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둘째를 낳는건가요
둘째는 진짜 귀엽다 귀엽다 하지만, 귀여운거 보자고 애를 계속 낳으면 끝도 없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 말을 그리 믿지는 않았다. 당연히 둘 중 어린 아이가 더 귀여울테고, 그러니까 둘째가 첫째보다 항상 귀여울 수 밖에 없는것 아닌가.
둘째를 낳아놓고 보니 어려서 귀여운 건 알겠지만 내 눈에는 첫사랑이 각인되듯이 첫째 역시 계속 귀여웠다. 누구 하나 더 귀여워하거나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두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엄마가 될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그 '둘째가 더 귀엽다' 는 말은, 둘째를 더 사랑한다거나 첫째는 이제 찬밥이다 라는 뜻이 아니었다는 걸, 키우다보니 깨닫게 되었다. '귀여움' 이라는 단어는 아기아기한 외모나 사랑의 농도를 이야기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어린 동물의 재빠른 상황판단과 처신에 대한 기특함과 신통함", 그리고 "두 동물을 순차적으로 키우면서 자연스레 쌓인 경험치와 이해도 덕분에, 넓어진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통칭하는 단어였던 것이다.
첫째는 기본적으로 눈치가 빠르고 센스가 있는 성향의 아이다. 분위기 파악이 빠르고 응용력이 있어 사랑을 독차지하는 타입인 반면, 둘째는 낯을 많이 가리고 조용하고 고집이 강한 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세술은 둘째가 매우 뛰어나다. 이런게 바로 둘째의 타고난 본능인걸까?
예를 들어, 내가 혼을 내면 첫째는 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풀이 푹 죽는다. 눈치가 빨라 엄마의 기분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분위기의 변화를 재빠르게 감지한다. 여기까지는 빠른 눈치와 센스를 타고난 첫째의 장점이다.
그러나 첫째는 여기까지다. 혼내면 혼나고,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엄마가 풀어지는 순간을 알아채고 다시 쾌활해진다.
둘째는 타고나기를 자기 감정 위주에 고집스러운 성향이지만, 내가 화를 내면 재빠르게 다가와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다.
"엄마, 기분이 좋아 안좋아?"
"안좋아!"
"누구때문에 기분이 안좋아?"
"너네 형아때문에!" (나도 화가 나서 나도모르게 대답을 해버린다)
여기서 기분 나쁜 원인이 자기가 아님에 안도하고 내려가지만, 내 대답이 "너 때문에!" 라고 나오는 날이면 황급하게 내 얼굴에 뽀뽀를 쪽 한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사랑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내 기분을 묻고 뽀뽀를 해버리는 아이에게, 어찌 마음이 말랑말랑해지지 않을 수 있는가. 화가 났다가도 마음속에서 시원한 파도가 몰려와 뜨거운 화를 싹 가라앉히듯, 무언가가 싹 차분해지면서 달콤하고 말랑한 기분이 순식간에 든다. 그렇게 둘째는 내 화를 싹 치워버리는 것이다. 귀여운 뽀뽀 한 방에.
연애할 때도 비슷하지 않은가. 남편이 남자친구이던 시절, 남편은 싸울때마다 같이 화내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사과하는 걸 자존심 상해했다. 그래서 늘 싸움은 더 불같았고, 오래갔고, 감정이 상했다.
반면, 형부는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언니 기분이 풀릴때까지 반성하고 기다리는 타입이었다. 내 눈에는 한없이 착한 남자로 보였고 부러웠지만, 언니는 나름 그 사과가 진정한가, 미안하다는 말로 상황을 빨리 무마해버리려는 것 아닌가 하며 불만을 가졌었다.
인터넷에서 본 최상의 남자친구는, 화를 내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그래 다 네말이 맞아! 그런데 어쩜 그렇게 화를 내는 얼굴도 예쁜거야?"
라던지,
"그렇게 예쁘면 다냐!"
라던지...
전투력을 단번에 상실하게 만드는 전설 같은 남친이 존재한다고 했다. (폰남친일수도...?)
첫째는 딱 형부같은 남자, 둘째는 인터넷상의 그 전설적인 남친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것도 반복되면 그 감흥이 사라지므로, 둘째도 점점 더 강도를 올린다.
