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정의는 많다. 걷기에 대한 대부분의 글이 걷기 운동의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얘기한다. 걷기의 장점은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걷기를 생리학적으로 뜯어보면 새로운 각도에서 걷기가 보인다.
내가 걷기를 하다 직접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기도 한데,
걷기는 인간 신체의 원형을 회복하는 성스러운 운동이다. - 나한영
이처럼 가슴 뛰는 논제가 어디 있을까.
원형이란 천부적 형태를 말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의 원래의 인간의 몸이다. 인간이 직립보행족으로 진화를 거듭한 결과로써 최종 완성된 이상적인 몸이다.
이상적 몸의 형태란 어떤 것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의 이상적 몸을 비투루비안맨(인체비례도)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했다. 비투루비안맨은 단순히 인체 미학적 차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해부학을 연구했던 다빈치가 직접 인간 신체의 수치를 측정한 값을 적용한 과학적 작업이었다. 인간의 몸이 가진 비율과 원칙들이 강렬한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이 세계 대우주의 원리가 적용돼 있기 때문이라는 신념체계의 입증이기도 했다.
인간의 신체는 이 세계와 유사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세계를 담은 소주우로서 존엄성과 가치를 가진 인간 신체의 원형 회복의 이상을 다빈치의 비투루비안맨은 제시해 주고 있다.
직립보행에 최적화된 원형의 몸
이 같은 인간의 이상적 몸의 형태는 기능면에서도 완벽한 효율성을 갖는다.
직립보행은 에너지소비를 최소화해 4족 동물들과 달리 인간을 멀리, 오래 걸을 수 있도록 최적화시켰다. 걸을 때 인간의 두 다리가 교차하는 중간디딤기와 다리가 벌려지는 두다리지지기에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가 교차 이동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 마치 하이브리드카가 오르막이나 가속 시 엔진을 구동하고 내리막이나 저속 시 배터리를 충전하는 식이다.
한 연구 결과 많이 걸을수록 에너지소비는 더 줄어들었다. 일주일에 9시간을 걷는 사람이 걸으며 사용한 에너지는 일주일 총 에너지 소비량의 20%밖에 안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일주일에 21시간을 걷는 사람이 사용한 에너지 총량은 27%에 불과했다. 걷는 양의 차이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은 비례하여 늘지 않았다. 인간은 걸을수록 에너지를 최효율로 쓸 수 있게 진화한 것이다.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근골격과 내장, 신경, 뇌 등 모든 신체기관들도 직립보행과 연관되어 자리 잡았고 이상적 몸 상태에서 최적의 쓰임새를 담보한다.
예를 들자면, 인간의 몸을 지탱하는 척추뼈의 무게는 고작 2kg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근육과 유기적으로 역할분담을 하는 최효율로 자리 잡았다.
척추의 맨 위에 아틀라스로 불리는 경추 1번은 척추의 경추 뼈 중 가장 작은 면적 위에 무게가 5kg이나 되는 두개골을 얹을 수 있다. 다른 동물들처럼 척추가 뒤에서 두개골과 연결된다면 무게를 버틸 수 없겠지만 아래쪽 중앙에서 연결돼 최효율로 중심을 잡도록 설계됐고, 덕분에 두개골의 뒤통수가 커지고 앞면이 수직 형태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인류 문명을 만든 주역인 뇌의 크기도 같이 커질 수 있었다.
다리와 엉덩이 뼈 사이의 연결이 길어 걷고 뛰는 스트레스를 강하게 견디고, 침팬지 같은 영장류와 달리 강한 무릎 관절은 장거리를 걷는 동안 한 번에 한쪽 다리로 체중을 지탱하게 해 준다. 넓은 엉덩이뼈와 긴 다리는 더 길게 더 오래 걷게 만들어 주고, 몸 전체 근육의 70%가 모여 있는 하체와 강한 다리, 항중력근의 단단한 결합은 직립보행에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준다.
걸으며 동시에 손을 써 도구를 활용할 수 있고, 주변의 세미한 것까지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우리의 5감이 작동해 뇌를 자극하고 강화시키며 숱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한다.
인류세가 낳은 새 인간종의 출현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서 이상적 인간 신체의 원형을 점점 찾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이러다간 이상적 몸이 어떤 것이었는지 모를 만큼 아예 원형을 완전히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생긴다.
종군기자 출신의 크리스토퍼 맥두걸이 쓴 '본투런'은 원래의 인간 신체 기능의 위대함을 유감없이 증명해 보인다.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원시의 사냥 방법과 생존 습관을 가장 최근까지 유지한 타라오마라족처럼 하루 100~200km를 거뜬히 달리거나 걸을 수 있는 인간 신체를 지금 문명국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오늘날의 문명이 만든 환경과 그 환경 속에 자리 잡게 된 인간의 생활습관이 천부적인 원래의 몸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지금은 가공식품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하루라도 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사는 날을 꼽기가 쉽지 않다. 집 밖에 나서면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 천지이다. 술이나 담배의 유혹은 또 얼마나 많은가. 술을 먹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거나 흥이 나지 않는, 스트레스만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를 덜 움직이게 하는 장치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이동 수단을 비롯해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무빙워크 등 실내외에 널려 있는 자동 이동 장치들은 편한 것, 몸을 덜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암시를 끊임없이 건네고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직접 했고, 그 결과로써 의사로부터 고혈압이라는 판정을 받았던 사람이다. 자동차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할 때 하루 100m도 걷지 않고 생활했었다.
집에서, 직장에서,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할 때까지 우리는 하루를 거의 앉아서 산다. 2020년 보건복지부 국민건강통계 자료에 의하면, 19세 이상 한국인이 하루 평균 앉아서 보내는 시간은 8.6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잠자는 시간을 감안하면 하루의 70%를 움직이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셈이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수록 치매, 허리 디스크, 비만, 자살 충동까지 신체와 정신에 절대적으로 유해하다는 것이 많은 연구 결과로 입증되고 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많은가. 삶의 환경이 전도체를 항시 긴장 상태로 만들고 전전두피질이 제기능을 못해 스트레스가 몸에 적신호를 보내도 어찌할 바 모르고 분노와 화를 자초하는 위험인자를 안고 살고 있다.
내가 선택할 수조차 없는 몸에 유해한 환경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매일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환경호르몬을 먹고 마시며 살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몸이 정상적일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몸을 망치는 환경 속에 살고 있음에도 운동마저 못하거나 안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많은 현대인이 원래의 몸을 잃은 지 오래다. 운동량에 비해 먹는 양이 많은 데다 좋지 않은 음식까지 지속적으로 섭취하다 보니 대부분 망가진 몸이 되었다. 숨 쉬기가 힘들고, 항상 피로하고, 체력과 면역력이 약화되고, 배와 위는 커지고, 목과 등은 굽고, 근육은 쪼그라들고, 직립보행이 인간 생존의 원리임에도 조금만 걸어도 몸의 사방군데가 삐걱대는, 걷지 못하는 기형 인간이 되었다. 기형이 뭐 유별난 게 아니라 원형이 아닌 몸이 바로 기형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인류세'의 현격한 변화와 괘를 같이 하는 새로운 인간종의 출현일지 모른다.
원형의 몸 회복을 위한 걷기 메커니즘
그렇다면 우리 삶과 생활 속에서 추구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원형의 몸, 천부적 형태의 몸을 찾는 것이다.
걷기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걷기가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생리학과 걷기 교정학의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