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배탈 안나게 해주세요
아빠는 홍삼을 좋아한다. 아빠는 키가 178cm 정도 되는데 체중은 60kg가 안된다. 매우 호리호리한 몸매다. 소화기관이 약해서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과식하면 탈이 잘 난다.
면허시험을 삼수로 간신히 통과하고 얼마 안됐을 무렵이다. 아빠의 K7을 타고 온가족이 10차선 강남대로를 지나는데 운전하던 아빠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주말 한낮의 강남대로는 정체가 심했다. 어디 갓길에라도 세워야 화장실에 갈 텐데, 앞 차는 안 가지, 옆 차선은 안 끼워주지, 진퇴양난이었다.
2차선에 서 있던 아빠는 급기야 “아이고 안되겠다”를 외치면서 운전석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대로를 가로질러 아빠가 총총 사라지니, 운전석이 비었다. 동생은 무면허였고, 엄마는 티코보다 큰 차는 절대 운전하지 않았다. 가족의 운명을 짊어진 나는 급히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못 걸고 쩔쩔매다 간신히 좌회전을 해서 정차했다. 아빠는 헬스장 화장실을 빌려 쓰고 만면에 웃음을 되찾아 돌아왔다.
아빠는 본인이 소음인이라, 위장이 약하고 소화를 잘 못시킨다고 주장한다. 몸이 찬 것도 그 때문이고, 삼겹살과 맥주를 먹으면 배가 꾸룩거리고 메밀을 먹어도 배가 아프단다. 반대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열이 있는 음식이 아빠와 맞는다. 대표적인 게 홍삼이다. 아빠는 홍삼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고 소화가 잘 된다고 했다. 집에는 정관장 홍삼엑기스가 떨어지지 않았다. 아빠는 십 수 년간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퇴근한 후에 뜨거운 물에 홍삼차를 자주 타서 마셨다.
동생과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줄곧 아빠의 생신선물과 어버이날 선물은 홍삼이었다.
나라가 보증해주는 정품 홍삼의 가격은 꽤나 비쌌다. 그걸 하루 두어 잔 씩 차로 마시면 헤펐다. 나와 동생은 어느 해에는 홍삼엑기스를, 어느 해에는 홍삼 정과를 사고, 작은 파우치에 들은 홍삼농축액을 사갔다. 아빠는 홍삼에 진심이라, 우리가 어떤 홍삼 제품을 사가도 “어어 홍삼 좋지”하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남자 친구를 인사시켰을 때도 홍삼을 가져갔다. 결혼하고 챙기는 어버이날과 생신에도 때마다 친정 선물은 홍삼이었다. 집 뒷 베란다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홍삼 박스들이 서너개 쌓여있었다.
아빠의 환갑에 홍삼을 뛰어넘는 선물을 고민하던 차에 남편이 일본 여행을 제안했다. 장인어른과 일본 교토에 단풍구경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빠는 단체 관광으로 일본 홋카이도에 한번 다녀온 게 다라, 사위의 제안에 반색했다.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사위는 교토의 단풍과 초밥과 튀김덮밥 명소를 열심히 검색해 장인어른과 2박3일 여행을 다녀왔다. 교토의 핏빛 단풍과 그 아래서 찍은 두 남자의 다정한 셀카가 남았다.
아빠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초밥을 먹으면 사위와 교토에서 먹었던 초밥을, 튀김덮밥을 먹으면 사위와 문밖서 한참 기다려 먹었던 덮밥을 이야기했다.
아빠는 여전히 홍삼을 좋아한다. 그래도 다음번엔 아빠가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을 될 선물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