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드엔 왜 더빙이 많은 걸까
손흥민과 박지성, 두 스타 플레이어가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등장하기 전, 1970~198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EPL의 스타가 있었으니, 바로 데이비드 베컴입니다. 지금은 클로이 모레츠와 사귀었던 셀럽 브루클린 베컴의 아빠로 알려졌지만, 그는 당시 축구계를 뒤흔든 슈퍼스타였습니다. 축구를 1도 모르는 ‘축알못’이라도 베컴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죠.
베컴은 휘감겨 골문으로 빨려드는 절묘한 프리킥만큼이나 배우 부럽지 않은 준수한 외모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그에게서 굳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목소리였는데요. 그는 동굴서 울려 퍼지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 대신, 가늘고 높은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90분을 보다, 경기 후 인터뷰를 보게 되면 갑자기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에 놀라곤 했죠.
중드에는 수없이 많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배우는 연기를 하고, 나중에 목소리를 따로 입히는 ‘더빙’을 하기 때문인데요. 중국드라마는 왜 더빙을 할까요?
더빙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중국에 다양한 방언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배우가 사투리를 쓰면 대사 전달이 잘 안 될 수 있죠. 중국은 ‘베이징 사람들이 쓰는 현대 중국어’를 표준어로 정했지만, 표준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인구가 많지 않습니다. 중국에는 120여개 이상의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가 달라도 서로 의사소통은 가능하죠. 중국에서 서로 다른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서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중에서도 주요 방언은 약 7~10가지로 나뉘는데, 베이징과 선양, 하얼빈 등 동북지역, 시안 우한 충칭 쿤밍 등 서남지역과 우루무치에서 쓰는 북방방언(베이징말) 인구가 70% 가량으로 가장 많습니다. 북방방언이 중국 표준어의 기초가 됐기 때문에, 이 70%의 인구는 표준어인 보통화를 이해하죠.
방언을 쓰는 지역은 주로 상하이 이남에 집중됩니다. 상하이와 항저우 지역에서 쓰는 우방언 (吳語), 푸젠성과 대만에서 쓰는 민방언이 있고요. 광둥과 홍콩 지역에서 쓰는 광둥어(월방언), 허난성, 안후이성, 푸젠성, 광시성 일부지역에서 쓰는 객가 방언과 장시성, 푸젠성 서부에서 쓰이는 감방언이 있습니다.
단순히 시청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더빙을 하기도 하지만, 극 중 상황에 맞게 말을 통일하는 경우도 있지요. 배우들이 여러 지역 출신이다 보니 표준어를 쓰더라도 지역 고유의 억양이 강하게 남아있을 수 있어 더빙을 해왔다는 게 중론입니다. 극중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인데, 서로 다른 억양으로 말을 하는 건 극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아요. 대만 배우들이 출연하는 경우에도 보통화 더빙을 종종 합니다. 배우의 목소리가 배역과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도 전문 성우가 더빙을 합니다.
배우의 목소리가 배역과 잘 어울리고, 표준어를 구사하더라도 나중에 목소리를 입히는 후시 녹음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야외 촬영과 특수효과 촬영이 많은 경우에는 배우의 목소리가 현장에서 잘 녹음이 안 되기도 해요. 드라마를 사전에 제작하고 검열을 거쳐 나중에 방영하는 중국 드라마는 후시 녹음을 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주인공 목소리가 더빙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성우가 더빙을 하면 주인공 목소리가 아니니 그 맛이 잘 안 살긴 합니다. 하지만 더빙도 의외의 장점이 몇 가지 됩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라도 일단 정확한 발음과 발성이 귀에 쏙쏙 박히고요. 외국 배우들이 출연할 때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출연이 가능하죠. 연기 경험이 적은 아이돌들이 배역을 맡았을 때도 부족한 연기를 전문 성우의 목소리가 다소 보완해줍니다.
처음 연기를 할 때는 전문 성우가 더빙했지만, 나중에 연기력이 검증된 후엔 본인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도 있습니다. <진정령>의 위무선 역을 맡은 샤오잔은 진정령에선 성우 목소리로 나왔지만 메이킹 필름에서 보여준 정확한 발음과 중저음의 목소리가 호평을 받았습니다.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한 샤오잔은 그 다음 작품부터는 본인 목소리로 연기합니다. 특별 출연한 <경여년>과 <투라대륙>에서는 목소리가 배역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지요.
<천성장가>의 주인공 봉지미 캐스팅에도 목소리가 중요했다고 하네요. 주인공은 활달하고 괄괄한 여성 봉지미, 남장한 조정 관리 위지의 1인2역을 해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높거나 가는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았죠. 다소 톤이 낮은 목소리를 가진 니니가 역할에 안성맞춤이었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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