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명재 Jun 13. 2021

헤라클레스의 후손, 지중해의 강철부대

스파르타와 Metaliica의 Seek and Destroy

< 쟈크 루이 다비드 – 테르모필라이의 레오니다스 >

- 신화보다 더 신화 같은 역사, 스파르타의 300인 결사대


“작년에 17대 1로 싸우다가...” 9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영화, 비트에 나오는 임창정(환규 역)의 유명한 대사이다. 상대방을 겁주려는 의도가 다분한 이런 대사는 사실 ‘공포’보다는 ‘웃음’을 안겨주기 십상이지만 모름지기 진정한 강자는 일대일 대결을 넘어 여러 명과 동시에 싸워 이겨야 한다는 로망(?)이 있는 것 같다. 전쟁사를 보면 소수의 결사대와 압도적인 대군 간의 전투 이야기가 종종 전해진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전투로는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300척의 왜군을 상대로 승리한 명량대첩이 있다. 그리고 서양인에게 가장 유명한 전투로는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진 “테르모팔라이 전투”가 있다.


비트의 환규는 17대 1, 이순신 장군은 300대 13. 그렇다면 테르모필라이는? 무려 5,000,000대 300.(0 개수를 잘 못 쓴 것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 전에 두 가지 집고 넘어가자. 첫 째, 이 숫자는 - 당연히 - 과장이다. 허진모 작가의 '전쟁사,문명사,세계사'에 의하면 현대 역사가들은 페르시아군은 10만에서 30만 명 사이, 스파르타를 포함한 그리스 연합군은 4,300명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사실 이 정도 병력차도 놀라운 것이긴 하다.  둘째, 이 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은 전원 전사한다. 이들이 전투에서 이겼다면 믿기 힘들겠지만 졌다는 애기를 못 믿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서양 고전회화의 주요 장르 중 하나가 역사화이고 그중에서도 전쟁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이다. 화가들이 이 엄청난 이야기를 가만 놔둘 리 없지 않겠는가.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거장,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_David)의 대표작 중 하나인 ‘테르모팔라이의 레오니다스’가 바로 테르모필라이 전투를 다룬 작품이다.


< 좌측부터 레오니다스 왕, 에우리투스, 전장에 함께 나온 부자 >

이 그림 한 점으로 할 이야기가 많지만 가급적 흥미로운 애기 위주로 알아보자. 일단 이 그림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보자. 그림 한가운데 한 손에 칼, 한 손에 방패를 들고 있는 인물은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이다.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무력을 자랑하던 스파르타의 왕이라면 몸 곳곳이 칼자국, 화살 자국으로 덮여있어야 할터인데 어찌 된 일인 지 다비드가 그린 레오니다스의 몸은 보디빌딩 대회 참가자 마냥 매끈하기만 하다. 신고전주의가 찬탄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이유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인물과 자연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      


왕의 좌측에는 한 손에 창을 치켜들고 있는 인물이 있다. 자세히 보면 눈이 감겨있음을 알 수 있다. 에우리투스라는 인물인데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장에 남아 끝까지 싸웠다고 한다. 왕의 오른쪽에는 나이차가 나 보이는 두 남성이 끌어안고 있다. 이 둘은 부자지간으로 추측한다. 그 둘은 이미 알고 있다. 다시는 가족이 함께 식사 테이블에 둘러앉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 외에도 여러 인물이 있지만 이쯤에서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


< 좌측부터 시모니데스의 시구를 새기는 병사, 헤라클레스 제단, 작가와 작품명 메시지 >

이제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여러 메시지들을 살펴보자. 그림 곳곳에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먼저 좌측 상단에는 한 병사가 매달린 듯한 자세로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다. 언덕 위에 매복이라도 하러 가는 건가 싶지만 사실 이 병사는 바위에다 메시지를 새겨 넣고 있다. 이 글은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가 남긴 시로 대략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스파르타인들에게 전해다오. 명령에 따라 우리는 여기 누워있다고.” 즉 국가의 부름을 받아 여기서 죽어갔다는 애기이다.


