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AQ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k of Spades Aug 26. 2019

FAQ 5 - '좋은 작가 (부업)가 되고 싶어요!'

전업작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입장에서 풀어보는 솔직한 썰

어떤 형태의 글이 되었건, 본격적으로 '뭔가 진지하게 써내 보고 싶다!' 같은 생각을 처음 했던 시기가 2012년 중반이었던 것 같다. 글의 형태가 소설이 되었건, 칼럼이 되었건,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지금 살아가면서 얻은 경험과 느끼는 생각들을 풀어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아주 지독하게 들끓었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나는 입대한 지 1년이 조금 덜 되어가는, 군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한 청년이었다. 지금처럼 휴대폰 사용이 허가되는 등 '외부와의 소통' 측면에서 여러모로 개선된 버전의 것과 다른 한 세대 이전의 군대에 뛰어들어있던 사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잘 때까지 이동할 수 있는 구역들의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었다.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의 크기가 엄청나게 줄어들어있다는 인식이 항상 뚜렷했다.

일부분은 명백하게, 일부분은 은근하게 느껴지는 통제와 감시 속에서 나는 매우 한정적인 가짓수의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나빴던 점은, 사적인 공간의 허용이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장교나 부사관처럼 BOQ BNQ 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잠자는 생활관 (한 번에 8~10명씩 씻어야 하는 샤워실 포함), 의자들 대부분이 나의 상사로 채워져 있는 환경에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사무실 모두에서 나는 항상 만나는 사람들과 항상 비슷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이런 답답함이 끔찍하다고 느끼는 몇몇 사람은 탈영을 하거나 휴가 후 복귀를 하지 않으려 들기도 한다. 실제로 복무기간 중 몇 차례 다른 사람들의 일탈을 직접 목격한 적도 있었고.


아주 확실하게 억눌린 채로 2년을 꽉 채워 살아야만 한다는 상황을 인식했을 때, 나는 밖으로 도망나가는 것보다 좀 더 합법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을 택해서 이 상황을 극복해보고자 하였다. 그 때 내가 찾은 해결책은, 하룻동안 적어도 몇 시간 정도는 나와 볼펜과 공책 셋이서만 지내도록 해보는것이 심신 양면에 이롭다는 사실이었다. 즉, 내가 물리적으로 피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다면 어느정도 나 스스로를 주변으로부터 격리되도록 해보는 시도가 스트레스 관리에 아주 유용하였다.


글을 쓰거나, 글을 쓰기 위해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정리하는데 쓰인 시간들은 나를 고상한 방법으로 격리시키는 일에 매우 큰 도움을 주었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그다지 튀지 않고, 내가 하면서도 부끄럽거나 어색한 부분이 전혀 없는 일이었다.




이번 FAQ의 주제는 나의 멘티들 중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지녔던 장래희망, '작가'와 깊게 연관되어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스스로를 내향적이며 – 사색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또래들보다 조용한 편에 속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중고등학생 대상 멘토링을 할 때는, 연령 - 경제적 상황 - 학생 신분 등 여러 가지 조건 상 한정적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멘티들을 아주 자주 접하게 된다. 나는 그들이 느끼는 답답함이 어떠한 빛을 띠는 색인지 생각해보곤 했다. 내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터져 나왔던 그 시기, 내가 억눌려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자연스럽고 아주 강하게 짜내어졌던 그 욕구의 빛과 비슷한 색을 지녔겠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럴 때,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글을 쓰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나눠보는 시간이 그들에게도 적용하기 용이한 점들을 많이 짚어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나의 시행착오를 함께 고찰해보면, 보다 빠르게 난관을 넘어가는 일에 대한 힌트를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갇혀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글쓰기의 특징 : 잘 쓴 글의 요소들 중 A를 잘 채워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A는 무엇일까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켜면 아무것도 접속이 되지 않은 군대 내의 세상이지만

'인트라'넷 공간에서는 상당히 복잡한 경로를 타고 넘어 다니다 보면 여러 가지 자료들이 업로드되어있는 게시판들을 찾을 수 있었다.


