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굴
한국 절기에 따르면, 봄이 시작하는 입춘은 양력으로 2월 4일 경이고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은 꼭 한 달 뒤인 3월 5일 즈음이다. 그런데 이 깨어난다는 것이, 지극히 인간의 시선을 중심으로 정해진 순간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2월 10일을 전후로 깨어났다 해도 우리는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다. 그러니 한 개구리가 2월 중순 무렵 우물에서 눈을 떴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개구리가 절기를 아는 똑똑한 개구리라면 어떨까. 경칩까지 보름 남았다는 사실이 조금 기쁘진 않을까?(라는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시작해 보는 오늘의 이야기)
(조금 더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면) 아마도 그 개구리는 긴 겨울의 시작과 함께 다음 해의 봄을 기다리며 잠에 들었을 것이다. 내년 봄에는 꼭 빛이 쏟아지는 저 우물 입구로 올라가 더 넓은 세상을 보아야지, 다짐하며 말이다. 하지만 한평생을 어둡고 눅눅한 곳에서 산 개구리에겐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우물 위로 쏟아진 따가운 햇살을 직면할 강한 표피, 바쁜 사람들 발에 치이지 않을 재빠른 몸놀림, 우물 안보다 훨씬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용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 경칩까지 보름이 남았다면, 개구리에겐 남몰래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할 여유기간이 생긴 셈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개인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말을 본 적 있다. 더 ‘잘’ 살/사/자/먹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탓에 경쟁의 사다리를 놓친 사람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 살기도 바쁜 환경에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살피기란 쉽지 않다. 사다리의 아래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얇더라도, 저 아래에 푹신한 매트리스가 깔려있다면, 조금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언제든 다시 올라볼 엄두를 낼 수 있지는 않을까, 허황된 상상도 해보는 이유다.
농경민족이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절기는 농사를 위한 도움말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삶의 방식을 녹여낸 시간의 흐름이기도 하다. 이 방식에 비단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것만 포함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치 생의 주기를 1년 단위로 압축해 둔 듯한 절기를 보며, 나는 올해의 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기나긴 겨울이 끝나간다. 동지 넘어 입춘 지나, 경칩을 마주한 개구리는, 과연 어디에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