다음으로 레오니다스와 에우리투스 사이에는 무언가를 바치는 듯한 세 명의 젊은이가 있고 그 밑에는 작은 제단이 있다. 그 제단에는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스파르타인들은 자신들의 왕이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고 믿었고 자연히 레오니다스는 헤라클레스의 직계 후손이라고 믿었다. 그리스 도시국가 특히나 무력을 숭상했던 스파르타가 수많은 신들 중에서도 헤라클레스를 조상으모셨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레오니다스 왕 발 밑에는 작가 이름과 그림을 완성시킨 년도가 새겨져 있고 그 밑의 종이쪽지에는 작품의 제목인 “테르모필라이의 레오니다스”라고 쓰여있다.




- 고전주의의 대가, 좌우 대칭이 무엇인 지 보여주다


< 창과 꽃의 균형 >
< 활과 나팔의 균형 >
< 명예와 생존의 균형 >

그림의 구도와 그 속에 숨겨진 메시지들 넘어가보자.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롭다. 신고전주의 그림답게 좌우 대칭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일단 그림의 한가운데에는 주인공, 레오니다스 왕이 자리하고 있다. 왕을 중심으로 좌측의 인물군과 우측의 인물군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좌측의 인물들 간에도 균형이 있다. 창을 들고 있는 에우리투스는 정면을 보고 있고 제단에 꽃을 바치는 3명의 젊은이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에우리투스는 무기인 ‘창’으로, 우측의 젊은이는 제단에 바치는 ‘꽃’으로 전투의 의지를 다진다. 이제 우측으로 옮겨가 보자. 활을 들고 있는 지휘관은 정면을 보고 있고 나팔을 불고 있는 병사들은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휘관은 높이 치켜든 ‘활’로, 나팔을 든 젊은이는 ‘음악’으로 사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좌우측이 구도면에서나 메시지 면에서나 반복적인 수법을 사용하며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한 가지 더 살펴보자. 좌측 상단에는 아까 애기 한대로 한 병사가 비장한 시구를 새기고 있고 우측 상단에는 피난을 가는 한 무리의 인물들이 있다. 좌측의 병사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불멸의 명예를 얻을 것이고 우측의 피난민은 목숨을 건지겠지만 쉽게 잊힐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피난민의 태도를 잘 못 되었다고 비난할 권리도 없고 생명보다 명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아니다. 이 기회를 빌어 덧붙이자면 본인은 결코 전쟁을 미화하거나 스파르타의 군국주의를 찬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작품에 들어있는 메시지를 역사에 비춰 설명하고자 할 따름이니 오해 없으시기를.    

 

이 그림 속의 균형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균형을 발견할 수 있다. 다비드는 이 한 장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숨겨진 메시지와 구도를 찾아보라고 수수께끼를 던지는 것 같다. 당시 혈기왕성한 후배들이 신고전주의를 맹렬히 공격했지만 다비드의 작품 앞에서는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스파르타는 어떻게 술을 멀리 하라고 가르쳤나


< 루이지 무시니 - 스파르타의 교육 >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자. 19세기 이탈리아 화가 루이지 무시니(Luigi Mussini)의 ‘스파르타의 교육’이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얼핏 보아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게 교육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참고해야 한다. 스파르타에는 헬로트라고 하는 노예 계층이 있었다. 스파르타인들이 이 헬로트에게 가한 가혹행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너무 끔찍해서 아무리 고대에 일어난 일이지만 이건 너무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스파르타인들은 헬로트인들이 노예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때렸다고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이상의 이야기도 있으나 너무 선정적인 애기가 될 것 같아 이만 생략하고 싶지만... 이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더 애기해야 할 것 같다. 스파르타인들은 헬로트인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든 다음 광장에 끌고 나가 주사로 인해 벌어지는 추태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술을 멀리하라는 교훈을 이런 야만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것인데 이건 앞서 애기한 육체적 폭력 이상의 끔찍한 학대이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이 그림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른쪽의 아이는 옛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창을 쥐고 벌거벗은 채 서 있다. 스파르타의 군사교육은 일곱살 때부터 시작되었고 옷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하니 역사기록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 인상파 거장이 그려낸 스파르타인의 훈련 모습


