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ro Oct 24. 2021

퇴직 사유

[논품픽] 회사 알레르기지만 괜찮아 10화

"장대리, 갑자기 퇴사를 하겠다는 이유가 뭔가? 얼마 전에 내가 좀 야단친 거 때문에 그러나?

그거라면 그때는 내가 좀 심했네. 그게 다 장대리 잘못도 아닌데 내가 잘 몰랐어."


"그런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뭣 때문인가? 승진 누락된 거 때문에 그러나? 그건 이번에 승진 대상자가 너무 많아서 윗선부터 챙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밀린 거라고 설명해줬잖아. 내년에는 꼭 챙겨줄 테니 걱정 마."


"그것 때문도 아닙니다."


"그럼 부서에 장대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나?"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게 퇴사 사유는 아닙니다."


"그럼 경쟁사에 스카우트라도 된 건가? 제안받은 조건이 어떻게 되나, 내가 최대한 맞춰 줄 테니 말해봐."


"그것도 아닙니다. 퇴직 후에 다시는 회사 생활을 안 할 작정입니다."


"아니 그러면 도대체 왜 퇴사를 하겠다는 거야? 더 안 잡을 테니 그 이유나 좀 알자고."


"저의 퇴직 사유는 자아실현입니다."


회사 생활은 잊고 있던 최고의 욕구와 가치를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회사에서 매년 교육을 받았다. 교육내용은 보통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며, 변화를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하고 혁신과 창조에 대해 강조했다.

교육을 들을 때마다 내 머릿속엔 퇴사가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 교육하고 강조했던 내용들은 회사를 떠나야 가능할 것만 같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회사 내에서 진행된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입상한 덕분에 특별 교육 과정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연수원에서 합숙 교육을 받으며 좋은 강의를 듣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다른 조에 비해 팀워크가 좋았던 우리 조는 많은 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교육이 끝난 이후에도 조원들과 종종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교육이 끝나고 몇 주 후 조에서 막내였던 주임이 퇴사를 했다. 몇 달 후에는 조장이었던 과장님이 퇴사를 했다. 그리고 또 몇 달 후에는 다른 조원이었던 대리가 퇴사를 했다.

알고 보니 모두들 나와 마찬가지로 교육을 받는 동안 깨달은 것도 많고, 가슴속에 뭔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마음먹은 것을 구체적으로 계획해왔고, 마침내 자아실현을 위해 실행으로 옮기고자 한 것이다. 교육 과정에 참여하는 동안 그들은 잊고 있던 최고의 욕구와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과감히 그것을 찾아 떠난 것이다.

회사는 유망한 인재를 발굴해서 더욱 성장시키려다가
그들을 잃게 되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된 것이다.


교육을 받기 전에도 나는 늘 고민이 많았다.

좋은 회사에 취직했고 남부럽지 않게 먹고 살만 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최선인가?

내 인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이 모든 질문의 답은 자아실현이었다.

나에게 자아실현이란 나의 의지와 생각대로 진정한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무능한 탓에 회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들 그게 잘못된 것인가? 견디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회들을 더 경험해보기 위해 떠나고 싶을 뿐이다. 그게 도망일 수도 방황이 될지도 실패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가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며, 용기 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어떤 입장에서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나의 선택에 있어서는 그 누가 뭐하고 하든 나의 입장과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


관절염이 있는 사람이 마라톤을 한다면 건강이 좋아지기는 커녕 평생 못 걷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마라톤보다는 요가가 어울릴 것이다. 모두가 마라톤이 좋다고 뛰면서 관절염이 있는 사람에게 못 뛴다고 놀려대도, 관절염 환자는 요가를 하면서 건강을 챙기면 된다. 똑같은 잣대로 모든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수는 없다.


무엇이 진짜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통념에서 벗어나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자아실현은 회사 생활에서 찾을 수 없었고 이제 더 이상 찾고 싶지도 않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것이 최선의 방식도 아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방식이고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일 뿐이다.


가끔씩은 내가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만 추구하는 파랑새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파랑새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문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뎌 보지도 않고, 머물러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살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을 빨리 흐른다.

나에게 회사는 생계유지를 위한 돈을 버는 수단, 그리고 무난한 사회 구성원이 되는 수단일 뿐이다. 내가 추구하는 최고의 욕구와 가치는 그 이상이다. 더 늦기 전에 나는 그것을 찾아 떠나보려 한다.



*[논품픽] 논픽션 품은 픽션

Photo by Mantas Hesthaven on Unsplash



이전 09화 다중 인격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