공군 공감

공군본부 커뮤니티

제20전투비행단 인트라넷 웹진 우비


내가 입대해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요런 사이트들이 당당한 현역이었다고 기억한다.

전역할 때 즈음에는 뭔가 일이 있어서 닫혔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 복무 중인 사람들도 이중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곳이 있을까? (아마 내가 복무하던 시기에도 일과 후 휴대폰 사용 허용이 되었었다면 나도 '인트라'넷 대신 훨씬 화사한 인터넷에 시간을 주로 쏟았을 것 같긴 하다.)


글, 사진, 때때로 영상 등이 아주 많은 사람들의 손을 통해 전달되어왔다.

이들 중, 용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제한된 게시판 용량 한계상 장기간의 보존이 불가능했던 사진과 영상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빨간 X자 페이지로만, 로딩 안 되는 데이터 흔적으로만 남아버리기 일쑤였으나, 적은 데이터 용량의 끝판왕인 텍스트 파일들은 최초 업로드 일이 2008년이더라도 꿋꿋이 남아 열렸었다!


밖에서 이미 작가였던 사람이 쓰던 걸 가지고 온 건지, 안에서 작가로서의 재능이 꽃핀 다음 생산해내는 실력이 기가 막혔던 건지, 수준 높은 필력을 가진 전우님들의 글들을 보다 보면 아주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었었다.



일과 후 쉬는 시간들을 이용해서 나 역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고, 첫 시도는 소설이었다고 기억한다.

잘 되지 않았다.



소설의 3요소를


인물

사건

배경


이라고 한다.


나는 흥미로워 보이는 사건에 대한 아이디어와 키워드를 기가 막히게 낼 수 있었다.

어떠한 가상의 세계에 대한 배경을 - 길고 지루한 군생활의 답답함에서 힘을 얻어 - 편집증 환자처럼 세밀하고 꼼꼼하게 묘사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 배경을 아무리 예쁘게 빚어놓아 보아도, 그 공간을 채워 넣을 인물들의 개성이나 성격을 멋있게 만들어내는 스킬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CG는 좋았다고 하나 캐릭터가 안 살아나서 망했다고 평가받는 영화들이 있다. 저스티스 리그나 저스티스의 시작과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벤저스와 비교해본다면 정말로)


내가 쓰려고 했던 소설이 영화고 내가 영화감독이었다면, 당시 나의 실력수준은 홍보용 스냅숏이나 예고편에 넣을 만한 장면 서너 개는 겨우겨우 임팩트 있게 꾸밀 수 있을지 모르나 전체 줄거리로 보았을 때 너무나 허술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실격 수준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소설의 가장 큰 공간을 담당하고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개념은 인물이더라.





소설을 쓸 때, 소설에서의 사건을 체계적으로 구상하고 배경을 멋지게 묘사했다고 가정해보자.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었건, 아무리 많은 공을 들였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묘사’가 제대로 되지 못한다면


여행지 풍경사진

잘 풀어쓴 역사책


내가 써놓은 글이 그나마 비슷하게 될 수 있는 대상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과 비교할 때 아주 뚜렷한 약점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픽션으로서 쓰고 있을 소설이니, 이것은 실제로 있는 풍경을 그려주는 사진첩이나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분석해주는 역사책이 되지 못한다. 즉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소설의 배경이나 사건 자체로는 학술적 가치나 심미적인 가치를 크게 얻기가 매우 어렵다고 느낀다.


아무리 생동감이 넘치게 잘 썼더라도 가상의 역사와 설정 놀음일 뿐이다.

아무리 풍경화를 잘 그려내었다 한들 한낱 상상화일 뿐이다.



매력적인 인물이란 잘 쓴 소설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요소로, 잘 짜여진 배경이나 사건의 가치를 제대로 살려주는 최고의 파트너와 같다. 인물의 매력이 잘 살아나지 못한 어떠한 작품도 사랑받는 이야기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현역으로 신규 작품이 나오고 있는 해리 포터 세계관을 생각해본다. 주인공 포터, 악역 말포이, 친구인 론과 헤르미온느 같은 인물들 매력적으로 설계되고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면, 작중에서 나오는 호그와트나 마법사 협회와 같은 모든 설정들은 커다란 가치를 얻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다 잊혔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어떠한 이야기를 읽는 동안의 나를 생각해보면, 내가 읽는 행위를 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 대상은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과 이들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배경이 다소 허술하고 빈 공간이 있어도, 사건들의 핵심 부분들이 우연과 같은 요소들에 의해 해결된 부분이 있어도, 인물에 대한 몰입만 확실하게 되면 불완전한 부분들이 크게 걸리적거리는 일 없이 지나가버린다. 아무 문제없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배경 묘사, 사건 묘사를 생각해보면...


