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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l 04. 2022

<헤어질 결심>은 ing. 우리의 사랑은 미결

영화 <헤어질 결심>

아끼는 공간 브런치를 너무 방치해 두었더군요. 이 무더운 여름. 브런치를 사랑하는 분들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일상을 정신없이 살다 보니, 그리고, 아무래도 돈 버는 일로 글을 쓰는 게 우선이다 보니, 저의 작품을 하나하나 쌓고 있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하지만, 브런치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일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글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게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어찌 됐든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게 된 것은, 보신 분들도 계시고, 아닌 분들도 계시겠지만, 보게 된다면 그 매혹적이면서도 품격 있는 분위기에 압도당할 것이 분명한 영화!! 박찬욱 감독님이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그 작품!! 바로 <헤어질 결심>을 봤기 때문인데요, 영화 보고 나니, 그 이야기를 적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이동진 평론가님도 오랜만에 별 다섯 개 주셨던데, 그만큼 <헤어질 결심>은 완성도도 굉장히 좋지만, 자꾸 곱씹게 되고 생각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섬세하면서도 우아하고,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있고, 여운도 굉장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헤어질 결심>에 대해 제가 든 생각과 몇가지 의문, 또 박찬욱 감독님께서 GV를 통해 밝혀주신 다양한 이야기에 대한 것들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스포일러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얘기를 하기가 어려워서, 저의 글 속에 스포일러가 있다는 점을 밝혀드릴게요!!


영화는 박해일 씨가 연기하는 형사 '해준'의 대사로 시작합니다. '요즘 살인사건이 뜸하네,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라며, 본인만의 가설 같은 걸 세우는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영화 공부할 때 교수님께서 강의해 주신 박찬욱 감독님 감독론을 정말 재밌게 들었는데요, 박찬욱 감독님은 대사 하나, 소품 하나, 시점 샷 하나에도 모두 의미가 담겨 있게 만드시잖아요. 이번에 GV를 들어봐도 역시 세심한 설정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시작하는 작은 대사 한마디에도 인물의 성격이 담겨 있음은 당연합니다. '해준'은 최연소로 경감이 되었으며, 자신의 직업 '형사'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능력 있는 형사는 보통 어떻죠? 사건의 전후좌우를 살피며 내세우는 가설이 정확하잖아요. 촉이 좋기도 하고요. 아마도 해준은 사건을 대할 때 가설을 잘 세우고 그걸 풀어가는 능력이 뛰어났기에, 최연소 경감에도 올랐으며 그 실력도 인정받았을 겁니다. 어쩌면 가설이 습관이랄까요? 왜냐면 박찬욱 감독님의 GV를 들어보니, 이 영화의 2부가 시작할 때 편집 과정에서 삭제를 한 씬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장면은 바로 1부에서 사건을 겪었던 해준이 아내가 근무하는 굉장히 조용한 도시 이포라는 곳으로 이사 온 뒤, 바다에서 낚시를 하며 아들과 통화를 하는데 '이곳은 살인사건이 없네. 원전이라는 더 무서운 게 있어서 그런가'라는 식으로 자신만의 가설을 이야기하는 모습이라는데요, 시간상 편집에서 자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보더라도 해준은 모든 일상을 사건화 시켜서 바라볼 정도로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고, 빨리 살인 사건이 벌어져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일을 좋아하고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사람이죠.


그런데 사실 이런 사람일수록  속이 허하고, 마음이 헛헛하고, 외롭기도 하고, 그런  아시죠? 해준은 불면증을 앓고 있습니다. 잠을   자는 사람이죠. 물론 수많은 사건이 머릿속에 있고,  사건의 사진들을 벽에 붙여놓을 정도로 고민하는 사람이니 잠이 쉽게  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고경표 씨가 연기하는 후배 형사가 해준에게 '잠복수사를 하느라 잠을  잔다'라고 하니까, 해준은 '잠이 오지 않아서 잠복수사를 한다' 이야기를 하잖아요.  대사를 들으니, 불면증은 일과 약간 별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잠을  자는  아니라 잠이 오지 않아서 일에  몰두한다는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일과 상관없이 잠은 그냥  자는 중이고, 잠이  오는 김에 일을 한다는 거죠.

잠은 오히려 사랑과 연관 되었다는 사실이  중반에 밝혀집니다. 탕웨이가 연기하는 '서래' '해준' 재워주는 장면이 등장하죠. 그리고,  후반쯤에도 해준은 서래와 수갑을 차고 가면서 잠이 듭니다. 그러니 잠의 부족함은, 사랑의 갈구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똑소리 나는 아내, 이과라서 모든 사항을 논리적으로 따지고, 마치 원전을 관리하듯 꼼꼼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아내가 있지만, 해준은 그것보다 숨을 교감하는 사랑이 필요했던 남자입니다.


