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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리 Oct 17. 2021

가오카오, 인생을 바꾸는 단 한 번의 기회

사다리를 올라야 미래가 바뀐다...치열한 입시와 사교육시장

 따뜻한 가족드라마인 <이가인지명>은 어릴 적 위 아랫집에 살게 된 링샤오와 리젠젠이 여러 역경을 헤치고 결국 행복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남녀 주인공의 연애에 집중하는 일반적인 ‘로코’와 달리 가족 이야기가 풍성하게 나오죠. 우리의 주말 드라마 같은 느낌이랄까요. 특히 일찍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딸아이와 어찌저찌 사연으로 얽힌 사내아이 둘을 제 자식같이 거두는 젠젠의 아빠 리하이차오의 부성애는 정말 눈물겹습니다. 아닌 밤중에 폭풍 오열하게 되니 출근 전날엔 자제하는 게 좋은 드라마입니다.

키크고 멋있는데 공부까지 잘하면 반칙인데...(출처=티빙 홈페이지 캡처)

 <이가인지명>의 남자주인공이자 듬직한 ‘첫째 오빠’ 링샤오는 키 크고 잘 생기고 공부까지 잘합니다. 시험만 보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죠. 농구 잘하고 능청스러운 ‘둘째 오빠’ 허쯔추도 공부를 곧잘 합니다. 둘은 같은 해에 ‘가오카오’를 봅니다. 가오카오를 보러가는 날 아침, 모두가 법석을 떨며 시험을 잘 보고 오라며 응원해주죠.


 가오카오는 중국 고등학생이 치르는 대학 입학시험입니다. 우리로 치면 수능인데요. 대부분은 고등학교 3학년생이 응시하지만, 2001년 연령제한이 폐지돼 다른 학년도 치를 수 있습니다. 가오카오는 매년 6월 첫째 주에 보고, 하루에 모든 시험이 다 끝나는 수능과 달리 이틀 연속 봅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하루를 연장하기도 하지요. 


 수험과목은 성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중국 문학, 수학, 외국어(영어)가 공통적으로 들어갑니다. 인문계 학생들은 역사, 정치, 지리, 이공계는 생물이나 물리 화학 중에서 골라 한 과목을 더 봐야 하지요. 한국에서는 대학 갈 때 수능 점수 외에도 기타 특기활동이나 수상경력, 논술이나 면접 등을 평가하지만 중국에서는 가오카오 점수 하나로 대학 입학 여부를 결정합니다. 가오카오는 문화대혁명(1966년~1976년) 기간 10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렸습니다. 


가오카오 시험 중간에 식사하는 학생들(왼쪽)과 시험장에 가는 버스가 줄지어 늘어선 모습. (출처=소후닷컴, 027art.com)

 가오카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동시에 치르는 시험입니다. 매년 900만~1000만명이 응시하는데, 2008년엔 1050만명으로 최고기록을 세웠죠.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꼽을 때도 가오카오가 항상 수위권에 거론됩니다. 시험을 치르는 사람은 너무 많고, 그에 비해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는 숫자는 너무 적으니까요. 상위권 대학을 나와야 취업할 때 유리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인생이 걸린 시험입니다.

시험 중간에 식사하는 학생들(왼쪽)과 응시장에 가기 위해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출처=소후닷컴, 027art.com)


 중국 고등학생의 대학진학률은 약 60% 정도입니다. 1980년대보다 20%포인트 더 높아졌죠.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지요. 2021년 기준 중국 대학 1위는 베이징에 있는 칭화대입니다. 칭화대는 미국 US뉴스가 매년 매기는 전세계 대학순위에서도 28위를 차지해 미국 유럽 국가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죠. (칭화대는 아시아권 대학중 1위, 싱가포르 국립대가 32위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학은 한 곳도 없었네요.) 이 랭킹에서 중국 본토에 위치한 대학 중 100위 이내에 든 대학은 칭화대와 베이징대(51위)뿐이었습니다. 


 중국에 있는 고등교육기관은 약 940개 정도인데요. 수도 베이징에 위치한 위 두 대학이 독보적이고, 상하이 자오퉁대, 상하이 푸단대, 항저우 저장대, 우한 우한대, 난징 난징대, 상하이 통지대, 베이징 중국인민대, 상하이 화동사범대 정도가 10위 안에 드는 최상위권으로 꼽힙니다. 허페이에 있는 중국과기대, 하얼빈에 있는 하얼빈공대 등도 전체 20위권에 빠지지 않는 대학들에 속합니다.