소설은 작화력으로 승부를 보는 – 즉, 시각적인 면으로 입지를 다지거나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 웹툰이나 출판만화가 아니다. 백색 종이 위에 흑색 인쇄물로 접하게 되는 줄글이다. (브런치는 아주 좋게도 컬러, 볼드, 밑줄 등등을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지만)


배경을 멋지고 세밀하게 그려서, 전투 장면을 박력 있고 생동감 넘치게 그려서 독자들을 끌어올 수 없는 환경이다. 단지, 인물에 대한 내용을 깊이 있게 담는 것이 거의 전부인 매체이다.


이 부분이 충족되지 못하는 소설은, 그 누가 어떻게 써내더라도 많은 독자가 재미를 붙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다음 질문들에 대한 원인 분석 : 주인공 한 명에 대해 열심히 써봤다. 그다음 진도가 도저히 나가지를 않는다. / 내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은 전부 다 비슷비슷한 직업을 가진다. 사실상 거의 동일인물인 것처럼 느껴진다.




취미로서의 글쓰기를 시작한 초기, 너무나 지지부진한 내 실력과 글들을 보면서 (찢거나, 구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아예 없었던 일인 셈 치는 건 하나도 좋을 것 같지 않아서) 내가 이것이 ‘부대에 갇혀있는 채로 쓰는 소설의 한계인가?’ 같은 생각을 하며 우울해했던 기억이 난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잠깐 말해본다면...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나와 비슷한 나이 때의 사람들이 주로 쓰고자 시도하는 소설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고깽이라는 말이 있다.

주인공인 고등학생이 어떠한 계기로든 능력을 얻어서 이세계로 떠나는 내용을 그린 작품들을 통칭한다고 한다. 초반부라면 당연히 고등학교에서의 주인공 생활이 다뤄지고, 상당히 많은 경우에 나중 가면 이세계와 현실의 고등학교 생활을 번갈아가면서 하는 내용이 나오는 경우들이 있었다.


나온 시기가 상당히 오래 지났지만,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이 있다. 로봇과 외계인 사이의 전투가 주요 줄거리가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작중에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이 묘사되는 부분이 상당한 양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중학교건, 고등학교건, 학생 신분에서 시작한 주인공의 이야기와, 어떠한 방법으로든 학교에서의 생활이 묘사되는 작품들을 굉장히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도전만화나 도전소설 탭에서. 어째서 추리, 스릴러, 액션, 로맨스 등의 장르를 불문하고 학교의 모습이나 학생 신분인 등장인물들이 그렇게 자주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우선, 타기팅하는 독자층이 특정 학생들인 경우에, 작가의 의도와 설계에 따라 그러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가보면 초등학생들이 온 학교 건물을 헤집어놓으면서 로봇 3기를 타고 나타나는 애니메이션이 나오기까지 한다. (추억의 라이징-오 : https://www.youtube.com/watch?v=ODq1m9TanvI) 확실하게 변신합체로봇완구의 판매와 초등학생 팬층을 노리고 설계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사례로 생각할 수 있다.



두 번째의 가능성은, 본래의 주제와 연관이 보다 큰 내용인데 - 작가가 제일 자신 있게 묘사할 수 있는 상황과 공간이 고등학교나 중학교에서의 기억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이 겪어봤던 이야기와 공간을 묘사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하기 때문이다.


인물에 대한 묘사를 하고자 하면,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직업과 하루 중 주로 하고 있는 업무, 어떻게 시간을 쓰는지 등에 대한 디테일을 생각하고 들어가야만 한다. 거의 모든 10대 ~ 20대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했던 생활이 학창 시절의 것이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삶과 학생으로서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자신 있고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셈이다.