그랬던 그에게 한 사건을 통해 '서래'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건 저만 느꼈는지, 아니면 원래 영화 의도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해준은 서래에게 첫눈에 반한 듯하던데요. 저만 그렇게 느꼈나요? 산에서 추락한 '기도수'란 남자의 잠금화면은 기도수와 서래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는데, 해준과 후배 형사는 사진만 보고 서래가 기도수의 딸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에 온 서래는 '기도수 씨 아내 송서래입니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 순간 영화는 시신이 있는 곳에 들어오는 서래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서래를 바라보는 해준의 얼굴만 보여줍니다. 약간 놀라는 눈? 박해일 배우의 디테일한 연기가 빛나는데요, 서래가 그곳에 들어오는 일보다 해준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사실이 중요하기에, 영화가 보여주는 건 해준의 얼굴 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해준'은 기도수의 살해 용의자로 아내인 '서래'를 심문하는데, 심문이 마치 연애 같고, 잠복하는 김에 궁금한 그녀의 모든 걸 바라보고, 살피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해준이 차 안에서 잠들잖아요. 불면증 남자가 잠복 수사하다가 잠이 들다니요. 심지어 해준은 그 잠에 대해 오랜만에 잘잤다고 얘기하죠. 잠이 오듯 사랑이 온 거라고 할까요

 

해준이 잠든 차창을 두드리며 '굿모닝' 하는 탕웨이의 모습이 너무 귀엽던데요. 그런데 저는 또 궁금한 게 서래는 언제부터 해준을 사랑하게 된 걸까요? 기도수를 죽인 건 학대받고 집착당하니,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서까지 조작하며 철저하게 계획하여 죽였다고 이해가 되는데, 그렇게 자신이 용의자가 되어 만난 해준을 사랑하기 시작한 건 언제인지? 그녀 역시 따뜻한 사랑이 그리웠던 여자인 만큼, 품위 있는 형사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아님 취조한다는 명목 하에 같이 고급 초밥 도시락 시켜 먹을 때부터? 아니면, 혹시 남편을 죽인 것 자체가 해준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이포에서 두 번째 남편을 철성이 죽이도록 만든 건, 진짜 오로지 해준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잖아요. 그렇다면 첫 번째 남편 살해는 해준과 연관이 없을까?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서래가 해준을 예전부터 알았다는 건데 그게 언제인지가 없어서, 저의 이런 가설은^^ 맞진 않는 거 같아요. 해준이 서래를 처음 봤을 때, 서래도 해준을 처음 보며 사랑에 빠짐이 맞는 듯합니다.

중국에서 밀입국한 여성이 살아 남기 위해 60살이 넘는 남자와 결혼하여 간병인 일을 하며 지내는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힘들었을까요. 엄마의 유골, 외할아버지의 유골을 거실 탁자에 올려놓고, 하루에도 몇십 번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거 같아요. 게다가 외할아버지의 산을 찾으라는 엄마의 유언과 같은 이야기를 이루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그 산을 나라에서 가져가 버렸죠. 밥을 먹지 않는 모습은 죽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밥을 먹도록 만든 사람이 바로 해준이에요.


서래는 해준처럼 품위 있는 남자를 태어나 처음 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이미 잠복수사를 당하는 극 초반에 서래는 해준을 좋아하고 있었죠. 죽은 까마귀와 길고양이에게 얘기하길 그 형사의 심장을 가져와 달라고... 그런데 그건 통역 어플의 너무 직관적인 해석이었죠. heart는 심장이 아니라 마음이었어요.  

서래는 여러모로 보통 여자가 아니죠. 알고 보면 무서운 여자고, 자신의 엄마를 죽였고, 극 후반부에 가면 철성이란 남자의 엄마도 죽이는데, 물론 그 엄마들은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기에 잘 떠나도록 도와줬다는 설명이 덧붙여지지만, 그래도 살인은 맞잖아요.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가득한 그녀가 해준을 만나 밥을 먹고 웃게 되었으니, 그 자체가 바로 황홀한 사랑입니다.


그렇게 해준과 서래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었고, 공통점이 많은 같은 종족이에요 (박찬욱 감독님이 GV에서 이렇게 표현하시더군요). 집착이나 관리를 받는 게 아니라 따뜻한 사랑을 받고 싶었고, 사랑을 해주고 싶었고, 둘 다 말 보다는 사진을 보는 게 좋고, 둘 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 극 중에 공자의 智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서래가 자신은 인자하지 못해서 산을 안 좋아한다고... 이 대사에도 여러가지가 담긴 느낌이었어요. 자신 안의 꿈틀대는 뒤틀림을 표현하는 대사랄까


