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드 속 호칭을 찾아서
흔히 고장극이라고 부르는 중국 사극 드라마를 보면 한 회에도 열 댓 번씩 나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성격이 불같은 황제가 신하의 말을 못마땅해 하거나, 후궁들이 임금에게 몇 마디 했는데 분위기가 냉랭해질 때 주인공들은 일단 납작 엎드립니다. 그리고 외치지요. “황샹, 시누(皇上, 息怒)!” 화를 삭여라, 화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황제에게 ‘화내지 마’ 하기 전에 한 두 마디 더 붙여볼 수도 있죠. 그때는 “삐샤, 닌우훼이러(陛下, 您误会了)”라고 자주 합니다. 그런 말이 아니었어, 오해하지 마, 하고 달래요.
그런데 왜 어떨 때는 ‘황상’이고, 어떨 때는 ‘폐하’일까요. 둘다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중국판 구글인 바이두에서 황상과 폐하의 차이를 검색해보면 황상은 말 그대로 황제라는 뜻입니다. 폐하는 호칭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폐하의 폐는 궁전의 계단을 의미합니다. 폐하는 신하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부르는 호칭입니다.
사용한 시대도 다릅니다. 청나라 이전에는 황제를 보통 폐하라고 불렀고, 청나라에서는 주로 황상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청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후궁견환전(2011)>이나 <보보경심(2011)>, <몽희(2019)> 등을 보면 황상이라는 말이 더 자주 나옵니다.
고장극에는 자기를 낮추는 말도 많은데요, 대표적인 건 여자 주인공들이 말할 때 입버릇처럼 쓰는 ‘누삐(奴婢)’입니다. 한자로는 노비인데, 원래는 자유가 없는 노예를 뜻했지만, 나중에는 남녀 종을 부르는 말로 씁니다. 궁에서는 후궁들이 쓰기도 하고, 본처가 아닌 부인들이 쓰기도 합니다. <녹비홍수(2019)>에서 눈물 콧물 애교로 주인공 명란의 아버지를 홀리는 둘째 부인이 남편 앞에서, 첫째 부인 앞에서 자주 하는 말이지요. “누삐 뿌간(奴婢, 不敢)”.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어요, 정도에요. 정말 억울한 사람이 벌벌 떨면서 말하는 누삐 뿌간과, 상황을 슬쩍 모면하려는 누삐 뿌간을 보는 맛도 쏠쏠합니다.
<녹비홍수>에서 주인공 아버지 성굉은 세 부인을 뒀는데요, 정실 부인인 왕약불은 남편에게 말할 때 누삐 대신 천치에(臣妾)라는 말을 씁니다. 신하란 뜻의 천(臣)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상대에게 나를 낮춰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 5품 관리인 성굉이 황제 앞에서 자신을 지칭할 때도 쓰고, 여자나 아내를 뜻하는 치에(妾)를 더하면 아내가 자신을 부르는 말이 됩니다.
왕과 그 가족을 부르는 말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왕의 부인은 왕후, 왕의 형제들은 왕야, 왕의 아들딸은 왕자, 공주입니다. 왕의 여동생은 그냥 공주와 구분해 장공주라고 불렀습니다. <경여년(2019)>에서처럼 태자의 고모인 장공주는 권력의 주변부에 있었던 사람이라 반란세력에 잘 휘말리지요. 왕예(王爷)라고 부르는 왕야는 중국 봉건시대에 작위와 봉호를 받은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왕의 형제들은 대부분 작위가 있었으니 왕야로 불렸겠지요.
왕의 가족들이 서로를 부를 때는 왕 뒤에 호칭을 한 자씩 붙입니다. <장야(2018)>에서 왕의 외동딸 어의공주는 삼촌을 왕숙이라고 부르고, 삼촌이 자기 형인 왕을 부를 때는 왕형이라고 합니다. 황제의 어머니는 예외겠네요. 황제의 어머니는 태후나 모후라고 불렸습니다.
왕이나 황제의 아들들은 태어난 순서에 따라 숫자로 부르는데요. <경여년(2020)>에서 주인공 범한이 황자들을 부르는 말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두 번째 태어난 황자는 2자를 붙여 얼황즈, 네 번째 태어난 황자는 4자를 붙여 쓰황즈라고 부릅니다. 만약 이 쓰황즈가 태자로 책봉됐다면 타이즈(태자) 가 되지요.
황제를 제외한 황실 가족들에게는 모두 띠엔샤(殿下)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황제에게 폐하라고 한다면, 왕자나 공주들한테는 띠엔샤라고 하는 거죠. 영국이나 스웨덴 등 군주제 국가에서 왕제나 왕자, 공주를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중드에선 학당도 황실만큼 익숙한 배경입니다. 같은 스승 아래에서 배우는 선후배를 부를 때는 왕 대신 스승 사(師)자를 더합니다. 선배인데 남자면 쓰숑(사형), 여자면 쓰지에(사제)고, 남자 후배는 쓰띠(사제), 쓰메이(사매)입니다. <장야(2019)>에서 주인공 녕결은 무려 10명의 사형사제와 함께 배웁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스승과 선후배가 똘똘 뭉쳐 가족처럼 막내를 지켜 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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