 중국은 수십 년간 한 집에서 한 아이만 낳도록 하는 산아제한을 실시하다, 2016년부터 둘째를 허용했고, 올해 들어 3자녀까지 낳아도 좋다고 정책을 변경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2015년 전에 태어난 아이들은 쌍둥이가 아닌 이상 모두 외동인거죠. 인구는 많고, 상위권 대학은 한정돼 있고, 양가의 조부모와 부모가 한 아이에만 오롯이 투자를 하게 된 환경이 겹치면서 중국 사교육 시장 수요가 폭발합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한 것은 온라인 교육 시장이었습니다. 한 데이터업체는 중국 온라인 교육시장이 2020년 4540억 위안(약 84조3000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했습니다. 프로스트앤설리번이라는 컨설팅사도 지난해 중국 온라인 교육 시장이 2023년까지 993억 달러(118조7600억원)규모로 커진다고 예상하기도 했습니다.2) 중국 대표 기업인 알리바바나 텐센트 등도 교육부문에 뭉칫돈을 투자했죠. 카페에서 외국인 강사에게 영어 과외를 받는 모습이 흔했고 외국대학으로 가기 위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준비를 시키는 유학 준비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2021년 여름 중국은 이 사교육 시장에 철퇴를 내립니다. 중국은 영어 수학 등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과목에 대해서는 사교육을 금지해버립니다. 한마디로 대학입학시험 과목은 사교육을 하지 말라는 거죠. 방학 기간 사교육을 해서도 안 되고, 외국인 강사를 고용하거나, 외국 교육과정을 가르쳐서도 안된다고 제한했습니다. 게다가 교육업체들은 모두 비영리 기관으로 전환하라고 청천벽력 같은 정책을 내놨습니다. 우리로 치면 인터넷 강의를 하는 초대형 입시업체들이 모두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된 상황인 거죠.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가능합니다. 중국에서는 업계 전체를 뒤흔드는 정책들이 왕왕 발표됩니다. 특히 2021년에는 중국 정부가 여러 규제책을 내놓아 게임, 사교육, 대중문화업계가 줄줄이 타격을 입었죠. 


 중국 정부가 갑자기 사교육을 제한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사교육이 사회 불안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학교만 다니면서 같은 조건으로 공부한 뒤 평가받는다면 불만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돈 있는 사람은 아이의 사교육에 어릴 때부터 투자해 상위권 대학에 보내고, 돈 없는 사람은 그런 투자를 못해줘 공정하게 경쟁하지 못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는 선수들이 생기는 겁니다. 

 사회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생기는 건 일당 체제인 공산당이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는 여러 정당이 있습니다. 이념이나 정책이 다른 정당들이 4~5년 마다 서로 경쟁해 선거를 통해 다음 지도자를 선출하죠. 하지만 사실상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경쟁 당이 없는 공산당에서는 이게 불가능합니다. 사회 불만을 갖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곧 정권의 정통성이 흔들리고, 권력 기반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가까운 미래에 인구가 줄어드는 중국에서 애 안 낳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중국 젊은 세대가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을 기피하는 이유죠. 산아제한을 해서 아이를 더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아이를 낳지 않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난 겁니다. 

중국 출산률은 2019년까진 가임여성 1명당 1.7명 대였지만 2020년 기준 1.3명까지 떨어졌습니다.(출처=세계은행)

 

<이가인지명>에서 첫째 오빠는 싱가포르 국립의대에 진학해 치과 의사로 돌아옵니다. 어릴 때부터 이가 약하고 충치치료를 겁내던 여동생을 위해 직접 의사 가운을 입은 순정파였던 거죠. 둘째 오빠는 이십년 만에 갑자기 나타난 부자 친아빠 돈으로 영국에 유학을 가고요. 돌아와서는 디저트를 좋아하는 여동생을 위해 멋진 카페를 열고 카페 사장님으로 변신합니다. 결국 모든 남자 주인공들은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중국 정부가 다음엔 어떤 분야를 어떻게 규제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 규모와 파장이 어떨지도 예측하기는 힘들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드라마의 결말 뿐이었네요. 



1) http://www.xinhuanet.com/english/2017-06/07/c_136347192.htm

2)https://www.scmp.com/economy/china-economy/article/3143551/why-china-cracked-down-education-and-upended-us70-billion

3)https://www.wsj.com/articles/chinas-evergrande-debt-crisis-sizing-up-a-big-mess-11633253402?mod=article_i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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