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삶
40년이 넘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어릴 적 성장과정을 제외하고는 성인으로 그리고 사회인으로 일하면서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장애인과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삶을 돌보고 인권 회복을 위해서 일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서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살고 있다. 나를 위해서 요리와 청소를 하고 글을 쓰고, 책도 읽으며 명상도 하고...
이제는 나를 돌보는 일이 우선이 되어버렸다. 나이 덕에 사회적 약자로 소위 말하는 코로나 고위험군에 속하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는 나 자신을 챙기는 일이 먼저가 되었다. 그동안은 일에 빠져 나를 돌보는 일은 등한시했다. 스스로 식사를 챙기고 요리에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투자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가능하면 빨리 해치워 버려야 하는 임무 내지는 하기 싫은 숙제쯤으로만 여겼다.
이제는 그게 아니다. 먹는다는 것도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며 스스로 요리해서 맛을 만들고 느끼는 것도 신성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가 시간을 투자해서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나는 다른 더 중요한 일,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요리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순간을 이제는 감사히 여긴다. 그러면서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사드리며 먹는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음식을 먹는 일도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일이며, 내 건강을 잘 지키는 것이 나만을 위한 일이기보다는 모두를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존재의 질에 따라서 모두에게 위안이 되고 용기와 힘을 주는 축복의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길이 모두를 위한 길이며 나의 모든 행위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살맛을 전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에게 의존하고 보호를 바라는 존재이기보다는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길을 제시하는 나이 든 어른으로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자연스럽게 나와 남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매 순간순간 하나인 생명의 흐름만이 남게 된다. 너와 내가 다르며 분리되었다고 착각할 때 분열과 갈등이 생기며 이기적인 착취와 이해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죽고 죽이는 전쟁도 불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생명나무의 다양한 가지들로 같은 뿌리를 가진 다른 생명현상이다, 꽃과 나무와 나비처럼. 이러한 자각을 통해서 나와 함께 모두를 위한 삶을 모색해 나가게 된다. 동일한 생명현상이라는 커다란 하나 됨 속에서 모두가 한 데 얽힌 생명의 그물망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너를 대하는 태도와 내가 살아가는 의미도 달라진다.
우리는 경쟁과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채워주는 감사와 축복의 대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제로섬 게임의 대상자로 만든 잘못된 교육체제와 근시안적인 시각들이 서로를 질시하게 만드는 잘못을 범해왔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가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우리가 겪고 있는 역병이 전해준 뼈아픈 교훈이다.
내 가족만이 아니라 지구촌 모두가 거대한 가족이라는 자각 속에서 생명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믿고 맡길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거대한 생명의 흐름이라는 자각만이 분열에서 벗어나게 하며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함께 평화와 살아있음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만든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면 어느 하나도 귀하지 낳은 것이 없고 어느 하나 소월 해도 되는 것이 없다. 생명의 그물망과 먹이사슬로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의 교만과 이기적 태도에서 벗어나서 본래적 위치로 돌아가서 모두를 돌보고 함께 살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결과는 뻔히 다 보인다. 그러니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개인적 선택이 전체의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