이고깽이나, 주인공이 학생인 소설들을 보면,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있으면서 주인공 1인의 심리묘사가 아주 강력하게 그려져 있는 경우를 다수 접하게 된다. 반면, 주인공 이외의 사람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얇거나,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전개된 후에는 뒷장을 읽지 않고도 다음 장면이 예상이 될 정도로 평면적으로만 쓰인 경우가 대부분인 경우를 함께 보기가 쉽다. 이는 직접 소설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써봤었던 때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기도 한데, 주인공이라고 그리고 있는 사람이 사실 많은 부분을 고치거나 미화한 ‘나 자신’인 경우이다.


소설에서 인물을 그릴 때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전적인 요소를 지닌 인물이 들어가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고 한다. 우리 모두 다 어떤 면으로는 뽐내기 좋아하고, 내가 가진 치부는 숨기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자연스럽고, 쉽게 빠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자연스럽고 쉬운 만큼, 바람직하지 못한 면이 많은 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남이 어떤 사람에 대해 집필한 위인전보다 그 사람 본인이 썼다고 하는 자서전의 내용이 갖는 신뢰도가 많이 떨어지는 경우들이 있는 것처럼, 주인공 – 즉, 작품을 읽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독자가 집중해서 보게 되는 – 캐릭터를 자전적인 경험들의 보따리에서 뽑아낸다면, 이 캐릭터가 매력 있는 주인공으로 어필되기는 상당히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우리 모두가 천의 얼굴을 가진, 수십만의 경험을 가진 흥미 있는 사람으로 살아왔기는 어렵고, 그만큼 우리 스스로에게서만 모든 것을 짜내어보아서 만든 인물이 주축이 된 이야기라면 식상하거나 평면적인 영웅 이야기만 ‘지어내기’ 쉬울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캐릭터가 자기 자신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내야 할까?




나의 의견을 감히 이야기하자면,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글을 쓸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기 어렵다’ 고 생각한다. 즉, 좋은 작가가 되려거든 나 이외의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고,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면서 그들을 관찰하고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자주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참고서, 논문, 수필, 논평을 쓰는 상황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글들을 쓰는 동안 묘사해야 할 인물은 여럿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논리와 이성과 주제와 근거만 있으면 잘 써낼 수 있는 글들이다.



하지만, 어느 소설이건 인물 단 한 명만 나와서 활동하다가 끝나는 이야기들은 극히 드물다. 좀비 아포칼립스물인 '나는 전설이다' 에서조차도 주인공 한 명과 개 한 마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인격을 가진 좀비와 다른 생존자가 나오면서 이야기가 매듭지어진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생각해보면... 윌 스미스 혼자 비행기 날개 위에서 골프공 치고 끝나버린 1인 아포칼립스 풍경 묘사 다큐멘터리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을 것이다. 상상하기가 두려운 일이다.



소설 작가의 의자는 어디에 놓여있는 것일까?

작가의 의자는 자신이 구축한 세계관을 아주 정밀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인공위성의 카메라와 같은 높이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해상도가 낮은 렌즈를 가진 작가는 어떤 지역을 보건, 어떤 사람을 보건 뭉툭한 실루엣이나 색상 외에는 볼 수 없으며, 독자에게 전달해줄 수도 없을 것이다.


해상도가 매우 높은 렌즈를 가진 작가는 인물 하나하나의 머리카락 한올까지도 세세하게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둘 중 어떤 작가의 글이 보다 흥미로운 작품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즉, 작가가 자신의 작품 내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에 대해 쏟아줄 수 있는 관찰과 관심의 깊이 차이가 작품의 질적 차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다음 웹툰 미생의 작가님을 인터뷰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대기업 생활을 직접 하지 않고서도 그처럼 생생하고 울림 깊은 이야기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보면서 크게 감명받았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밝힌 캐릭터 생성에 대한 노하우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을 꼽아보면,


1. ‘관찰’

2. ‘지인을 통한 이야기 청취’

3. ‘체계적인 캐릭터별 장점과 단점 설정’

4. '각 캐릭터의 장점과 단점 때문에 제한받는 선택들과 행동할 수 있는 범위들 생각’


이다.


