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 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십자가의 길

by 김민정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게 되었다.

숙소인 <단 예루살렘 호텔>에서,

십자가의 길 지점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혹은 비아크루시스(Via crucis)]까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찾아갔다.

‘슬픔의 길’ 혹은 ‘고난의 길’로 불리기도 하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본시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법정에서부터 골고타 언덕에 이르는 수난의 길을 말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예수님이 직접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셨던 그 길을, 14개의 묵상, 14처로 나누어 기도하며 걸어간다. 보통 이 기도는, 부활절 전의 40일, 사순시기 금요일마다 하도록 권유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성당에는 십자가의 길 14개의 그림이 벽에 그려져 있거나, 마당에 놓여 있다.

매번 동네 성당에서만 하던 십자가의 길 기도를, 예수님께서 직접 걸으셨던 그 길에서 하게 되다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리면서도, 영광스럽고, 소중한 순간이었다.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은, 본시오 빌라도 재판이 이루어진 곳에서부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언덕을 향해 걸었던 약 800m의 길과,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담긴 역사의 현장이다.

이 길은 14세기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비로소 정해졌으며, 오늘날 모든 순례자들이 기도하는 14처의 지점은, 18세기에 확정되었다. 그리고, 사순시기와 상관없이, 이 곳에선 매주 금요일 순례자들과 함께 십자가 수난을 기리는 의식이 거행되고 있다.

십자가를 지고 이 골목을 걸으셨던 예수님.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 뜻에 따라, 고통, 수난, 죽음, 그 길을 가야만 영광스러운 부활을 맞이할 수 있기에,

도저히 인간적인 차원에선 이해할 수 없는 그 일을 묵묵히 받아들이셨던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그 마음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느껴보고자 한 지점 한 지점마다, 마음 다해 기도했던 시간.

╋ 주 예수님,
◎ 저희를 위하여 온갖 수난을 겪으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이다.
저희에게 죄를 뉘우치고
주님의 수난을 함께 나눌 마음을 주시어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며
성직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죄인이 회개하도록 은혜를 내려주소서.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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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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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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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그리고,10처부터 14처까지는 예수님께서 처형되신 곳, 골고타 언덕 위

거룩한 무덤 성당(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안에 있었다.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이 못 박히셨다는 바로 그 자리.

십자가 아래에 깊은 구멍이 있는데, 그곳에 예수님의 성혈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곳에 손을 넣어 눈을 감고 기도.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걸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시신을 놓고 염을 했다는 돌이 놓여있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곳에 손을 대고 경배하며 눈물을 흘렸다.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무덤 입구

그리고, 예수님 묻히셨다는 무덤 앞에서, 그곳을 찾은 각국의 순례자들과 함께 미사 봉헌

영광스러운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먼저 있어야 하는 건 죽음이다. 죽음이 있어야 부활도 있는 것.

왜 그냥 영광스러운 일만 생기면 안 되는 건지, 꼭 그 앞에 죽음이라는 고통스럽고 아픈 순간이 있어야 하는 건지, 받아들이기 싫을 때가 많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새롭게 거듭나려면, 한 단계 성장하려면,

한번 죽었다 살아나는 듯한 고통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스라엘 다녀와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찾아왔을 때,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으니,

기도하며, 그 뜻을 찾아가며, 그렇게 걷다 보면,

하느님의 뜻과 나의 뜻이 만나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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