< 드가 - 훈련 중인 스파르타 젊은이들 >

마지막으로 살펴볼 그림은 드가(Edward Degas) “훈련 중인 스파르타 젊은이들”이라는 작품이다. 19세기 인상파 거장 중 한 명인 드가는 발레리나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활동 초기에는 고전을 소재로 한 그림도 다수 그렸다. 고대 스파르타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 드가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접하는 드가 작품의 주제와 거리가 있어 신선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그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좌측의 여성 무리와 우측의 남성 무리, 그리고 화면 중앙, 원거리에서 보이는 한 무리의 집단이 그것이다. 일단 훈련 중인 젊은이들의 몸이 친근해서 낯설다. 이런 역설적인 표현을 쓰는 이유는 먼저 살펴본 다비드의 그림처럼 고전회화 속의 인물들은 말 그대로 조각 같은 몸을 가지고 있는데 드가 그림 속의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냥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충분히 멋진 몸을 가지고 있긴 하다. 어쨌든 신체비율이나 근육이 과거 작품에 비해 훨씬 현실적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검게 그을린 피부가 인상적이다. 생각해보면 역사상 가장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스파르타인들이 대리석 같이 흰 피부를 가졌을 리 없지 않은가.      


그림을 보면 좌측의 여성들이 우측의 남성들을 도발하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실지로 스파르타 여성들은 육체적으로 무척 강인하였다. 평소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고 운동 경기에서도 남자들에게 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 중앙에 멀리 보이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우측에 남자 한 명과 그를 둘러싼 여성들이 보일 것이다. 이 남성은 스파르타를 군대 위주의 국가로 개혁한 리쿠르고스이고 여성들은 그림 속 아이들의 어머니들인 것으로 추정한다.


왠지 한국의 학원가 근처에서 자녀를 기다리고 있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에서는 소위 ‘스파르타 학원’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고대 스파르타인들이 – 육체적 훈련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 공부하는 장소를 스파르타라고 부르는 것을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사실 스파르타인들의 훈련 방식은 너무나 가혹하고 비인간적이라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장소에다가 그런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




- 지중해 최강 부대의 군가, 스래쉬 메탈


고대 스파르타 군에 어울리는 군가가 있다면 그 장르는 헤비메탈이지 않을까. 스파르타 병사들로 가득 찬 어느 전장을 상상해보자. 어디선가 디스토션 가득한 메탈 사운드가 들려온다. 야수 같은 드러밍에 터질 듯이 벅차오르는 심장, 강철 리프에 맞춰 부풀어 오르는 근육, 지옥보다 무거운 베이스 저음 마냥 흔들림 없는 눈동자.


메탈 음악계의 태산북두, 메탈리카의 1집에는 ‘Seek and Destroy’라는 곡이 있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헤비메탈이라는 장르에서  메탈리카는 그나마 잘 알려진 밴드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열혈 메탈 마니아들은 메탈리카 음악이 변질(?)되었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분명 격렬한 분노 가득하다. 메탈리카 1집은 덜 세련되긴 해도 그만큼 거친 맛이 있는데 ‘Seek and Destroy’가 1집의 대표곡이다. 제목부터가 살벌하고 그만큼 스파르타 군가로서 제격이다. 적진으로 돌진하는 듯한 음악을 들려주는 메탈리카에게 스파르타는 뮤즈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FLTchCiC0T0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에 대한 경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