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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재 Nov 12. 2023

한낮의 슬픔

남반구 파라과이의 11월은 북반구로 치면 5월이다. 한국도 늦봄이면 더워지기 시작하지만 파라과이는 더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마가 된다. 이번 주말의 최고기온은 40도를 넘어섰다. 가급적 외출하기 싫어지는 날씨이지만 집 안에만 있기에는 답답하기도 하고 몇 가지 살 것도 있어서 선크림을 단단히 바른 후 길을 나섰다.

    

볼 일을 마치고 차를 새워둔 쇼핑몰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헐떡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중 거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라과이는 개도국이 많은 중남미에서도 빈국에 속하는 지라 쇼핑몰 앞에는 늘 가난한 이들이 있다. 아이 엄마가 다 부서져가는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힘없이 앉아 있었다. 엄마는 한 손으로는 전단지를 접은 간이 부채로 아기에게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사탕을 팔고 있었다.


아순시온은 인구가 많지 않아 보통 길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다. 더구나 이렇게 더운 날씨에 누가 걸어 다니겠는가. 인적이 끊기다시피 한 거리. 40도가 넘는 더위. 종일 그 더위 속에 버틴다 한들 몇 명이나 그 길을 지나갈 것이며 그중에서 몇 명이나 사탕을 구입하겠는가.


엄마와 아기의 모습이 너무 슬펐다. 순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 마음이 불쑥 치솟았다. 왜 그랬을까. 훗날 글을 적을 때를 대비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고 – 요즘의 글은 대부분 사진을 곁들이니까 - 나 자신의 감정에 취했던 것일 수도 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이긴 하지만 타인의 빈곤을 감상적으로만 생각했던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모자에게 다가가 사탕 하나에 얼마냐고 물었다. 한 통에 2,000 과라니라고 했다. 한국 돈으로 350원쯤 된다. 세 개를 사면 5,000 과라니라고 덧붙였다. 수 중에 있는 7,000 과라니를 주고 사탕은 하나만 집었다. 혼자 살고 있으므로 그 이상은 필요 없었다. 흘끗 아기를 보니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기 엄마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사탕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쇼핑몰에 들어갔다. 화려한 가게가 즐비한 쇼핑몰은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다. 방금 전 보았던 모자는 쇼핑몰과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개도국 대부분은 쇼핑몰이나 공항, 호텔 같은 시설에 극빈층이 들어올 수 없도록 단속한다. 사실 말이 단속이지 그런 건 필요 없다. 극빈층은 그런 장소에 들어갈 생각도 안 한다. 에어컨 바람 속에서 몸은 편안해졌지만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작품이 있다.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가 19세기 영국의 뒷골목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걸작이다. 소설 속에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낸시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어느 날 낸시는 말쑥한 신사와 아가씨 한 명과 얘기를 나눈다. 친절한 아가씨는 신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이분에게, 불쌍한 분에게 친절하게 말씀하세요! 이 분에게 필요한 건 다정한 관심 같아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내야했던 낸시는 어쩌다 한 번 들어본 따뜻한 말에 울음을 터뜨린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오늘 밤 내 꼴을 보고서 고개를 뻣뻣이 치켜들고 거만하게 쳐다보며 지옥불과 인과응보에 대한 말을 하겠지요. 아, 사랑스러운 아가씨, 그런 사람은 자기네가 하느님 백성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나처럼 불쌍한 사람에게 다정하고 친절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후략)”

* 도서출판 비꽃,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인용

     

행여라도 낸시의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그 녀는 크리스천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차가운 시선과 비릿한 비웃음을 보내는 수 많은 사람들, 그들의 냉담함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왜 가난과 고통이 있을까. 붓다는 이러한 물음을 떨칠 수 없어 출가하였다. 본인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늘 붓다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에 더해 낸시가 절규하듯 토해냈던 질문도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세상은 왜 불행한 이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하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길거리에서 사탕을 팔고 있던 모자가 머지않아 가난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혹은 세상이 좀 더 그들에게 상냥해질 것이라고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 다만. 앎도 경험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행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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