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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Apr 02. 2023

절망 중에서도 의미와 소망을 지켜가기

삶을 완주한다는 것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서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힘들고 어려운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다만 회복탄력성이라는 것이 항상 극복과 승리를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처럼 12척밖에 남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왜군을 무찌르는 대승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순신 장군이라도 모든 전투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냥팔이소녀의 이야기처럼 꺼져가는 촛불을 바라보며 따뜻한 사랑의 기운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삶의 마무리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그 힘겨운 삶의 과정에서도 마지막까지 소망을 지켜낼 수 있는 힘, 그것 역시 회복탄력성입니다.


제인 톰린슨은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영국 여성입니다. 그녀는 1991년 20대 중반의 나이에 유방암을 진단받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 등 기본적으로 치료를 다 마치고 직장생활도 이어갔지만, 암진단 후 10년가량이 2000년, 뼈와 폐까지 몸 전체에 암이 전이되어 앞으로 12개월 정도밖에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암으로 인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이때 톰린슨은 그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의 마무리 단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톰린슨은 이전부터 꿈꿔왔던 런던마라톤과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리고 힘겨운 훈련과 주변의 지원 등을 통해 2003년 런던마라톤, 2004년 철인 3종 경기에서 그 업적을 실제로 이루어냈습니다. 암 환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암환자를 위한 모금활동도 병행하면서요. 그 후에는, 자전거로 유럽과 미대륙을 횡단하는 업적까지 이루었죠. 2006년 샌프란시스코부터 뉴욕까지 6780km 미대륙 자전거 횡단을 완주하면서는 암 관련 기금으로 총 175만 파운드(당시 한화 33억 원)가 모금되었을 정도였습니다. 12개월을 살 거라는 말을 들었던 톰린슨은 실제로 6년을 더 살았고 2007년에 눈을 감았습니다.


물론 모든 암환자가 톰린슨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말기 암의 상황에서 건강한 사람도 하기 힘든 성취를 이루고 의학적인 예상보다 훨씬 오랜 기간을 살아낸 것은 기적이라고 볼지도 모릅니다. 혹자는 결국 암으로 생을 마감한 톰린슨의 삶을 안타깝다고 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톰린슨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가질 수 있는 삶의 의미, 희망, 소망입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 목표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끊임없이 살아가고 결국에는 성취해 가면서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갔습니다. 절망 가운데서 삶의 끝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의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가치와 의미, 소망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삶의 의미와 가치는 결국 내가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용"에서 시작합니다. 거창한 희망과 소망이 아니더라도 조금 더 우리의 삶에 가까운 것들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삶에서 내가 하는 역할, 지금까지 가져왔던 신념과 의지, 종교적인 가치 등등. 때로는 나와 함께 하는 반려동물이나 식물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절망적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때, 누군가는 작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삶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톰린슨의 이야기 역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평소 운동을 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이 힘들어도 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진정 삶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과정에서 세 가지 요소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삶은 언제나 현재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그리고 현재(Here and Now)이죠. 바꾸지 못하는 과거,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미래에 막연히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내 옆에 있는 것에 생각을 집중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게 소중한 것을 찾아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필요한 생각을 밀어내는 것이죠.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미래의 일은 나중에 닥쳤을 때 그때 처리하면 됩니다. 내가 바꾸지 못할 것들을, 생각해 보았자 쓸데없는 것들이 있다면 우선 내가 그러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어쩔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을 생각하며 스스로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계속해서 들어오는 그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무시하고 털어내면서 생각을 "지금, 여기"로 계속해서 옮기려 노력하는 거죠. 여기서는 "끊임없이", "계속해서"가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에서 내가 소중하고 즐겁게 여기는 것을 찾아 거기에 나의 생각과 시간을 보내면서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 희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건 어떠한 상황에서도입니다. 의사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을지라도 만에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건강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그래도 기적이라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가능성은 높지 않더라도 나에게도 기적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은 가져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지금, 여기, 나의 삶에서 의미와 소망을 이어가기 위한 희망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희망, 때에 따라서는 나의 직업적인 역할도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내가 지금을 살아가기 위해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적은 기적을 무시하거나 무작정 절실하게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 기적을 꿈꾸면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해 나가는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세 번째. 마지막까지 소망을 품고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상황에서도 내가 가진 소망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입니다. 희망과 소망은 비슷하면서 조금 다릅니다. 희망(望)은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지만 꿈꾸는(希) 그 무언가를 바라는(望) 것이라면, 소망(望)은 내가 마음 깊이 지켜가고(所) 있는 그 무언가를 바라보는(望)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적은 희망하지만, 삶의 가치는 소망합니다. 내 삶의 마지막까지 지켜가고 있는 삶의 의미, 남기고 싶은 가치, 그리고 때론 종교적 신념 등 이런 소망을 항상 마음에 품고 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자기 자신에게도 지금을 살아가는데 필요하지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시간의 경계를 넘어 전달되는 힘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제 100세를 훌쩍 넘기신 할머니가 계십니다. 아주 어릴 적 저를 직접 키웠기에 마음깊이 변하지 않는 애착대상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의미를 바라보며 지금도 살아갈 수 있는 배경에는 할머니의 삶의 자세를 내 마음 안으로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이를 내적 대상이라고도 합니다. 제 회복탄력성의 배경이죠. 그런 할머니도 이제는 연세가 너무 많이 드셨습니다. 어쩌면 이 글이 나간 후 머지않은 날에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지요.


평생 목사의 사모님으로 살아온 할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깨어있을 때는 끊임없이 성경을 필사합니다. 예전에는 그러면서 새벽마다 가족을 위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했지만, 이제는 노쇠로 그런 기도를 하기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제는 낮에도 잠을 자는 시간이 많을 정도로 몸과 정신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성경을 필사합니다. 할머니에게는 그 필사가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가는 의미이자 가치입니다. 연세가 워낙 많으니 기적을 바라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본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과정, 가족을 위한 끊임없는 사랑, 종교적인 의미, 그리고 그 언젠가 모두가 같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할머니에게는 소망이고 그 소망을 우리 가족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절망과 고난, 마지막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마지막까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의 자세로 지금을 살아갈 것인지, 그 부분이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남겨지는 가치로 만드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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