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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 다니는 사람 아무도 없어

by 김민정 Oct 12. 2024

골절 2주를 넘어가니 다친 부위에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약도 열심히 먹고, 일할 때도 침대와 책상을 거의 붙여서 다리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그런 노력 덕분인지 병원에서 깁스 교체할 때 보니 다리가 그리 붓지 않았더라고요. 진짜 다행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한발 생활에 익숙해져서, 워커를 잡고 한 발만 땅에 디딘 채 의자에 앉고 일어서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른쪽 다리 진짜 심하게 튼튼해진 듯해요.

그러는 와중에 빌린 휠체어가 도착했습니다. 처음엔 동사무소에서 무료로 빌려준다고 해서 전화를 해봤는데, 여분이 없다더군요. 한 달 대여를 세 번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 반납 휠체어가 들어올지 기약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그냥 돈 주고 빌리는 곳을 알아봤습니다. 쿠팡에서 대여가 있기에 결제했더니 거기도 자꾸 발송 날짜가 늦어지며 계속 기다리기만 하는 상황이라, 취소하고 네이버의 대여상품을 결제하니까 그다음 날 도착했습니다. 휠체어 빌리는 과정도 이렇게 우여곡절이었어요

어쨌든 집에 온 휠체어를 타고 엄마 방 갔다 마루 갔다가 해보니, 바퀴 달린 책상의자로 움직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편했어요. 스르륵 움직이는 게 속이 다 시원한 느낌이었고, 휠체어에서 일어날 때 한 발만 땅에 딛고 일어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가볼까? 퐁당퐁당 휴일 있을 때 엄마와 백화점 가서 점심을 먹고 올까? 이런 마음이 들었는데…… 엄마와 동생이 백화점에 휠체어 밀고 다니는 사람 아무도 없다며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굳이 가려면 그냥 워커 밀고 가자고 하기에 그러자고 했고, 차에서 내려 워커 밀면서, 깽깽이로(힘든..) 광교에 있는 41층 별다방 가서 기분 전환을 하고 왔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전망 좋은 41층 스타벅스에 휠체어 탄 사람은 없었어요. 생각해 보니 평소 백화점에서 봤던 휠체어들은, 거동 불편한 어르신분들을 자녀들이 밀어주는 경우가 대부분 이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 휠체어 생활을 조금 해보면서, 그간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가톨릭신자인만큼 약자를 생각하며 살자고 말로만, 글로만 표현했지, 진짜 내 생활에서 실천한 건 거의 없었던 거죠.

걷기 운동이 좋으니까 이 계절에 걷기 많이 하라고 멘트를 쓰는 게 틀리진 않았고 보편적일 수 있지만, 걸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앞으로 평생 잊지 않을 것이며, 모든 부분을 한 번 더 생각하고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 했습니다.


다리를 다쳐서 미사를 못 가니 주일에 혼자 독서 복음을 읽으며 기도 했고, 주일 헌금은 가톨릭 기관에 송금했습니다. 다친 첫 주는 당고개 성지, 둘째 주는 이주사목위원회, 셋째 주는 좀 고민하다가 성모장애복지관이란 곳에 보냈습니다. 장애인 친구들을 위한 곳인 듯했어요


다치도 낫고 치유하며, 서로사랑하는 마음도 조금 더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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