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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창고, 마드리드를 소개합니다.

마드리드를 여행하는 예술 순례자를 위한 안내서

by 강명재

‘마드리드는 예술의 창고다. 예술을 사랑할 줄 아는 청년이 되기 바란다.’ 마드리드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대학 시절. 독일에 계시는 고모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편지 속에 담긴 문장들이 한국에서 익히 들어오던 충고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드리드라는 도시를 예술의 창고라고 표현하다니.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라는 말 대신 예술을 사랑하라는 충고는 또 얼마나 설레는지. 고모는 70년대에 간호사로 독일에 건너가신 분이다. 젊은 조카에게 남긴 메시지에는 다분히 유럽적인 가치관이 녹아있었다. 여기서 한국적인 것은 열등하고 유럽적인 것은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른 문화, 다른 현실에서 살아온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고 하고 싶은 애기도 다를 수밖에 없다.

마드리드만큼 매력 있는 도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축구, 투우, 날씨, 미식, 쇼핑, 역사, 공원, 활기찬 사람 등 마드리드의 매력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예술이다. 2017년 여름, 대학 시절 이후 약 20년이 지나 마드리드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해외 주재원으로 3년 6개월을 생활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20대 보다 좀 더 넓어진 견문과 20대 보다 좀 더 여유로워진 시간을 가지고 둘러본 마드리드는 과연 예술의 도시라 할 만했다.

시벨레스 광장 야경


마드리드를 예술의 창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본인의 고모뿐이 아니다. 유럽인에게 마드리드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방문해야 할 ‘순례지’로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영국의 인기 미술 작가인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이란 책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지만 만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그 여행지는 마드리드가 될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또 인상파의 거두 중 한 명인 마네는 마드리드의 프라도를 방문하고 연달아 찬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마드리드는 눈부신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수많은 유럽 도시 중에서도 발군의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아직 충분히 그 매력이 전달되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해외여행이 힘들어지기 직전에 스페인 여행 붐이 일었으나 대부분 바르셀로나와 남부 안달루시아에 관심을 쏟고 마드리드는 항공 일정상 잠시 들렀다 가는 도시쯤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종종 인터넷에서 ‘마드리드는 별로 볼 것 없어요’라는 글을 볼 때면 안타까운 심정이 된다. 그 글을 쓴 분은 마드리드의 매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뜻이고 그 글을 읽게 될 분들은 모처럼 스페인에 방문하고도 마드리드를 스쳐 지나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마드리드에 3년 6개월간 근무하는 동안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예술 감상에 쏟았다. 마드리드는 마치 화수분 같았다. 주말마다 부리나케 미술관으로 공연장으로 달려갔기에 꽤나 많은 것들을 보고 즐겼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마드리드는 기어이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었다. 굳이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식당에도 교회에도 길거리에도 그러니까 눈길 닿는 모든 것에 예술이 녹아 있었다. 마드리드는 벨라스케스의 매니나스나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전부가 아니다. 이 놀라운 보물들을 접할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욕구는 커져만 갔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이 아무도 모르는 작품을 소개해주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의 눈에는 부족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써 내려갈 글이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예술 팬들에게 –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들 대부분은 예술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즐거움과 위안을 드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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