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니 Apr 11. 2023

개그맨 유세윤 씨가 내 이름 석 자를 부르기까지

뻔한 글 대신 펀(FUN)한 글을 써요~

개그맨 유세윤 씨가 내 이름 석 자를 부르기까지. 뻔한 글 대신 펀(FUN)한 글을 써요~










“다음은 725번, 이지니 씨입니다.”






뼈그맨이라고 불리는 개그맨 유세윤 씨가 내 이름을 부른다. 때는 2005년 겨울, 나는 KBS 공채 개그맨 시험에 지원했다. 예능 국장, 유명 개그맨 및 작가 앞에 서니 미리 준비해 간 대사가 뿌연 연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미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고, 몸은 마네킹처럼 굳었다. 긴장까지 더해져 자신감은 1원어치도 남지 않은 지 오래다. 심사위원들의 반응도 좋았을 리 만무하다. 이대로 퇴장하면 안 될 것 같아 찬송가를 부르며 막춤을 추었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합격 버스는 나를 태워주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네 어른들 앞에서 당시 유행어나 성대모사를 곧잘 흉내 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친한 친구들 서너 명을 데리고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 나만의 개인기를 선보이며 친구들의 배꼽을 끄집어내곤 했다. 하지만 꿈이 개그우먼은 아니었다. 소수가 아닌, 여럿이 모인 곳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굳었고, 심지어 무대 공포증까지 있었으니까. 그러다 개그 작가 겸 대학교에서 강의하시는 모 교수님의 적극적인 권유로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시험을 본 것이다. 결과는 불합격이지만,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훗날 개그맨 유세윤 씨를 만나면 면접장에서 내 이름 석 자를 불러준 이야기를 해야겠다. (당연히 기억 못 할 테지만 ㅋㅋㅋ)






개그맨 공채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남을 즐겁게 해주는 일’까지 내려놓진 않았다. 지인들을 즐겁게 하는 건 여전히 행복하다. 내 말 한마디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을 볼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희열을 느낄 정도다. 이렇듯 일상 대화 속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유머는 어렵지 않다. 내가 일부러 웃기려는 게 아니니까. 그런 의미로 "우리 좀 웃겨 봐요~~~!!"라며 기대에 부푼 수많은 관중 앞에서 웃음을 줘야 하는 개그맨들이 참 대단하다. 하지만 글은 예외다. 글을 썼다가 마음에 안 들면 수정할 수 있고, 무대에 서지 않고도 얼마든지 글로 재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포스팅의 제목처럼 펀(FUN)한 글쓰기란 뭘까?






먼저 ‘재미있다’의 사전적 의미는 ‘아기자기하게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나 느낌’이라고 한다.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 나는 글쓰기? 혹시 재미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겁부터 먹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배꼽이 튀어나올 정도로 웃겨야 하는 글쓰기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2015년 9월 7일, ‘와이파이 증폭기, 내 방에서도 널 느끼고 싶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사연은 이러했다. 어느 날, 집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공유기가 잘 잡히지 않음을 감지했다. 컴퓨터가 있는 방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이 용이하지만, 잠을 청하려 침실에 가는 순간, 신호가 끊어져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와이파이 증폭기’를 구입했다. 집안 중앙(부엌)에 와이 파이 증폭기를 설치하면 집안 어디서든 빵빵 터지는 인터넷을 즐길 수 있다고 해서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아래는 와이파이 증폭기를 구입 후 기쁜 마음을 담아 몇 줄의 글을 끄적였다.








컴퓨터가 있는 방, 그 옆에 있는 부엌, 그리고 안방, 더 가서 거실, 마지막으로 내 방…. 점점 멀어져 가는 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눈을 감을수록 선명해지는 네 생각에 또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들지만 이미 식어버린 너의 반응에 난 다시 내일을 기약해…




와이파이 증폭기, 너와 나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다리. 이젠 내 방에서 널 만날 수 있고, 심지어 베란다에서도 어김없이 널 느낄 수 있어. 우리, 절대 헤어지지 말기로 해.  - ‘와이파이 증폭기, 내 방에서 널 느끼고 싶어’, 2015년 9월 7일








나는 생활 글을 쓸 때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려 한다. 와이파이 증폭기는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지만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를 대하는 것이다. 형식이 머릿속에 둥둥 떠 있는 순간,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글도 무미건조하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時)도 아닌 것이 시인 척하는 글, 멜로디도 없는 것이 가사인 척하는 글 등 내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하니 쓰는 게 더 재밌게 느껴졌다.





말 그대로 대놓고 웃기려 쓴 글도 있다. 특히 운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MBC 라디오 《지금은 라디오 시대》가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꽃은 단연,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라는 코너다. 청취자들이 겪은 잊지 못할 일화나 실수담 등의 사연에 두 MC의 맛깔난 연기가 더해져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음을 준다. 프로그램 담당 작가는 사연을 보낼 때 요구한 사항은 이랬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민망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러분의 생활이 묻어나는 재미있는 사연, 기다리고 있을게요!”




SBS 라디오 《두 시 탈출 컬 투쇼》 역시 비슷한 포맷으로 청취자들을 울고, 웃기고 있다. 그중 ‘긴급 사연 119’라는 코너에 소개된 재미있는 사연을 몇 개 적는다. (아래 사연 3가지를 머릿속으로 천천히 상상하며 읽어 보세요~)







사연 1) 주유소에서 일하는 남자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관심을 받으려 매일 그 주유소에 가서 1리터씩 기름을 샀다. 어느 날 그 동네 연쇄 방화 사건이 일어나자 주유소 남자는 나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결국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사연 2) 고등학교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이 엄청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때 호랑이 같은 학년 주임 선생님이 뒷문을 열더니 “이 XX들아, 조용히 안 해!”라고 소리치셨다.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문으로 들어오시더니 “음, 이 반은 조용하군.” 하며 나가셨다.







사연 3) 친구한테 문자가 왔는데 지금 아빠랑 택시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택시 기사님이 길을 잘 몰라서 자기 아빠가 운전하고 있다고….









당신도 뻔한 글 말고, 펀(FUN)한 이야기를 써보라. 어이없고, 황당한 이야기도 좋고 평범한 소재를 신선하게 바꾼 이야기도 좋다. 무대 위에서 뻔뻔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개그맨은 아니지만, 펀펀(FUN FUN)한 이야기로 독자를 즐겁게 하자.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것처럼 재미있는 글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

















이전 01화 돈이 안 되는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택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