼 표현해야 하는지 판단이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 순간에 왜 더 말하지 못했나, 혹은 그 순간에 굳이 말하지 말 걸 그랬나,
후회를 할 순간들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 순간순간마다 일단 '나'에게 집중해보려고 한다.
지금 내가 어떤 느낌이 들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그에 맞춰 대응하다 보면 점점 더 나만의 중심이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