여기서 두 번째 항목은, 학업에 치이고 인맥의 형성에 제한이 큰 학생 신분에서 ‘아직은’ 실천하기 힘든 부분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첫째와 셋째, 넷째 항목만큼은 모든 작가 지망생들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항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점’ ‘단점’ 때문에 행동하는 패턴과 선택하는 방향의 제약이 가해진다 – 이것이 충족된 상황에서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너무 많은 작품들에서, 모든 선역은 똑같은 의지와 똑같은 자세로 영웅적인 행동을 하고, 모든 악역은 똑같은 악의와 똑같은 집념으로 방해를 거는 식의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 솔직히 말해서, 주인공의 얼굴과 능력을 동료 A의 것과 바꿔치기해놓으면, 둘의 구분이 사실상 가지 않을 정도로 평면적인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얕은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미생의 작가님이 언급한 부분을 생각해보지 못하고, 변화를 시도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만들어본 이야기는 얕은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표류했었다. 내가 뼈저리게 겪었던 고민이고, 지금도 완전히 탈출하지 못한 수렁이기도 하다.


깊은 관찰력을 가지고,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인물을 설정하고, 상세하고 현실적으로 인물의 행동방향을 설정해본다면 – 극복할 수 있는 함정임은 확실하다. 작가를 지망하는 우리 모두가 말이다.




마무리 : 세밀한 작법에 대하여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시대의 작품들 중, 당시의 잡지나 신문 연재판 소설로서 출발해 현대에 이르러서는 명품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들을 보면 한 사람이나 배경에 대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세히 묘사하는 글들을 아주 자주 볼 수 있다.


‘그의 코는 오뚝히 솟아있었으며, 잔털이 많은 갈색 눈썹과 주변의 주름들은 간혹 신경질적으로 씰룩거렸다. 보라색 아마포로 지은 웃옷의 솔기에는 보풀이 군데군데 져 있어...’


예를 들어본다면, 이런 식의 밑도 끝도 없는 설명이 쭈욱 써지는 것이다.


다른 부분들의 글과 종합해보면, 작품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울림을 주는 좋은 글임은 분명하지만, 이처럼 짜증날 정도로 기나긴 묘사를 읽다 보면 솔직히 지치기도 하고, 본능적으로 ‘이건 좀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서술이 어떤 인물에 대해 세밀하게 쓰고자 할 때 꼭 필요한 기술이겠다 싶어, 많은 생각 없이 무작정 따라 하며 습작들을 써봤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 안 지나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시대의 원고료 책정 방식은 철저히 글자 수 기준이었다고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길고 장황하게 쓰는 만큼 많은 원고료를 받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기형적인 문체가 유행했다는 것이다. 허탈한 일이지 않은가?



그처럼, 작중 인물에 대해 아주 아주 아주 세밀하게 써냈던 의도가 근본적으로 '돈을 좀 더 벌기 위한' 대문호의 꼼수였다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그만큼 다른 사람을 세밀하게 잘 관찰하지 않았다면 그런 이야기를 쭉 써낼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상당히 맥 빠지는 진실이 숨어있기는 하지만, 그처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찰을 깊이 있게 해낼 수 있던 문학의 대가들은 생생한 캐릭터들이 활동하는 이야기들을 써낼 수 있는 역량을 가졌던 것임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외부에 관심을 가지자.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경험하자.

나 이외의 사람들에 대해 진심어린 관심을 가지자.

이러한 순간들을 통해, 이러한 순간들을 모아서 나 스스로가 더욱 풍요로운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자.


소설, 웹툰, 영화

어떤 매체를 생각하건, 이 기본원칙 하나만큼은 공유된다고 생각한다.


비문학 이외의 분야에서 문학적으로 좋은 작가가 되려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빚어내고 묘사하기 위해선 이러한 자세가 필수 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


나부터 항상 실천해보고자 하는 항목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대부분의 당신과 마찬가지로, 부업으로서 글을 쓰고자 하는 아마추어 작가로서.




지금까지 FAQ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작품 혹은 연재 글로 조만간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FAQ 4 -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