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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un 25. 2020

예민한 유월 / 카톡에 좋아요 기능이

카톡에 좋아요 기능이 있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나는 마치 선물 상자 속에 사는 기분이에요.] ‘근사한 나를 좋아하지 않고선 배기지 못할거야.’ 생각하니까요. 마치 눈 가리고 “나 찾아봐라~!” 하는 어린아이처럼 말이죠. (그래서 Sarah Connor가 Love is color-blind란 명곡을 남겼는지도 모를 일!)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자기중심적 사고 방식을 앓게 되는데 이게 참 스스로를 환장하게 만드는 포인트죠.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 3년 전 게시물에까지 하트를 누르거나 올라오는 스토리마다 반응을 해대는 일, 괜히 전화를 걸어 뜬 소리만 하고 끊는 불상사가 생겨버립니다. 맞아요. 이제야 밝히지만 나는 사랑에 전력질주하는게 고질병인 사람이고, 합병증으로 유아기적 자기중심증을 앓고 있습니다. 조금씩 사랑하는 법을 몰라 먼저 달려가놓고 헉헉 거리기 일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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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을 하는 일은 부스러기 디저트를 받는 삶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있어선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는 사람인지라, 탄단지 고려하여 임금님 수라상처럼 좋아하는 마음을 차려내곤 합니다. 먹기도 전에 상을 엎은 사례도 있었지만, 보통은 디저트가 돌아오곤 합니다. 검소하게 부스러기 정도. 몇 해전 좋아하던 K와 스스로 로맨틱, 성공적인 데이트를 마치고 고백하니 이런 부스러기가 돌아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기는 힘든거야.” 그 후로 지금까지 내좋날좋힘이라고 부르는 이 격언은 제가 먹어본 부스러기 중 가장 단짠신쓴맛으로 남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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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랑 손 씻기 덕분에 소아과 환자는 줄었다던데 사랑에 빠지는 일은 대비를 못하겠어요.]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와 절반이나 겹치는 카페의 익숙한 BGM을 따라 책 읽는 그 사람을 힐끔 자주 훔쳐봤어요. 자세를 바꾸어도 보고 고개가 뻐근한듯 이리저리 풀어보면서 말이죠. 같이 책 읽자고 불러내는 어리숙한 개수작이었지만 흔쾌히 응해준 그 마음이 아리송했습니다. 옷 매무새가 단정한 그 사람은 자세도 반듯했고, 사랑에 빠진 이유에 추가시켰죠. C가 무엇을 읽었느냐 물어보길래 당신의 이름만 어른거렸다고 대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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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랑을 마중이라고 생각할래요.] 아마 나는 평생을 사랑하기 위해 전력질주할 거에요. (사람은 세탁해서 쓰는게 아니랬어요.) 먼저 가 있으려고요. 가는 길에 돌을 고르고, 돈이 많아지면 도로 포장도 해놓고요. 비록 가진 것 없더라도 꽃다발과 멀끔한 옷을 입고 웃으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급함은 잠시 누르고, 주말 아침의 기분으로 나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말이죠. 나의 마음 아직 모르는 그대이기에 놀라거나 부정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이제 아시겠죠? 카톡에 좋아요 기능이 있었으면 정말 큰일날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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