내가 화를 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와 뽀뽀부터 퍼붓고, 말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뽀뽀를 더 퍼붓고, 외면하고 계속 화를 이어가려해도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내 얼굴을 딱 붙잡고 눈을 보고 뽀뽀하고....
그리고 화를 낸 날 밤에 같이 잠자리에 누우면 둘째가 먼저 말을 건다.
"엄마. 아까 엄마 화나게 해서 내가 미안해. 다시는 그러지 말께!(안그럴게)"
"그래. 다시는 그러지 마. 알았지?"
"응 엄마. 그런데 아까 나도 너무 속상했어. 엄마가 화내서 너무 슬펐어."
그 뒤는 뻔하다. 꽁냥꽁냥과 볼키스를 퍼부으며 오구오구 안그럴게 엄마도 미안해, 많이 속상해쪄? 오구구...
첫째는 아무리 내 속을 태우고 불같이 혼나고 울고 그런 날에도, 자기 전에 한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둘째가 먼저 사과하는 것에 대해 너무 기특해서, 옆에 멀뚱히 누워있는 큰애한테 물어봤다.
"첫째야."
"응? 왜 엄마?"
"넌 엄마한테 할 말 없어?"
"응? 없는데?"
첫째는 자기가 뭘 해야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상하다. 타고나게 눈치가 빠르고 센스있는 아이지만, 이런 면에서는 둘째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리고 두번째 육아를 하면서, 첫째한테는 불안해서 주지 못했던 관대한 시선이 둘째에게는 생겼다.
밥 한끼 잘 안먹으면 걱정되고, 낮잠 못자면 큰일나는 줄 알고, 땀띠라도 솟으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는 그런 류의 문제 뿐 아니라,
첫째가 장난감을 던지면 어이구 저거 손에 쥔 거 다 집어던지는 망나니로 크면 안되는데! 마트에서 장난감 사달라고 징징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으면 어이구 저거 틈만 나면 드러눕고 떼 쓰는 못된 아이로 크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에 바로바로 심하게 아이를 다그쳤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니 한 번 그런다고 바로 망나니가 되는 건 아니었다. 물론 잘못된 행동을 하는 건 계속 바로잡고 고쳐주고 혼을 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처음 한 행동에 그렇게 기겁하며 막장을 상상할 정도까지는 아닌데,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고 겁이 나서 단박에 그런 행동을 교정하려고 심하게 몰아붙인 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실수로 던지거나 몰라서 한 행동도 매우 잘못했다는 식으로 추궁하고 혼냈으니, 초보엄마 밑에서 첫째들은 얼마나 무수히 혼나면서 크겠는가.
둘째는 그래서 조금은 너그럽게 대하게 된다. 아이의 미숙함과 배워가는 과정을 나도 좀 기다려주고 차분하게 대하게 된다는 의미다. 내 마음이 이렇게 넉넉하니 아이가 뭘 던지면 아고, 저 짧은 팔로 던질줄도 아네? 하고 일단 통통하고 짧은 팔을 먼저 감상하고, 뭘 던진거지? 아 지우개를 던졌군. 작고 말랑하니 크게 위험할 건 없고, 사람한테 던진 건 아니고 장난치려고 던진거군. 그래도 뭘 던지는건 위험하니 다음엔 사람한테 던지거나 위험한걸 던지지 못하게 한마디는 해야겠네, 하고 다가가 (절대 화를 내지 않고) OO아, 던지는 행동은 안되는거야. 앞으로 물건을 던지지 않아요. 알았지? 하고 단호하게만 말해준다. 첫째때는 득달같이 달려가 손을 낚아채며 너!! 뭘 던진거야! 던지는 건 나쁜거라는거 알아 몰라! 앞으로 던질거야 안던질거야!!! 빨리 대답안해?? 하면서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던가.....(미안하다 우리 첫째...)
차분해진 내 마음과+처세술을 타고난 둘째와+형에 비해 늘 통통할 수 밖에 없는 볼살과+형보다 당연히 어눌한 말투 때문에 둘째는 늘 귀엽다. 영원히 귀여울 것 같다. 이래서 둘째가 귀엽다 귀엽다 하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