아무튼 극 중반에 무혐의처럼 보였던 서래가 범인임이 드러나는 휴대폰 증거가 발견되고, 해준은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했던 형사인만큼 자신이 사랑 때문에 일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어 '붕괴'되었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고 서래에게 그 증거 휴대폰을 바다에 던져버리라고 하죠. 그런데 극 후반에 이 이야기가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이 부각되고 강조되며 더 짠하고 마음을 울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박찬욱 감독님도 강조하셨지만, 이 영화는 이전의 박찬욱 감독님 작품들과는 달리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없습니다. 대신에 숨소리 하나, 눈빛 하나, 에둘러 표현하는 말 하나가 모두 더욱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만약 이 영화를 단순하게 말로 표현하자면 '중국에서 밀입국한 여자가 엄마도 죽였고 남편도 죽였고, 살인자인데, 유부남 형사 사랑해서 어쩌고...' 이렇게 수준 낮게 여겨질 수도 있을 이야기를, 영화는 굉장히 품격 있고 우아하고 매혹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니 칸영화제 감독상 받고도 남으시죠. 그 기품 있는 영화적인 표현법 중 하나가 바로 '휴대폰을 버리라는 말이 곧 사랑한다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후반에 흥미롭게도 서래가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다'라고 얘기했을 때 해준은 자신이 언제 사랑한다고 했는지 기억을 못 해요. 사랑한다고 한 적은 없거든요. 유부남이고 일에 철저한 형사가 용의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리가 없죠. 그런데 증거가 된 휴대폰을 바다에 던져버리라는 그 자체가 바로 사랑한다는 말이었다는 겁니다. 너무 기품 있는 표현 아닌가요?


박찬욱 감독님은 이 영화를 어른들의 사랑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어릴 땐 막 사랑한다고 꼭 말로 해야 하고 뭔가 또렷하게 얘길 해야 하고, 그게 맞다고 여겼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보다 서로의 숨소리, 눈빛의 오고 감, 감정의 교환. 이런 요소들이 중요한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 극 중에서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은 '사랑해'라는 말을 잘해요. 하지만 서래는 해준의 행동과 비교하며 그게 무슨 사랑이냐고 혼잣말을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만 반지르르하게 하는 일은 소용이 없음을 전해주는 장면이죠. 사랑한다고 정확하게 말은 못 하지만 여러 가지 말과 행동 속에 담겨있는 사랑! 그것의 교환! 마치 유럽 영화처럼 낭만적인 느낌으로다가 사랑을 한다고 할까요?

2부에서 서래와 해준이 각자의 배우자와 있을 때 수산시장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났는데 대화를 하기보다 응? 응? 이러면서 서로를 인지하고 눈빛을 마주칩니다.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 세심한 장면이 재밌기도 하고, 귀여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결말은 생각보다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이동진 선생님 얘기를 찾아들어보니, 서래는 그 선택을 하여 사랑을 '미결'로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저도 공감했습니다.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나야 다시 만날 수 있는 해준과 계속 사랑을 하는 방법은 자신이 잡혀도 안 되고, 자신이 무혐의로 풀려나도 안 되고, '미결'인 상태로 계속 쭉 이어져야 하잖아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누구는 서래가 죽지 않고 어디 돌 뒤에 숨어있을 거다, 헤엄쳐서 바다에 둥둥 떠 있을 거다 그런 얘기들을 하던데, 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죠. 중요한 건 사랑은 여전히 ing라는 그 자체입니다.

'헤어질 결심'을 할 땐 헤어진 상황에서 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상황의 연장선 상에 있죠. 그러니, 결심을 한 그 상황은 '사랑'입니다. 이처럼 한번 꼬아서 에둘러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매력이 너무나 좋았어요.


그리고, 박찬욱 감독님은 오로지 탕웨이와 함께 일을 하기 위해, 중국인 여성이라는 설정을 영화 속에 넣으셨다는데, 그 얘기는 <헤어질 결심>이 완전한 창작물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전에 <올드보이>도 만화 원작이 있었고, <박쥐>도 많은 분들 아시는 것처럼 소설 '테레즈 라캥'을 차용한 부분이 있고, <아가씨>도 소설 원작이 있었죠. 하지만, <헤어질 결심>은 탕웨이를 여주인공으로 하기 위해 다 새롭게 설정하고 창작한 영화입니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서래가 간병하는 할머니들에게 읽어준다는 '산해경'은 외할아버지의 경험담을 서래가 자신의 버전으로 만들어서, 도배하다 남은 벽지로 노트를 쌌다는 그런 디테일한 설정만 봐도, '서래'라는 한 인물이 마치 현실에 살아 숨 쉬듯이 창조되었죠. 놀랍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모여서 만든 자랑스러운 한국영화 <헤어질 결심>

자꾸 또 얘기하고 싶어 지는데요, 오래 지나도 이 영화의 분위기와 풍미가 많은 이들 속에서 지속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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