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그래도 말할 거면서) 인간 이지니의 '특'장점이 하나 있다. 피아노 치기? 노래 부르기? 다 땡이다. 바로 '칭찬하기'다. 칭찬의 사전적 의미가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함. 또는 그런 말’이란다. 의미 그대로의 칭찬만 한다면 굳이 '특'이라는 글자를 데려오지 않았으리라. 나는 좀 다른 시각이다. 잘한 일은 물론, 부족한 부분이 보여도 어떻게든 칭찬을 찾아 그의 어깨가 굽지 않도록 돕는다.
내가 진행하는 도서관 글쓰기 수업에서 특히 그렇다. MSG 한 숟가락을 보태면, 누가 어떤 내용의 글을 어떤 식으로 쓰든 “참 잘했어요!”를 외친다. 이어 "우리끼리만 읽기에는 아쉬우니 얼른 블로그를 시작하세요!", "글만 봐도 OO 님의 인격이 보이네요.", "삶을 대하는 OO 님의 태도가 멋지십니다." 등과 같은 말을 반드시 덧붙인다. 수강생분들은 이런 내 칭찬이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종이컵'처럼 누구에게나 하는 칭찬이려니,라는 생각에 시큰둥해하지 않는다. 되레 ‘보이지 않는 선물’을 받은 것처럼 특별히 여긴다. (당장 책으로 나와도 될 만큼 퀄리티가 높은 글도 많다)
수강생분들의 글 하나하나에 단점을 끄집어낼 수도 있지만, 칭찬을 한두 숟가락 더 얹어드리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자유로운 글쓰기인 만큼 쓰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썼다. 쓰는 행위까지 도달했다는 자체가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둘째, 문맥의 흐름이 깔끔하고, 사용한 어휘도 그럴듯하며, 비유나 묘사가 잘 된 글에만 '잘 썼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독자의 마음 가까이에 닿는 글은, 비록 전문가들이 말하는 '스킬'은 부족해 조금은 어수룩해 보일지라도 진심을 다해 쓴 글, 부끄러워도 솔직히 표현한 글일 테니 말이다. 셋째, 글쓰기는즐거워야 하는 행위다. 이 '즐거운 행위'가 '꾸준한 글쓰기'로 갈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수업에 참여하는 분 대부분은 꾸준한 글쓰기와 아직은 거리가 멀다. ‘이제 글이란 걸 꾸준히 좀 써 보자!’라는 마음을 담아오신 분들한테 채찍부터 휘두르는 건 잔인하다. 초반부터 휘두른 채찍에 '이럴 줄 알았어, 글쓰기와 나는 애초에 어울리지 않아', '역시 글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어'라며 수강생분들께 실망감을 끼얹는 건, 내 글쓰기 철학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드린 칭찬이란 당근으로 쓰는 행위에 재미를 붙인 수강생분들은 하루에 한두 줄이라도 꾸준히 쓸 것이고, 꾸준히 쓴다면 글쓰기 실력은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자석처럼 붙는다. 실제로 자신의 케케묵은 블로그에 새 글을 올리고,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작가로 등록해 글을 쓰고, 모인 글을 출판사에 투고해 출간 계약까지 일어난다. 이 모든 건 그분들의 ‘실행’이 있기에 가능하지만, ‘칭찬이라는 뿌리’가 열매가 맺히도록 돕지 않았나 싶다. 오늘도 "칭찬에 글 쓸 힘이 납니다!", "글쓰기로 꿈이 생겼어요!" 등과 같은 메시지를 받으며, '진정한 동기부여는 역시 칭찬이구나!'임을 확신한다.
그래, 더 솔직해 보자. 내가 뭐라고 채찍을 드릴까. (내가 뭐라고 당근도 드릴까 싶지만) 수업을 듣는 분들보다 조금 일찍 글쓰기에 몸을 담갔다고, 조금 먼저 책을 냈다고. 그래서, 그게 무슨 벼슬인가? 여전히 나는 타인이 쓴 기막힌 문체를 만나면 주눅부터 든다. 타고난 재능이 없기에 노력으로 글쓰기 실력을 쌓아야만 한다. 그걸 알면서도 날마다 해야만 하는 독서와 글쓰기를 수없이 실패한다. 이런 내가 뭐라고 채찍을 휘두를 수 있을까. 다만, 내가 '특장점'이라 말하는 '칭찬하기'로 수업에 함께하시는 분들께 힘이 되면 좋겠다. 내 칭찬이 그분들의 글쓰기에 닿길 바란다. @글쓰는이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