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알게 되는 진실

거룩한무덤성당

by 김민정

겟세마니 대성당 방문의 여운을 안고,

예수님께서 결국 돌아가시어 묻히셨던 곳, 거룩한 무덤 성당으로 이동했다.

거룩한 무덤 성당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이 곳은 예수님께서 묻히신 곳이지만, 예수님 부활 이후 예루살렘을 정복한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깎여지고 메꾸어져서, 로마 신전과 함께 주피터, 비너스 상이 세워지고 말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는 324년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왔고, 주피터와 비너스 신전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골고타와 예수님의 무덤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서, 황제에게 복구의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 후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신전은 헐리고, 예수님의 무덤을 발굴하여 기념 성전이 세워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파손되었다 복구되기를 반복했고, 각 종교들은 이 곳의 소유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툼을 벌여왔다. 예수님이 바라시는 건 그게 아니었을 텐데, 자리다툼은 의미가 없는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인데, 더 넓게 보지 못하는 부족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예수탄생성당과 마찬가지로, 이 곳 역시, 그리스도인들에겐 너무나도 중요한 장소이기에, 그 누구도 양보할 수 없다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떠나시기 전 교회 공동체가 일치하기를 바라며 기도하셨던 그 절절함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어찌 됐든 이곳은 1959년 로마 가톨릭, 정교회, 아르메니아가 합의해서 재건 보수가 시작되었고, 현재 이곳의 소유권은, 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인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이렇게 6곳이 공동으로 갖고 있다

그래서 뭐 하나 결정해서 움직이는 게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가톨릭은 대문을 담당하고, 창문은 시리아 정교회가, 창문 난간은 그리스 정교회가, 이런 식으로 나뉘서 관리하는데, 그러다 보니, 창문이 낡아서 고치는 것도, 화장실 보수도, 모두의 의견이 모아져야 비로소 진행되는 것이다.


이 곳은 예수님이 묻히신 곳이면서, 또한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에 빈 무덤이 된 곳, 즉 부활의 증거 장소이기도 하다.


묻히시다 (요한 19,38-42)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그날은 유다인들의 준비일이었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


부활하시다 (마르 16,1-8)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젊은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매년 수백명이 찾는다는 이 곳,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심지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내 몸이 기둥으로 밀리고, 찌그러지고, 출퇴근 시간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느낌을 그대로 겪었다.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섰는데, 너무나 지치고 힘든 순간이었다.

예수님 묻히셨던 곳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줄 서는 동안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짜증이 올라왔는데, 그런 난관을 헤치고, 예수님 묻히셨던 돌무덤 앞에 무릎 꿇어 경배하니, 괜히, 울컥하고, 짜증 냈던 마음이 반성되고 그랬었다. (내부는 촬영이 안되어요)

예수님 돌무덤 입구

돌아가셔 묻히셨던 그곳이 비어있게 되며, 부활의 증거가 되었던 아이러니.

돌아가시는 순간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 어떤 것보다 영광스러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는 걸 깨닫는 건, 시간이 흐른 후, 나중이었다.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예수님 제자들 조차, 예수님의 고통, 수난, 죽음은 그걸로 실패라 느꼈고, 두려웠다. 그래서, 제자들은 모두 도망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삶의 여러 가지 일들을 표면적으로만 볼 때가 너무나 많다. 지금 힘들고, 쓰러졌고, 외면받았으니, 그건 승패에서 진 것이고, 당장 선택받은 것만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오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셨다.

고통스러운 죽음 이후에 부활이 올 수 있으니, 지금 고통스럽다고 패자의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

이걸 잊지 말아야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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