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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로 걷는 게 이렇게 무섭다니

by 김민정 Oct 19. 2024

다친 발을 절대로 땅에 디디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지켰습니다. 그래선지 다친 부위에 불편감이 없어졌고, 잠시 회의를 하러 나갔다 올 수도 있을 듯했어요. 하지만 엄마가 아직 너무 위험하다며 같이 가주겠다고 해서 (엄마 짱!), 워커 밀며 깽깽이로 엄마와 같이 택시 타고 회의를 위한 카페로 향했습니다.

잠시 희의 하는 동안, 엄마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저희 팀 사람들이 엄마를 너무 반겨주셔서 감사했어요. 어쨌든 무사히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긴 했지만, 이제는 다친 부위의 힘겨움보다 한발 생활이 엄마도 불편하게 만들고, 너무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골절은 버티기’라고 누가 그러기에, 다친 상황에 몰입되지 않도록 일에 집중하고, 책도 보고, 재밌는 유튜브, 영화 등등도 계속 봤더니 스트레스가 심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정신력이 살짝 흔들려 멘트 실수 한 적이 한번 있었는데, 엄청 자책한 다음, 정신 더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골절 3주가 되어 정형외과에 갔더니 선생님께서 이제는 조금씩 다친 발로 땅을 짚어보라고 하셨어요. 온전히 발의 힘으로 땅을 누르는 게 아니라 워커에 기대는 힘과 발이 땅을 딛는 힘을 분산시키라고 하셨는데요, 선생님께서 시범도 보여주셨지만, 이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려웠습니다. 자꾸 한 발로 뛰던 버릇이 나왔고, 발의 움직임이 계속 헷갈렸어요

선생님께서, ‘지금부터 연습을 해야 발목이 굳지 않는다’고 하셔서, 한 주간 도전 해봤지만 힘들기만 했습니다, 결국 그냥 원래대로 한발 생활을 하다가 골절 4주 차에 병원 갔더니 선생님께서 아직도 이렇게 다니면 어떡하냐고 하셨어요. 그러시면서 엑스레이를 보시더니 이젠 가벼운 반깁스로 바꿔도 되겠다며 교체를 해주셨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가벼운 반깁스를 했더니 진심으로 날아갈 듯했습니다. 그리고 ‘힘을 분산시키며 걷기’가 뭔지도 한층 가벼워진 다리 덕에 체감이 잘 되었어요. 그 순간 선생님께서 갑자기, 워커 없이 혼자 걸어가라고 시키셨거든요.

그런데… 워커 없이 한 발을 떼는 게 너무나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마치 허허벌판에 혼자 서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다리에 힘을 어떻게 줘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안되어요!”라며 소리 지르고 포기했어요.

제가 무서워하며 못하겠다고 하니까, 선생님께서 조심성 있는 건 좋은데 겁이 너무 많다고 하셨어요.


집에 와서 워커와 함께 걷기 연습을 하면서, 마치 아이가 첫걸음마를 떼듯 다시 걷기를 하는 이 상황이 갑자기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렵지만 한걸음을 옮기기!

내 몸이, 내 마음이 어딘가로 한걸음 가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함을 그간 잊고 지냈나 봅니다. 우리는 모두 용기를 냈던 사람들이잖아요. 용기를 냈기에 처음 걸었고, 지금의 일을 시작했고, 어딘가로 도전도 멈추지 않고 있으니, 그런 나를 충분히 칭찬해 줄 필요가 있는데, 매 순간 용기 내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칭찬을 보내는 일은 왜 그렇게 야박했는지 모르겠어요. 이번 골절생활을 통해, 용기 내왔고 용기 내는 중인 나를 다시 응원하게 됐습니다.


가벼운 깁스를 한 채 집 밖에서 걷기 연습을 좀 했더니 발목이 부어 얼음찜질을 했고, 또 괜찮아지면 핫팻을 하며, 그렇게 대견스럽게 한발 한발 떼면서 도전을 해왔습니다. 물론 아직 워커는 옆에 있지만요! 워커 없이 걷는 날엔 워커에게도 수고했다고 해주고 싶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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