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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피쉬 Nov 07. 2024

처음 페루커피

물을 붓다

읍내에 갔다가, 골목에 줄지은 통창 너머로

생원두를 고르고 있는 카페 사장님을 보았어요.

전에 눈여겨본 적 없는

아주 작은 크기의 로스팅카페였죠.

흠, 스페셜티 한잔 마셔보자 하고 들어갔어요.

나는 낯선 페루 원두를 골랐어요.

사장님이 커피를 내리더니  제게

원액 맛보실래요?

한 모금의 커피를 내밀었어요.

맛을 보았죠. 처음 만나는 페루 커피.

그 한 모금의 페루는

내 입안에서 이리저리 날뛰었어요.

이국을 떠오르게 하는 열매의 신맛

날카롭게  솟구치는 쓴맛

아침 이슬에 젖은 낙엽향이 베이스 악기처럼

깔려있었죠. 

그런데요.

내가 돈을 지불하고 들고 나온 빨간 종이컵 속의

커피는요.



순해빠진 갈색물이 들어있는 거예요.

이렇게 단맛이 강했었나?

아, 그 원액을 맛보지 않았다면

나는 페루를

그저 다정한 커피로 기억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발란스 좋은 신맛과 고소한 단맛의 풍미가 부드럽게 밀려들어오는 커피라고.


사장님이 아까 그 원액 물을 넣으신 거겠죠.

물.

물을 가득 부어주면 그 거친 녀석들이

이렇게 순해지나 봐요.

물, 물이 뭐지요?

물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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